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노크노크] 아는 만큼 보인다
[이동희의 노크노크] 아는 만큼 보인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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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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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한 대학 신문방송학과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신문시험’을 봤다. 학과에서 매 학기 다른 일간지를 지정해주면 학생들은 지난 일주일치 기사를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일종의 쪽지시험이었다. 신문을 읽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학과 교수님들이 내린 특단의 조치였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까지 와서 매주 쪽지시험이라니. 그것도 신문을 읽으라고? 신입생 환영회 때 신문시험의 존재를 알고 불만을 터트린 기억이 난다. 하지만 불만을 터트리면 뭐하나. 신문시험 통과 여부가 학점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기에 대충 넘어갈 수는 없었다.

결국 대학 3년 동안(4학년은 시험을 보지 않았다) 벼락치기하듯이 신문을 몰아서 읽고, 써머리(Summary)를 만들어 친구들과 돌려보는 일을 매주 반복해야 했다. 애플의 창업자를 묻는 문제에 ‘스티븐 잡스’라고 써놓고는 스티븐이나 스티브나 비슷한 거 아니냐며, 이 정도 귀여운 실수는 정답으로 처리해달라며 떼썼던 일, 조교에게 힌트 좀 주면 안 되냐며 졸랐던 일이 신문시험에 대한 작은 추억들로 남아있다.

당시 나에게 신문은 시험을 위한 교과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매주 억지로 읽고 시험을 쳐야 하는 교과서가 재미있을 리가 있나. 내가 기사를 접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지만 기사를 재미있게 읽기 시작한 것은 기자 일을 하면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사가 되고, 그 기사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다.

지난 추석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가족은 매년 큰아버지 집에서 명절을 보낸다. 근데 큰아버지 집이 하필 한국지엠 부평공장이 위치한 인천 부평구다. 차를 타고 부평공장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집안 어른 중 한분이 뜬금없이 “귀족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 것”이라며 혀를 차셨다. 지금도 한국지엠 부평공장 담벼락에는 지난 5월 군산공장 폐쇄를 규탄하고 경영정상화를 요구하는 노조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 현수막이 집안 어른에게는 ‘귀족노조가 내는 듣기 싫은 목소리’로 들렸나 보다.

지난 3월, 한국지엠 사태를 진단하기 위해 10명이 넘는 취재원들을 만났다. 그 내용을 정리해 총 6개의 기획 기사에 담았다. 취재원 중에는 한국지엠 군산공장 해고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눈 앞에서 봤기 때문에 한국지엠의 위기가 노조 때문이라고 말하는 집안 어른과는 같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다행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처음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진 표현이다. 내 이름 뒤에 기자를 달고 이제 1년 8개월. 신문시험 때문에 억지로 신문을 읽었던 대학생은 이제 없다. 외면하지 않는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참 더 배우고 알아가야 할 때. 적어도 하루를 뉴스 보기로 시작할 만큼은 컸다. 잊지 말자.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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