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건조증 60배, 하지정맥류 26배 많은 직종은?
안구건조증 60배, 하지정맥류 26배 많은 직종은?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8.10.17 14:48
  • 수정 2018.10.17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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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결과' 발표
rykim@laborplus.co.kr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가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백화점 화장실에서 판매직 노동자를 만난 적 있으신가요?”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는 17일 오전 국회에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연맹)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연구결과 발표’에 앞서 이렇게 질문했다. 김 교수는 “판매직 노동자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는 많았어도 판매직 노동자 2,806명을 대상으로 건강실태를 조사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며 해당 연구의 취지를 밝혔다. 그는 전체 설문조사 응답자 가운데 96.5%(2,708명)가 여성인 만큼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문제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전체 판매직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가 근무 중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로 인해 방광염과 성대결절, 안구건조증 등의 건강문제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조사 응답자 가운데 절반 이상인 59.8%(1,677명)가 ‘최근 일주일 사이 근무 중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이들이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 이유는 ‘매장에 인력이 없어서(62,4%)’, ‘화장실이 멀어서(21.6%)’, ‘칸 수가 부족해서(24.1%)’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20.6%(578명)는 지난 1년 동안 방광염 진단을 받거나 방광염으로 치료를 받았다. 이는 같은 나이대 여성노동자(2013년 건강보험공단자료에 포함된 20~49세 직장가입자 여성집단)보다 3.2배 높은 수치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워서 애초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 이도 전제 응답자 가운데 42.2%(1,185명)에 달했다. 이들이 안구건조증을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비율도 38.4%(1,077명)로, 같은 나이대 여성노동자보다 60배 높게 나타났다.

한편, 백화점들은 판매직 노동자들의 고객 시설물(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고객용 화장실, 고객용 휴게실, 주차장 등) 사용을 금지하는 조항을 근무수칙으로 두고 있다. 판매직 노동자의 77.%(2,173명)가 백화점 혹은 면세점으로부터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앉을 권리’, ‘쉴 권리’는 어디에?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 사측에 권고하는 ‘앉을 권리’와 ‘쉴 권리'도 현장에선 소용없었다. 의지비치 규정은 10년 전에 도입됐지만 의자가 없거나 의자가 있어도 앉을 수 없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27.5%(771명)와 37.4%(1,050)로 사실상 절반 이상인 64.9%(1,821명)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수 15.4%(428명)와 7.9%(223명)가 각각 하지정맥류와 족저근막염을 진단받거나 치료 받았고, 이는 같은 나이대 여성노동자보다 각각 25.5배, 15.8배 많은 수치다.

하루 종일 구두를 신고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질환은 발 통증인 것으로 드러났다. 판매직 노동자의 91.9%(2,555명)가 지난 한 달 근무 중에 발에 통증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이들은 그 임시방편으로 자신의 사이즈보다 큰 구두를 구입해 신고 있었다.

휴게실의 의자 수가 부족하거나 면적이 좁아서, 휴게실이 멀어서 등의 이유로 휴게실을 이용하지 못한 이들도 절반이 넘었다. 이들 가운데 판매직 노동자 509명은 휴게실 대신 비상계단에서 쉬었다고 답했다.

18일부터 ‘감정노동자 보호법’ 강화되지만

이들이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이나 인신공격, 폭력적인 언행을 겪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미미하거나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으로부터 폭력에 대비한 가이드라인 존재 여부와 실제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묻는 설문에 34.6%(972명)가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답했고 32.1%(901명)가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 백화점이나 면세점 측에서 판매직 노동자에게 부당하게 사과를 강요(15.9%)하거나 노동자의 사비로 문제 해결을 요구(5.0%)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한편, 고객의 폭언과 폭행 등 괴롭힘으로부터 고객응대 근로자들의 ‘건강 장애’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주의 조치의무 등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이 오는 18일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이성종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납품업체 소속 직원들이 90%인 백화점 같은 유통매장에서는 취지를 살리기 어려운 법안”이라며 “백화점이 백화점에 속한 직원 10%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승섭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서비스연맹과 함께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백화점 화장품 27개 브랜드 소속 판매 노동자 1,990명과 면세점 화장품 및 부티크(시계 등) 41개 브랜드 소속 판매 노동자 816명을 대상으로 판매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 실태를 조사했다.

왼쪽부터 현장노동자 증언 발언 맡은 LVMH 노동조합 김명신 부위원장, 한국시세이도 노동조합 김수정 사무국장, 엘카코리아 노동조합 최상미 부위원장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왼쪽부터 현장노동자 증언 발언 맡은 LVMH 노동조합 김명신 부위원장, 한국시세이도 노동조합 김수정 사무국장, 엘카코리아 노동조합 최상미 부위원장.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