라이더가 말하는 그들의 노동환경
라이더가 말하는 그들의 노동환경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10.05 11:14
  • 수정 2018.10.05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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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준)의 첫 오프라인 모임 라이더들의 썰戰

지난 9월 1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작은 책 카페 ‘레드북스’에서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바로 라이더유니온 준비모임에서 개최한 첫 오프라인 모임인 <라이더들의 썰전>이었다. 이날 모임은 전·현직 라이더들이 한 자리에 모여 라이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이야기하고, 이를 계기로 홀로 일하는 라이더들 간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기획됐다.

라이더들의 썰전, 3인의 라이더들

라이더유니온(준)은 내년 정식 설립을 목표로, 라이더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소통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라이더유니온(준)의 준비위원인 박정훈 씨는 지난 여름 라이더 폭염수당 지급 1인 시위를 진행하면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날 <라이더들의 썰전>은 박정훈(라이더 경력 1년 9개월, 현직 맥도날드 직영점 라이더) 씨가 진행을 맡았으며, 전직 라이더인 서상도(라이더 경력 1년, 전직 맥도날드 가맹점 라이더) 씨와 이범석(라이더 경력 1년 반, 전직 배달대행업체 푸드플라이 라이더) 씨가 패널로 참가했다.

박정훈
박정훈

라이더들의 공공의 적, 계단과 단체주문

박정훈 배달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4층, 5층 배달이 아닐까요? 라이더들은 공감을 많이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만나면 네발로 올라간다고들 하죠(웃음). 계단과 관련된 배달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범석 11층 배달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더라고요. 그때 배달통에는 세 건의 배달 음식이 있는 상황이여서 ‘아, 도저히 11층까지는 못 올라가겠다’라고 생각을 했죠. 결국 손님한테 연락해서 중간에서 만날 수 없겠냐고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나네요. 감사하게도 흔쾌히 내려와 주시더라고요. 그때 기억으로는 7층인가? 중간에 만나서 음식을 전달해드렸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서상도 저도 똑같이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상황이었는데, 저는 18층이었어요. 그때 저는 손님이 그냥 1층까지 내려와 주셨어요. 집 앞 공원에서 햄버거를 드시더라고요.

박정훈 또 하나의 애환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주문 에피소드를 들어볼까 합니다. 가장 많이 해봤던 단체주문 양은 얼마나 되시는지?

서상도 80개를 라이더 두 명이 같이 갔어요. 라이더들이 단체주문을 힘들어 하는 건 배달사고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에요. 음식을 많이 실을수록 오토바이 무게가 뒤로 쏠리게 되고, 여기에 배달통에 미처 넣지 못한 음식은 라이더들이 손목에 달면 더 위험해지는 거죠.

 

 

이범석
이범석

날씨 등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노동환경

박정훈 (쓰러져 있는 오토바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진은 제가 입사한지 얼마 안돼서 넘어지고 찍은 사진이에요. 한 겨울 빙판길에서 넘어졌는데, 넘어지고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배달통 열고 콜라 쏟아졌는지 확인하는 일이였어요. 물론, 콜라가 쏟아졌죠. 다행이 맥도날드에서는 괜찮다고 해줬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에요. 라이더들은 알겠지만 사실 눈 내린 날보다 눈 내린 다음날이 더 위험해요. 내린 눈이 얼기 때문에. 그때는 제가 초보여서 몰랐던 거죠. 그날 이후로 사고에 대한 공포가 생겼고 지금도 교차로를 지날 때는 죽음의 공포도 느낍니다. 두 라이더들은 그런 경험이 없었나요?

서상도 폭설이 내리고 나서 일주일이 지난 겨울이었는데, 빙판길에서 유턴하다가 넘어졌어요. 라이더들은 넘어져서 아픈 거는 두 번째 일이에요. 바로 오토바이 일으켜서 콜라 쏟았는지 확인해야죠. 나중에 왼쪽 발목을 보니까 복숭아뼈 살이 다 쓸려있더라고요. 산재신청을 할 수 있나 물어봤는데 산재를 신청하면 재계약을 안 해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재신청을 안했던 기억이 있어요.

