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참여의 힘, 다시 되짚어 본 숙의와 경청
시민참여의 힘, 다시 되짚어 본 숙의와 경청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10.05 13:12
  • 수정 2018.10.05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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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어떤 의미를 남겼나?

[커버스토리] 소통→참여→모색 ⑧

2017년 7월 24일 출범해 같은 해 10월 20일까지 3개월가량 활동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정부에 정책을 건의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마무리한다. 이후 발간된 논의 백서는 ‘숙의와 경청, 그 여정의 기록’이란 제목이 붙었다.

공론화위원회는 출범하기 전부터 여러 가지 논란과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큰 비판 거리가 되었던 것은 국가적인 중요 사안을 비전문가인 시민들의 의견으로 매듭지을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과거와 다른 공론화 과정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우려가 무색하게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했다는 호평이 뒤따르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가 가능했던 원천은 무엇일까?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는 “공론의 장에서 공적의식과 토의문화를 유감없이 발휘한 우리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 덕”이라고 강조한다. 조사통계 절차에 의거해 엄정하게 선발된 471명의 시민참여단은 대표성과 규모, 다양성 측면에서 작은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은 한 달 동안 몰입과 집중을 통해 진지하게 숙의하고 경청하면서 자신과 입장이 상반된 이들도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열린 자세를 견지했다. 시민참여단의 진지한 태도는 참여하는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기존의 공론조사와 이번 위원회의 시민참여형 조사의 차이점을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우선 기존의 공론화 기법과 달리 공론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됐다는 점, 둘째로 전 세계적으로 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민참여단을 선정하는 데 엄정한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높은 참여율을 보여 그 ‘대표성’을 대폭 강화했다는 점, 셋째로 기존의 기법과는 달리 오리엔테이션이나 이-러닝 학습, 기간을 늘려 진행한 합숙토론 등을 감안할 때 숙의의 수준을 대폭 올렸던 점 등이 그것이다.

공론화위원회의 이와 같은 활동 결과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적 권력이 국민들의 숙의를 통해 결정되었다는 정치적 의미 외에도, 첨예한 갈등 사안을 조정하는 절차로 작용했다는 데에서 사회적 의미도 찾아볼 수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은 일상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갈등을 피하거나 미봉책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관리하며, 조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회적 노력은 오히려 사회 갈등을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목한다.

소통, 참여와 논의를 이끌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도출한 결과의 정합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번 기사를 통해 말하고 싶은 바가 아니다. 논의의 과정과 결론 도출에서 우리 사회 다양한 갈등 사안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다.

갈등 사안에 대한 숙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안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끊임없이 오가야 한다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또한 각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에 대한 활발한 소통이 가능해야만 적극적 참여를 통한 해결책의 모색이 가능할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활동 내역에서 살펴볼 수 있는 ‘소통’의 영역은 크게 두 가지 갈래를 나눠볼 수 있다. 한 가지는 사안 자체를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리려는 ‘홍보’ 차원의 소통과 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측면을 꼽을 수 있다. 나머지 한 가지는 각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경청하고 이를 공개적인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노력이다. 시간과 품과 비용(?)을 들이면 가능한 전자에 비해, 후자의 경우 훨씬 더 체계적인 분석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자명해 보인다.

신고리 5·6호기 건설과 관련해 공론화위원회는 주요 이해당사자를 크게 건설 재개와 중단 입장으로 구분했다. 건설 재개 측은 다시 공론화를 인정하는 그룹과 인정하지 않는 그룹으로 나눴다.

당시 논의를 되짚어 보자면 공론화를 인정하면서 건설 재개를 주도하는 그룹은 한국원자력산업회의, 한국원자력학회 등을 구심점으로 한 원자력 유관기관, 단체였고, 건설을 중단하자는 쪽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을 중심으로 전국 900여 개 시민단체가 연합한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이었다.

공론화위원회는 숙의 과정에 본격 돌입하기 이전 양쪽 이해당사자들과 만남을 갖고 소통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소통협의회는 공론화 과정의 주요 이슈에 대해 양쪽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 조정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었다. 원활한 공론화 과정을 위해 협의의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했으며, 이해관계가 첨예해 이견 조정이 어려운 경우 당사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되, 최종적으로 공론화위원회가 결정권한을 갖는다는 점도 양측의 동의를 얻어냈다.

