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걸음의 교훈들
제자리걸음의 교훈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10.05 13:12
  • 수정 2018.10.05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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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쟁점, 소통도 참여도 찾아보기 어려워

[커버스토리]소통→참여→모색 ⑦

사회가 발전한 만큼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는 복잡해졌다. 특권을 가진 일부를 위한 사회도, 공익이란 이름 아래 소수의 권익이 무시되는 사회도, 발전한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바라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그럼 어떤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가? 구성원들의 더 많은 논의와 치열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물며 경제와 산업이 위기로 진단되는 오늘이라면 더욱 그렇다.

안타깝게도 사회 구성원들 다수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예민한 사회적 의제를 두고, 앞서 말한 것처럼 참여와 협력을 통한 합리적 대안 도출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사안들이 늘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좋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매년 반복되는 뜨거운 논란

매년 최저임금 결정 논의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첨예한 대립 가운데, 공익위원들의 손을 빌려(?) 간신히 결정되었다. 시한이 임박해 마라톤회의를 계속하거나 기한을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 최저임금 논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급 8,350원, 전년 대비 10.9% 인상 수준으로 결정되기까지 우여곡절이 계속됐다. 마지막까지 사용자위원과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의 불참 속에 결정됐다.

매년 반복되는 모습을 두고 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도 제기된다. 1986년 12월 31일 제정된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지 30년이 흘렀다. 법의 취지야 변함이 없지만, 30년 전과 달라진 현실을 고려할 때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변화란 다름 아닌 최저임금 결정방식 혹은 권한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최저임금과 관련해 ILO는 관련 협약과 권고, 회원국의 사례 등을 정리해 <최저임금 정책 지침서(Minimum Wage Policy Guide)>를 제시한다. 여기서 ILO는 최저임금 결정방식과 관련해 ▲사회적 파트너 간의 충분한 협의와 참여 ▲독립된 전문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핵심 ‘파트너’는 다름 아닌 노-사 대표자이다. 또한 협의와 참여의 틀로 제시되는 것이 다름 아닌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이다.

후자의 경우는 ‘국가의 일반적 이익을 대표하는 데 권한이 있는 사람’이 독립된 전문가여야 하며, 덧붙이자면 최저임금은 실증적인 근거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고 그 효과 역시 세심하게 검토돼야하므로 전문가 및 다양한 국가 차원의 통계자료와 데이터가 지원돼야 한다고도 언급한다.

한국의 경우 최저임금의 결정 권한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갖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한 대로 결정하도록 되어 있어, 사실상 독립된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는 방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ILO 역시 한국의 경우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실상 최저임금 결정권한을 위임 받아 갖고 있는 사례로 분류한다. 한국처럼 별도 위원회 심의 후 이를 참고해 행정부가 결정하는 방식은 스페인과 프랑스 등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그밖에도 미국이나 브라질의 경우처럼 국회의 승인이나 의결 방식이 있고, 그리스나 네덜란드처럼 행정부가 결정하되 노사단체 등 의견수렴을 거치는 방식, 독일이나 영국처럼 노사단체 등이 참여하는 별도의 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방식, 남아공처럼 기타 단체협약 등을 통해 결정하는 방식 등의 사례가 알려져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올해 펴낸 <최저임금 30년사>에 따르면, 한국의 제도가 이와 같이 설정된 것은 1986년 법 제정 당시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위원회에 자문기능만 부여할 경우 정부 주도로만 최저임금 제도가 운영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사-공익 위원 각 9명씩 구성돼 3자 합의로 결정되는 방식을 결정한 것은 성숙한 노사관계가 정착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컸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매년 최저임금은 극심한 난항을 겪다 표결 끝에 결정되고 있는데, 2000년 이후 3자 합의에 의해 최저임금이 결정된 해는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그치고 있다.

노-사 최임위원이 동 수인 가운데,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의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에 따라 노동계나 경영계는 공익위원들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제도 시행 30년 동안 정부의 재심 요청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 등을 살펴볼 때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곧잘 터져나오는 상황이 이해된다.

제도 개선과 관련해선 현행 운영의 큰 틀을 손대지 않고 보완하는 방안과 최저임금 결정 권한을 국회로 이양하는 방안 등이 회자되고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엔 올해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약간의 실험(?)이 진행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올해의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변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과 관련된 법 개정 논란이었다. 지난 2017년 말부터 최임위는 노사공 위원이 추천한 전문가로 제도개선 TF를 구성하고 논의를 계속했으나 주요 쟁점에 대해서 ‘병렬적’ 결론을 내렸다.

5월 24일과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에서 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노동계는 이에 반발해 최저임금 논의 불참을 선언한다.

이에 따라 6월 28일 열린 제8차 전원회의까지 근로자위원이 불참한 채 진행된다. 최임위는 특히 공익위원들을 중심으로 노동계의 조속한 회의 복귀를 촉구했으며,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노동계는 외곽에서 투쟁을 계속한다.