박정훈 저도 일하다가 사고로 발톱이 빠진 적이 있었는데 산재 적용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제가 일하는 매장에서 다친 라이더들이 다 저한테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이범석 배달 피크시간이 있어요. 정말 정신없는 3시간 정도는 엄청나게 집중을 해서 배달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 오토바이가 엎어졌어요. 저도 똑같이 음식 걱정부터 했죠. 다행이도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음식 파손은 안됐는데 길거리에서 뒷수습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보통 라이더들은 기본적으로 물티슈, 휴지, 포장 비닐봉지 등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다녀요. 나름 배달 일을 당당하게 하고 다녔는데 그때는 배달 일 하는 게 창피하기도 했죠. 길거리에서 한바탕 일을 겪고 나서.

박정훈 배달이 많은 피크 시간에는 위험해도 빨리 달릴 수밖에 없죠.

이범석 그렇게 되죠. 물론 본인이 이겨낼 수 있는 정도의 속도로 달리겠지만. 오히려 비오는 날, 폭우가 쏟아지는 날은 조심하니까 오히려 사고가 덜 날수 있어요. 차라리 비가 계속 내리면 괜찮은데 개인적으로는 비가 오다가 안 오다가 하는 날씨가 더 힘들더라고요.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반복해야 하니까.

박정훈 맞아요. 비가 그쳐서 우비 벗고 배달 나갔더니 비가 내리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날씨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또 있나요?

서상도 비는 겨울에 내리는 비가 제일 고통스러워요. 겨울에는 오토바이 손잡이에 손토시를 씌어놓는데, 겨울에 비가 내리면 손 토시가 다 젖어요. 그 상태에서 칼바람이 불면 손토시가 얼어요. 진짜 말 그대로 살을 파고드는 추위. 손이 완전 꽁꽁 얼어서 잠시 신호 대기할 때 입김으로 호호 불고. 겨울에는 오토바이 핸들에 열선을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불가능한건 아니지만 그게 결국은 비용이니까요.

“라이더도 직업이다” 라이더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들

이날 <라이더들의 썰전>에서는 라이더 관련 기사에 달린 악성댓글(상대방이 올린 글에 대한 비방이나 험담을 하는 악의적인 댓글)을 읽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박정훈 이런 악성댓글의 경우는 라이더를 직업으로 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드러난 것 아닌가 싶네요.

이범석 예전에는 라이더를 흔히 말하는 비행청소년으로 보는 모습이 있었죠. 단순한 댓글 하나는 무시해도 될 것 같아요. 악설댓글만 있는 것은 아니고, 힘든데 고생한다는 이야기들도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라이더 관련해서 가장 많이 올라오는 이야기가 ‘오죽했으면 배달을 하겠냐’라는 댓글과 ‘배달해서 얼마나 벌겠어? 그런 거 하지 말고 차라리 취직을 해’ 이런 댓글이 많네요.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배달 일이 고생스럽지만 고생한 만큼 수입이 높은 라이더들도 있어요. 동네 중국집이나 피자집만 가도 오토바이 잘 타시는 분들은 월급은 200~250만 원 정도 받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댓글을 다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배달해보고 이야기하십시오. 한번이라도 배달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서상도
서상도

서상도 억울해요. 문신이 자글자글하지는 않은데.

박정훈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라이더도 하나의 직업인데 무시하면 안 되는 것.

이범석 개선돼야 할 점이 많죠. 최근 들어 플랫폼 시장이 확산되면서 배달대행업체들이 엄청나게 생겨났어요. 원래 그전까지 배달은 직접고용 형태였는데 다른 형태의 특수고용 형태가 시작된 것. 직접고용 형태로 바뀌면 많은 부분이 개선될 것이라고 봐요. 가장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근로계약서 작성입니다.

또, 무리하게 배달을 소화하다 보면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또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라이더들은 오토바이를 위험하게 몰고 다닌다’라는 인식이 생기는 거고요. 배달대행 업체들이 라이더들을 직접고용하는 형태가 맞아요. 배달시장에 뛰어들었다면 라이더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죠.

박정훈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범석 뜻 깊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배달 일은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배달 당당하게 하셨으며 좋겠고요. 라이더들이 당당하게 배달해야지 바깥에서 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창피해하고 숨긴다면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앞서 얘기한 직접고용 문제는 사용자측의 인식 변화도 필요한 일이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서상도 지금은 라이더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라이더 일을 했을 때만해도 위험한 상황에 많이 노출이 되기 때문에 같이 일했던 라이더들끼리 잘 뭉쳤던 것 같아요. 지금도 라이더 친구들의 사고 소식을 접하면 마음이 아파요. 라이더유니온이 자리를 잡아서 그 친구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