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취직’이라는 사건에 대하여
[김란영의 콕콕] ‘취직’이라는 사건에 대하여
  • 김란영
  • 승인 2018.10.24 10:08
  • 수정 2018.10.24 11:08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란영의 콕콕] ‘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rykim@laborplus.co.kr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요즘 ‘취직’이란 ‘사건’에 공포를 느낀다. IMF 외환위기 이후 청년 실업률이 최고치를 기록한다는데도.

취직을 하면 내일 아침 ’갈 곳‘이 생긴다. 다달이 받는 월급으로 부모님께 안마기를 사드릴 수도 있다. 그런데 취직 뒤엔 ’나‘라는 개별적인 존재가 직장과 직업 이름 뒤로 사라져 버린다. 나는 ‘삼성전자’의 ‘누구’가 되거나, 혹은 ‘터미널 떡볶이 집’의 ‘누구’가 된다. 이 ‘누구’라는 익명성은 인간 저마다 지닌 아름다운 속성들을, 때론 지랄 맞은 ‘특수성’을 드러내 줄 모른다. 아니, 감춘다. 나의 몸뚱어리는 여기서, 온몸으로 나를 증명하고 있다.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상대방 직업이 속한 계급적 범주의 속성으로, 그 일방적인 맥락에서 타인을 단정하곤 한다.

다행히도 나는 ‘기자’여서 이 떵떵한 ‘카테고리’ 뒤에 숨어 살 수 있다. 나는 말하기를 잘 못하지만 ‘기자’인 덕에 날카로운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지난 달엔 예전에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가게에 서빙 일을 도우러 갔는데 오랜만에 ‘저기요’가 ‘되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어제는 ‘기자님’이었는데 오늘은 사장님도 아니면서 ‘사장님’도 된다. 그런데 나도 식당에 가면 종업원들을 ‘저기요’라고 부른다. 다짜고짜 이름을 따져 물을 수도 없으니까. “란영씨 안녕하세요. 오백 한 잔 주세요.” 이렇게 상냥하게 주문을 하는 손님이 있다면 고맙지만 우리 사회에선 다소 느끼한 처사다. 아 참, 호주에서 레스토랑 종업원으로 일할 때는 ‘달링(daring)’이었지.

그런데 부르기조차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 발견한 사실인데 여자 경찰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지금까지 쩔쩔매고 있다. 입에 착 달라붙는 ‘경찰 아저씨’와 다르게 여경을 두고는 ‘여자 경찰님’?, ‘경찰 아가씨’?, ‘경찰 아주머니’? 도무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가운데 방법을 아신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어쨌든 취직과 동시에 우리의 계급이란 것이 집단적 동의를 얻어 단번에 정해지고 있는 것이어서 솔직히 조금 끔찍하기까지 했다. 부모님이 그토록 사대문 입성을 당부하셨던 건 이 정글 같은 사회에서 ‘고라니’가 아니라 ‘사자’가 되길 희망했던 생존 노하우의 반영이었을까.

그제 시위에서 만난 요양서비스 노동자들은, 아니 평소엔 이렇게 어렵게 부르지도 않는다. '아주머니'들은 “우리는 노인 똥 치우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어째서 우리 엄마는, 내 친구는 사회로부터 ‘똥 치우는 사람’으로 명명되었을까. 나이 오십이 넘은 아주머니 두 분이 머리를 밀었다. 누군가 나더러 머리를 민둥하게 밀라 하면 나는 곧장 비명을 지를 것이다.

10년 넘게 요양보호사로 일하셨던 아주머니 한 분이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항상 무시를 당하며 일해 왔다”고. 비단 요양보호사들만의 살이의 증언은 아닐 터다. 우리 사회에선 노인의 배변을 치우는 일을 업으로 결정한 이들에게 멸시가 쏟아진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보통사람들은 엄두도 못 내는 이 일을 기꺼이 해내는 데도 존경이 아니다. ‘하대’는 오답이다.

그 분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보다 나은 표현이 좀 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냥 새로이 당황했을 뿐이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산 이들을 일방적으로 정의해 버리는 이 사회의 폭력에. 오래 전부터 이러했던 세상을 두고 그제서야 갑자기 미쳤다고 소리치기가 어색하기도 해서. 그동안 공범이었던 주제에 오늘부터 회개해 천사처럼 살겠다고 약속하기 어려워서.

오늘 아침 아버지에게 세상살이가 이렇게 어려웠던가요, 라고 물었고 아버지는 아침부터 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