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왜 청와대로 모이는가
한국 사회는 왜 청와대로 모이는가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10.05 13:13
  • 수정 2018.10.05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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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중심의 문제해결 구조, 옳다고 할 수 있나

[커버스토리]소통→참여→모색 ⑥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청와대 앞에 모이는 걸까?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하라!”

어느새 한국 사회는 대통령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당연해졌고, 대통령이 나서야 문제 해결이 ‘한방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에 선다. 오늘도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현재 한국 사회의 이러한 풍경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불통 다음은 소통

열린 청와대 지향하는 문 정부

지난해 5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가능하게 한 촛불 민심 이후에 등장한 정부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날로 커져만 갔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국민들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적폐와 격차, 불평등, 저성장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여러 갈등과 문제를 정부에서 해결해 주기를 고대했다. 임기 시작부터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는 ‘소통’이였다. 이는 이전 정부의 불통에 답답함을 느낀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 위한 첫 번째 조치이기도 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에 청와대는 대통령이 머무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만큼 청와대라는 장소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춘추관 정문 앞 분수대 광장을 동서로 잇는 400여 미터 구간을 24시간 전면 개방하는 등 청와대와 국민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하나하나 실천해나갔다.

그뿐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의 일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보고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대통령의 일정을 공개했다. 이제 국민들은 대통령의 하루 일과를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부의 소통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이다. 정부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내세우고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변할 수 있도록 국민청원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접수된 민원은 총 4만 8,177건으로, 이는 이전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접수된 민원 3만 3,179건 대비 45% 증가한 양이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가 소통을 이번 임기 동안의 큰 그림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것은 앞에 소개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 철학이 긍정적인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지금 국민들의 아우성은 청와대로‘만’ 향하고 있다. 모든 문제를 나라가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모든 이슈가 작든 크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국민청원에 올라오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청와대가 모든 이슈를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함께 이어지고 있다. 이제 국민청원 홈페이지는 건강한 여론의 장에서 멀어지고 떼쓰기의 장이 돼버린 지 오래다.

 

대통령 의지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물론, 모든 주장을 일방적인 떼쓰기로 몰아가기 힘든 지점도 있다. 또한, 실제로 대통령의 의지와 지시로 문제를 풀어간 사례가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노동 공약으로 가지고 나왔다. 그동안 소외됐던 노동을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장시간 근로 해소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한 기본 계획의 수립 ▲체불임금 해소 ▲노동인권교육 및 ILO 핵심협약 비준을 통한 높은 수준의 노동기본권 보장 ▲노조가입률 및 단협적용률 제고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공공부문 노동이사제의 도임 확대 ▲위험의 외주화 방지 등을 정책 과제로 설정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계를 뒤흔든 첫 번째 행보는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 직접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하고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를 시작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가 빗발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오랜 숙제 중 하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하나의 신분 계급으로 굳어졌고,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범으로 자리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일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격차를 없애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행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결과적으로 많은 아쉬움을 낳았다.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1년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추진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1년의 성과를 묻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북 및 외교정책에는 각각 83%, 74%가 ‘잘했다’고 응답한 반면, 경제 분야에서 ‘잘했다’는 평가는 47%에 머물렀다. 이는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뼈아픈 비판이었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통해 민간부문 일자리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일자리 정책의 핵심이었으나, 지나치게 정부와 공공부문에 일자리 무게를 실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절차와 과정이 미흡했다는 비판도 따랐다.

지난해 5월 15일에는 스승의 날을 맞아 세월호 참사 당시 숨진 단원고 기간제 교사 김초원 씨와 이지혜 씨의 순직 인정 절차를 밟을 것을 대통령 지시로 내리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두 분 교사의 순직을 인정함으로써 스승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다하려고 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 등 순직 인정에 대한 권고가 있어왔고 대통령께서도 후보 시절 국민 공약으로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을 국민들에게 약속한 바 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의지와 지시가 있다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소통만으로는 문제 해결할 수 없어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대통령이 해결하는 사회. 우리는 이런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정부 부처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대통령 만능주의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진다. 한국 정부는 대통령 직속기관과 국무총리 직속기관이 존재하며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외교부 등 18개 각부를 두고 있다. 이들이 제 역할을 했다면 문제 해결을 대통령에 기대는 모습은 없을 것이고, 다시 말하면 이들에 불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할 것은 정부 부처뿐만이 아니다. 시민의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시민사회단체도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면서 정부의 역할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소통 철학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전 정권의 불통이 가져다준 결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소통은 갈등 해소의 신호탄은 맞지만 소통이 국민의 인기를 얻으려는 포퓰리즘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소통을 중시하는 것은 좋지만 정부가 민원해결소를 자처해서는 안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남은 임기를 채워나갈 문재인 정부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