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 황당한 주장
청와대 앞 황당한 주장
  • 한종환 기자
  • 승인 2018.10.05 13:14
  • 수정 2018.10.05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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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요구와 주장, 모두 같은 무게일 수 있을까?

[커버스토리]소통→참여→모색 ⑤

청와대 앞엔 언제나 시위자들과 농성자들이 있다. 그들이 청와대를 향해 청원하는 요구와 주장은 다양하다. 사람들이 봤을 때 어떤 이들은 타당한 주장이라고 여기다가도, 어떤 이들은 다소 황당한 주장을 한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이들을 들여다봤다.

황당한 주장의 무게

청와대 사랑채 근처에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분수대와 관광객, 그리고 1인 시위자들과 농성장으로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청와대 앞에는 항상 일정 수의 시위하는 사람들과 농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부당함이나 억울함 때문에 권력의 중심부 가까이에서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다. 많은 사람이 아는 사연도 있고,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사연들도 있다. 그리고 이 중에는 또다시 타당해 보이는 주장과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황당한 주장 중에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빨리 처벌해라는 게 있었다. 이유인즉슨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죽이러 오는데 행안부 장관은 뭘 하고 있냐고 처벌하라는 것이다. 행안부 장관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엄중한 직책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황당하다고 여겨 가볍게 넘길 주장이다.

그 주장을 한 사람은 당시 뜨겁게 달아오른 바닥에 주저앉아 스티로폼 박스에 매직으로 한 자, 한 자를 허투루 쓰지 않고 정성스레 쓰고 있었다. 그녀는 나름 절실하고 두렵기 때문에 청와대 지근거리에서 그렇게 하고 있었을 거다. 황당한 호소나 주장은 헛웃음으로 날려 보낼 수 있을 듯 가벼워 보이나, 그것을 표현하는 그들을 직접 보면 인생을 걸 만큼 무거운, 나름의 억울함이고 원통함이다. 그 무거움이 그들을 청와대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특정 시간이 되자 분수대 앞에서 유명 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곳으로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로 찍고 발언 내용을 노트북으로 받아치기 바빴다. 그 뒤편으로 농성하거나 시위하는 사람들은 멀뚱히 그 장면을 보고 있거나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고 있기도 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단체와 기자들이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기다림의 끝에 악만 남는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서 ‘국민신문고’와 ‘청와대 청원게시판’이 인권유린을 하고, 북한에 매달리고 퍼주기에 정신 팔려 잃어버린 국민을 인권을 찾는다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주장의 근거들을 이야기하다가 옆에 농성하는 쪽을 바라보더니, 다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 오래 있으면 악만 남아요. 정신병적으로 변하기도 해요. 대부분이 그렇게 돼요.”

자신들의 억울함과 하소연을 들어줘서 억울함을 해결해줄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반응이 없다는 거다. 결국엔 기다리다가 악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걸 일종의 정신병으로 규정했다. 그는 여기서 사람들이 이렇게 농성하는 이유가 뭐겠냐며,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내다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분통해 했다. 그 사람은 오른쪽에 종이를 붙여놓은 나무판을 세워놨었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인권유린 하고 있는 국민신문고와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해체해라. 부패한 공직자들에게 뺏길 것 다 뺏기고 잃을 것 다 잃었다. 남은 것은 목숨 뿐이다. 목숨마저 가져가고 배 두드리고 잘 살아라.’

그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돈도 없어 편의점 컵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때도 많다고 했다. 자기는 그러다가 몇 번 구급차에 실려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응급실에 갔다가 치료받고 나올 때는 엄청난 거금의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농성을 이어간다고 했다.

 

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는 말을 하다 단체로 견학 나온 유치원들을 보면 환하게 미소지으며 연신 안녕, 하며 인사했다. 여자아이 한 명이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땅콩 하나 줘? 라고 그가 말하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땅콩을 주려는 찰나 인솔하는 선생님이 아이 손을 끌며 그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건냈다. 이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그는 괜찮다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미안해요.”

그의 주장을 들을수록 나름의 확신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한참을 주장하다 감정이 솟구쳐 종교와 신에 대해 말한다.

“내가 여기서 보름을 단식투쟁했는데 청와대에서는 코빼기도 안 비춰. 이게 사람이 할 짓이에요? 생각해봐요. 저 양반(대통령)이 종교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 말하는 내용이 어떻든 신이라면 한 번은 여기 있는 사람들 말을 들어주지 않았겠냐고요. 그것도 억울한 거 있으면 여기서 말하라고 했던 사람이 말이에요.”

신자가 많은 만큼 하소연과 원하는 것도 가지각색일 건데, 그것들을 다 들어보는 신도 꽤 골치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억지스럽기는 해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저 사람 나름대로는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부분에 대한 하소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길어져 자리를 뜨려고 슬쩍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자 그는 오래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 와서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해본 건 처음이네.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정말.”

많은 사람이 청와대 앞에 모인 만큼 근거와 주장의 타당성 정도도 각자 달랐다. 청와대 앞은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