한국노총은 7월 3일 열린 제9차 전원회의부터 다시 논의에 복귀하는데, 국회가 일방적으로 산입범위를 확대한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금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근로자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최저임금 표결이 진행될 경우 그 피해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산입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 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마다 이와 같은 법 개정이 실제 저임금 노동자,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법 개정 과정에 참여했던 한 환노위 위원은 “국회 논의 중단이 언급된 시점에서 이를 다시 최임위로 결정을 넘기는 방안도 고려되었는데 최임위 차원에서, 특히 공익위원들이 결정하기 어려운 점에 대해 언급했다”며 “최임위 차원에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안이니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라도 무언가 결정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욱이 국회 안에서의 논의 과정에서는 여야가 주고받는 과정이 필요함을 설명하면서, “마지노선이라도 노사 간 기준이 마련되었으면 싶었지만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법 개정에 대한 노동계의 비판 여론에 대한 일종의 해명인 셈이다.

 

참여로 시작한 광주형 일자리, 불통으로 브레이크

지역참여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자 사회 각 층의 소통의 본보기로 주목 받던 광주형 일자리는 최근 큰 걸림돌을 만났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 노동계가 발을 빼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자칫 좌초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2015년 민선 6기 광주시의 중심 일자리 사업으로 광주형 일자리가 처음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광주라는 특정 지역의 사업이 아니라, 촛불 정국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의 모태가 되었다.

하지만 민선 7기 광주시에 이르러 광주형 일자리는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사업으로 추진된 영역은 구체적으로 두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일자리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광주형 생활임금을 채택했다. 여성과 청소년 노동 등에 대한 보호와 관련된 다양한 조치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빛그린 국가산단의 대규모 제조업 일자리 신규 창출 계획이다. 노사상생형 혁신산업단지로서 친환경 자동차 및 부품 클러스터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광주시가 이와 같은 계획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구체화시킨 것은 비단 광주만이 아닌 국내 지역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미래 세대들이 떠나가고 있는 지역사회, 그로 인한 경쟁력의 약화, 만혼/저출산으로 인해 급격해지고 있는 고령화, 그나마 남아 있는 일자리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질 낮은 일자리로 미래에 대한 꿈을 꺾어 놓는 현실….

이러한 위기의식을 기본으로 광주형 일자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세 가지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하기 좋으며, 노동하기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명해 보이기도 하고 보편적인 가치로 들리지만, 지역의 현실에서는 ‘과연 제대로 실현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지난 9월 19일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의장 윤종해)를 위시한 지역의 노동계는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시와 현대차의 투자유치 협상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진행된 협상 과정에서 내용의 공유 없이 “밀실협상으로 일관”하는 광주시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토로한 것이다.

빛그린 산단에 새로 유치될 사업장에서는 기존의 완성차 기업의 임금의 절반 수준인 연봉 4천만 원 수준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형 일자리는 종종 ‘반값 일자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노동계가 광주형 일자리에 동참했던 것은, 광주지역에서 연 4천만 원 수준의 임금이면 적정한 수준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자체가 나서서 교육, 주거 등 사회적 인프라에 대한 지원이 더해진다면, 지역사회 전반의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협상 불참을 선언한 노동계는 “당초 최저 4,000만 원으로 예상됐던 광주형 일자리 평균 연봉이 주야 8시간씩 교대근무해도 5년간 2,100만 원에 그치고, 공장 유치 후 5년 동안 노동조합 설립의 제한, 협력업체와의 관계 설정 등에 대한 어떠한 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주시 생활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 수준이면 1차, 2차, 3차 협력업체의 임금수준은 어쩌란 말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다급해진 것은 광주시이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노동계의 기자회견에 앞서 지난 9월 14일 ‘광주형 일자리 사업 중간보고’를 시민들에게 발표한다. 광주형 일자리의 가치와 의미는 여전히 중요하며 지역의 미래를 위한 사업으로 최선을 다해 추진해 왔다고 토로한다.

현대차와의 투자협약 체결 과정은 임기 교체를 앞두고 전임 민선 6기가 노동계와의 소통 없이 지나치게 서둘렀다고 말한다. 민선 7기 출범 이후에는 ▲투자협상 과정에서 노동계의 참여 보장 ▲노사민정이 합의한 4대 원칙 준수 등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대화의 진전이 없어 안타깝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불참 선언 이후 이병훈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와 같은 내용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문제제기한 임금 수준 등의 구체적 사안에 대한 언급 없이 향후 노동계의 요구사항 검토를 포함해 계속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며 최선을 다해 입장을 조율해 나갈 것이라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노동계가 비판하는 내용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노동의 ‘참여’로 의미가 부여됐던 광주형 일자리가 되려 노동의 ‘배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깊은 실망감을 읽을 수 있다. 노동계는 이와 같은 ‘배신의 기억’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 정보의 공유나 소통 없이 일방적인 제시안을 들이밀며 ‘사인하길 강요’한다거나 ‘들러리 서는 것을 강요’하는 등의 모습 말이다.

오늘 광주형 일자리가 처한 위기는 어쩌면 예측되었던 것일지 모른다.

노사민정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생산방식을 혁신하고, 노사파트너십 및 기업 간 상생질서 구축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고용을 확대해 사회통합에 이바지한다는 기본 취지부터 의심을 갖는 이들도 있었다. 이와 같은 목표는 구체적으로 적정 임금, 적정 근로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관계 개선 등을 실현함으로 가능하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라는 회의적인 물음은 어제도 오늘도 계속된다.

지역의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이와 같은 회의와 한계를 극복하고자 쏟았던 노력이 단지 ‘의미 있는 실험’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앞서 광주시의 각계각층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것처럼 지역은 지금 ‘위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