소통협의회는 수시로 양측 당사자들과 서면, 유선 상의 논의를 계속하는 한편, 정례회의를 7차에 걸쳐 진행한다. 공론화 과정 전반에 대한 논의가 오갔지만, 가장 치열한 논의가 벌어졌던 것은 설문조사 문항과 자료집 제작, 이-러닝 동영상 제작, 참관인단 구성, 토론회 전문가 섭외 등과 같은 사안이었다.

공론화위원회 소통분과 위원들은 위에 언급된 사안들의 경우 의견 조율이 무척 어려웠다고 회상했는데, 건설 중단을 원하는 시민단체와 건설 재개를 원하는 원자력단체 양쪽 모두 자기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공론화 과정 참여를 보이콧하겠다고 밝히기도 한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위원회는 끊임없는 중재 노력으로 결국 양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소통협의회 차원에서 양 이해당사자가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참여단의 숙의 과정에 밑바탕이 되었다. 아울러 이번 사안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상기시켰으며,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의 수용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고 공론화위원회는 평가하고 있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 채널로 활용되었던 공식 홈페이지는 위원회 활동기간 중 모두 42만 6,143명이 방문하는 등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공론화 참여방에는 모두 8,494건의 국민 제언이 쏟아졌는데, 건설 재개를 주장하는 의견이 약 20%, 건설 중단을 주장하는 의견이 약 15%, 공론화 과정 자체에 대한 의견도 7% 가량 제안되었다.

특이하게 공론화위원회는 2017년 12월 서울외신기자클럽의 언론상을 수상하는데,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국내외 주목을 받은 사안을 공론화 방식으로 풀어감으로써 민주주의를 내실화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김지형 위원장은 수상소감에서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이 보여준 토론의 모습을 통해 표현의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전문가인 시민들의 성숙한 역량

참여를 통한 문제해결의 모색이란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 과정의 백미는 무엇보다 시민참여단의 활동 과정이 아닐까 싶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의견개진이, 마치 정치권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것처럼, 공론화 과정을 파행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장으로 지속적으로 펼쳐졌다는 점도 주목할만하지만 말이다.

공론화위원회 갈등관리분야 위원을 맡았던 이희진 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총장은 “이번 공론화 과정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471명 시민참여단의 합창과 하모니”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과정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며 “시민참여단이 발휘한 소명의식과 책임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진정한 우리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 힘이자 조화로움”이라고 밝혔다. 또한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한 각 성원들의 역할 역시 강조한다.

위원회 소통분과 위원을 맡았던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 기획조정본부장도 “오리엔테이션 때 귀가 버스 차례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마지막 시간까지 질문하는 시민참여단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회의적인 보도와 이야기들에 익숙해질 때 시민참여단의 진지한 질문은 참여할 때 발휘되는 역량을 갖춘 시민들의 존재를 실감케 했다”고 회고한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기획과 운영을 맡은 각 분야 위원들, 전문가들이 놀라움을 보인 점은 시민참여단이 보여준 성숙한 모습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동안 전문성을 이유로 극소수에게만 열려 있던 주제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보여준 토론의 내용과 태도는 오히려 전문가들이 시민들에 대해 무지했음을 보여준다’, ‘학교 교육의 과정에서, 지역사회에서 학습자들의 참여를 활성화하면 미래의 시민들이 얼마나 더 큰 역량을 쌓고 발휘하게 될지 기대된다’ 등의 감탄사가 줄을 잇고 있다.

시민참여단의 이와 같은 활동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까닭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원활한 논이 운영이 가능하도록 세심하게 기획하고 조율한 이들의 공도 빠질 수 없다. 이들은 하나 같이 처음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해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을 때 걱정이 태산이었다고 소회한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인 데다가, 한국사회는 논의와 합의가 익숙하지 않은 풍토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남형기 공론화지원단장의 회고는 이와 같은 우려를 잘 보여주고 있다. 논의 시작 단계부터 “일부에서는 위원회를 들러리로 세워 놓고 짜놓은 각본에 의해 공론화가 운용될 것이란 지적이 있었다”며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현장에서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보았다”고 한다.

대안 모색의 과정을 생각하자

다변화한 현대 사회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갈등은 피하거나 극복해야만 할 것으로 치부됐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갈등이 피할 수 있거나 극복되는 것이라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문제해결은 곧 갈등의 해소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청와대사랑채를 찾는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권력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이 문제를 해결하는, 갈등을 해소하는 길일지는 미지수다.

짧게 살펴본 사례들만 보아도 우리 사회는 그동안 많은 실험을 해 왔다. 일정 부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경험도 있었고, 소기의 성과에 못 미친 경우도 있었다.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교훈, 소통과 참여의 힘으로 대안을 모색해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