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장시간노동·감정노동 실태는?
은행원 장시간노동·감정노동 실태는?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10.05 11:47
  • 수정 2018.10.0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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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부족에 실적압박...감정노동 보호 제도 미흡

[리포트] 금융노동자 노동실태

촛불 정국 이후 탄생한 새 정권은 한국사회를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키길 요구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노동존중 사회실현’ ‘차별없는 일터 만들기’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인 삶 지원 및 사회적 차별 해소’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 ‘휴식이 있는 삶을 위한 일·생활 균형의 실현’ 등을 제시하며, 노동현장과 노동자의 변화를 약속한 바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좋은 일자리’로 손꼽히는 금융산업 노동자들이 바라보는 일터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금융노조는 지난 6월 약 3주에 걸쳐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변화하는 산업, 여전한 장시간노동

변화하는 산업의 환경과 기술의 발달은 일자리에 대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무인화, 자동화, 모바일화, 인공지능(AI)의 도입 등과 같은 디지털 신기술의 확산으로 금융산업 역시 변화의 흐름에 자유롭지 않다.

2016년 다포스 포럼에서 언급된 ‘직업의 미래(The future of Jobs)’ 이후, 경쟁과 성과주의 문화에 ‘비교적’ 익숙한 금융산업 노동자들 역시 일자리 대체, 감소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이번 설문에 응답한 금융노조 조합원 18,036명 중 59.5%가 본인의 업무와 관련해 향후 신기술이 도입되어 일자리 대체, 감소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대체 혹은 감소에 대한 걱정이 많은 상위 집단들은 예상된 결과기도 하다. 영업점 등에서 창구 개인고객 대면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68.6%), 21년 이상 장기 근속한 이들(67.1%), 본점보다는 영업점/지점에 근무하는 이들(65.5%), 여성 인력(64.4%), 무기계약직이나 분리직군, 별도직군 등 이른바 2차 정규직(63.8%) 등이 해당한다.

금융노조와 산하 각 지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개선하려고 하고 있지만 금융산업의 장시간노동 역시 여전히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설문에 응답한 조합원들 대부분(82.4%)은 오전 8시 30분 이전에 출근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8시 전 출근 역시 34.1%에 달했다. 퇴근 시간은 오후 7시 이후가 60.1%로 가장 많았다. 7시 30분 이후 퇴근한다는 응답자는 29.9%였고, 오후 10시가 넘어 퇴근한다는 이들도 1.9%(350명)였다.

금융노조 조합원들의 1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52.4시간이다. 법에서 규정한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비율은 43.7%로 절반에 가깝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뇌심혈관계 인정기준 고시에서 1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질병 유발 상관관계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처럼 주 60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있다고 응답한 이도 7.4%(1,321명)에 달했다. 1주일 평균 연장근로는 3.2회다.

금융산업은 지난 2002년 전 산업 최초로 주 5일제 근무를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종사자들의 장시간노동 현실은 15년이 넘게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금융노조 조합원들이 연장근로를 하는 이유로 꼽힌 것은 ‘담당 업무량이 많아서’라는 이유가 35.5%로 가장 많다. 또한 ‘부서 자체 인력부족으로’ 연장근로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응답도 26.5%를 보인다. 담당 업무 과중과 인력부족은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는 이유라고 해석되며 금융노조는 조합원들의 노동환경을 저하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장시간노동에 걸 맞는 보상을 받고 있는 현실도 아니다. 응답자의 대부분(94.4%)이 초과근로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성별과 연령별, 근속, 근무장소는 물론, 직책이나 직무, 은행과 비은행, 종사상 지위를 막론하고 초과근로에 대해 온전히 금전적 보상을 받고 있다고 답한 이들은 10%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휴가 사용 역시 앞서 살펴본 결과와 연관해 부족한 현실인데, 법정 유급연차휴가(1년 이상 15일) 중 6일의 휴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왔다. 특별 휴가로 3.6일 정도를 사용하는 것을 포함해도 10일이 안 된다. 휴가 사용에 대해서도 부서의 인력부족(25.5%)과 동료들에게 업무가 전가되는 상황(24.6%) 때문이라는 응답을 보였다.

