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제2의 피해자입니다
우리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제2의 피해자입니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10.05 13:15
  • 수정 2018.10.05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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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레킷벤키저 익산공장 해고 노동자

[커버스토리] 소통→참여→모색 ②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일파만파 퍼지자 옥시레킷벤키저(옥시RB)는 지난해 경영상의 이유로 전북 익산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이후 공장은 해태HTB에 매각됐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고 노동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1년째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이다.

지노위, “노동자 36명 해고는 부당해고” 판결

옥시RB 노동조합은 지난해 11월 30일 회사가 익산공장 노동자 36명을 해고한 것을 두고 전북지방노동위원회(전북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노조는 회사가 경영상 해고에 관한 단체협약상 합의 조항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노동자들 해고했다며, 이는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옥시RB 노사 단체협약 제20조(사원채용 및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에 따르면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에 의하여 노동자를 해고할 경우 해고를 하고자 하는 날의 50일 전까지 이를 통보하고 성실하게 노조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노조와 합의를 거치지 않고 근로자대표와 이를 협의했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부당해고라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이에 전북지노위는 노조의 손을 들어주며 회사가 익산공장 노동자 36명을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전북지노위는 판정문에서 “당시 근로자대표로 선출된 옥시RB 서울사무소 영업부장 오 모씨를 실제 근로자들의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근로자대표로 보기 어렵다”며 “해고와 관련해 회사가 근로자대표와 성실한 협의를 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근로자대표와 성실한 협의가 없었으므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해고 회피 노력, 해고 대상자 선정의 합리성·공정성에 대하여는 더 이상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부당해고가 너무 억울해서 나왔어요”

해고 노동자들이 처음 청와대 사랑채 앞을 찾은 것은 지난해 9월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인한 불매운동 등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자 회사는 끝내 익산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공장 폐쇄 소식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청와대 앞으로 나왔고, 그로부터 2개월 뒤 해고자가 됐다. 문형구 옥시RB노조 위원장은 부당해고의 억울함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1년. 가장 추웠다는 겨울을 견뎌냈고, 가장 더웠다는 여름을 이겨냈다.

해고 이후 10개월이 지났다. 해고 노동자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해고자 신분이 되면서 은행 대출도 어려워졌고, 퇴직금 역시 회사와 부당해고를 다투고 있어 어려운 상황”이라며 “생계유지가 어려워지면서 가정불화를 겪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어려운 지역 경기에 해고 노동자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8년 상반기(1월부터 4월) 시·군 고용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익산시의 고용률은 전북 최하위인 52.7%를 기록했다. 전국 154개 시·군 지역에서는 경남 통영시(51.3%)와 경기 과천시(51.9%) 다음으로 낮은 고용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문 위원장은 “앞서 희망퇴직을 신청한 노동자들도 일할 곳이 없어 해고 노동자와 똑같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며 “해태HTB에 고용승계가 안된다면 재취업이라도 할 수 있도록 요청했지만 회사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회사는 지난 지노위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옥시RB노조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중노위 역시 익산공장 36명의 해고를 부당해고로 판단했으며, 판결문은 한 달 뒤인 10월 4일에 나온다. 문 위원장은 “계속해서 부당해고 판결이 나와도 회사는 행정법원 소송까지 불사할 것”이라며 “그 시간 동안 해고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결국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기댈 수 있는 장소가 청와대 앞”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