현장의 인력부족, 스트레스에 한몫

금융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일터의 구체적인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은 설문조사 결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설문에 응답한 이들 중 영업점이나 지점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경우, 부서별 인원은 10명~14명(45.1%) 사이이거나 5명~9명(30.1%) 사이인 경우가 주를 이뤘다. 본점의 경우엔 부서에 따라 편차가 있는데,
15명~29명(29.8%) 사이와 50명 이상(22.5%),
30명~49명(16.3%) 사이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콜센터나 본부부서를 제외하고는 ‘대면업무’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다. 10명~14명 사이의 일터에선 개인고객 대면업무 비중이 45.6%, 기업고객 대면업무 비중이 42.7%였고, 5명~9명 사이 일터 역시 57.4%가 대면업무를 수행한다.

설문에 응답한 조합원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1명이나 2명, 많게는 3명의 인력충원이 필요하다고 답하고 있다.

일터에서 인력이 부족한 경우 대부분 내부의 인원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다른 동료가 해당 업무를 수행한다는 응답이 78.3%, 내부 업무 재배치로 사업을 수행한다는 답이 10.2%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금융산업 현장의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증가와 스트레스 증가, 실적압박 증가 등의 애로사항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현장의 금융 노동자들은 인력이 부족한 일터의 상황 때문에 장시간노동에 노출돼 있으며, 초과근로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고 있지도 못하며, 휴가의 사용도 제약을 받고 있다. 일터의 현실이 이러한 가운데 일과 가정, 일과 생활 등의 균형을 위한 탄력적인 근무시간 활용 등 각종 제도의 도입 역시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에 반해 금융산업 현장은 지금보다 더 인력감축이 가속화되는 움직임도 보인다. 특히 비대면 채널 확장과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등으로 업무 효율성이 극대화될 것이라며 일부 은행은 기존의 인력을 더욱 감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현장의 노동자들은 결국 기존의 과업이 남아 있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거라고 느낀다.

감정노동 문제, 예방과 사후처리 강화돼야

금융노조의 이번 실태조사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폭언과 성희롱, 성추행 등 직장 내 불쾌한 언행과 다양한 갑질 문제, ‘감정노동’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동료나 상급자 등 직장 내부, 혹은 고객 등 직장 외부에서 이와 같은 가해 사례에 대한 조사와 함께 이를 예방, 처리 절차에 대해 구분해 물었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단히 이슈화가 되고 있음에도 안타까운 점은 여전히 이와 같은 사례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문제를 예방하거나 발생한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 또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설문 응답자 중 지난 1년 사이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31.4%였다. 상급자로부터 폭언을 당한 이들은 13.3%, 동료로부터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들도 13.3%였다.

폭행이나 성희롱을 경험한 이들도 소수 발생하고 있다. 고객으로부터 폭행이나 성희롱 경험은 각각 1.2%와 3.9%이며, 상급자나 동료 간에도 이와 같은 사건을 발생하고 있다.

금융노동자들이 지난 1년 동안 상급자로부터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 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모두 43.9%에 달한다. 이들 중 84.8%가 그냥 묵묵히 참고 상황을 넘겼다고 말했다. 이유는 문제제기를 해야 해결되지 않을 거 같아서(44.3%)란 답이 가장 많았다.

이와 같은 상황 발생 시 상담 창구가 설치돼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응답도 36.2%를 보였으며, 해소 프로그램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64.4%, 사건 발생 후 휴식이나 휴가를 적용받지 못했다는 응답도 95.9%로 대다수를 이뤘다.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의 정의에 의하면 감정노동이란 고객이 우호적이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종사자들이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압하거나,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등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을 지칭한다.

감정노동은 다음과 같은 공통적 특징을 보인다. 우선 고객과 직접 대면하거나 일대일로 통화하는 경우, 둘째, 대접받는 느낌, 만족감 등을 느끼거나 위협감을 느끼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 셋째, 조직 차원의 모니터링을 통해 고용주가 직원의 감정적 활동에 관해 어느 정도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산업안전보건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을 통해 감정노동 문제와 관련한 사항이 제도적으로 정비되기도 했다.

이러한 감정노동 이슈는 공공성에 관한 대중들의 오해와 ‘손님은 왕’이란 인식의 확산으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양쪽에서 고루 발생하고 있는데, 금융산업은 공공과 민간 양 쪽의 성격을 함께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대표적인 감정노동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금융노조는 감정노동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금융노조는 2021년까지 3년에 걸쳐 감정노동 문제에 대한 단계적 대안 마련을 아래와 같은 프로세스로 마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