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표 뽑아야 퇴직할 수 있는 간호사들...인력 충원 시급
번호표 뽑아야 퇴직할 수 있는 간호사들...인력 충원 시급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8.10.24 17:37
  • 수정 2018.10.24 17: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료노련, 병원노동자 노동조건 실태 발표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이제는 ‘태움’과 ‘임신순번제’에 이어 ‘사직순번제’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인력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직도 순서가 돌아와야 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우리나라 보건의료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간호사 인력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열악한 근무조건을 견뎌 낼 간호사들이 많지 않을 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간호사 면허 보유수는 19.6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3.60명을 웃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6.8명으로 면허 보유자의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2016년 대한간호협회가 실시한 ‘병원 간호사 실태’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 3명 중 1명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났다.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이수진, 이하 의료노련)은 24일 오후 국회에서 ‘병원 내 연장근무 대안은 없는가?’란 주제로 병원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발표 및 토론회를 열었다. 의료노련은 병원노동자들이 퇴직을 하거나 이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연장근무에서 찾았다.

이날 의료노련이 발표한 ‘병원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통계분석 보고서(2018)’에 따르면 병원 노동자 절반이 넘는 68.8%가 일상적으로 연장근무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그 이유로 ‘일상적인 업무 하중(52.4%)’을 가장 높게 꼽았고 그 다음은 ‘인수인계 등 업무준비(13.4%)’, ‘국내외 의료기관 인증평가(5%)’ 순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연장 근무를 하면서도 시간외 근로수당을 신청하지 못해 그 부당함을 오롯이 감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 68.2%가 연장근로 시 시간외 근로수당을 신청하여 지급받지 않는다고 답했고 이들이 근로수당을 신청하지 못하는, 또는 않는 이유는 ‘평가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52.4%)’인 것으로 드러났다.

과도한 업무량은 이들의 점심시간마저 앗아갔다. 병원노동자 21%가 근무 시간 중 식사시간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있었다. 식사시간이 20분 미만이라고 답한 비율도 35.7%로, 두 비율을 합치면 노동자 절반 이상이 끼니를 거르거나 매우 짧은 시간에 간단히 떼우고 있었다.

자연히 노동환경 만족도는 직장생활 만족도를 평가하는 6가지 영역 중에서도 최하점을 받았다.

병원노동자 68.2%가 이직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이들이 이직을 생각한 이유는 ‘업무가 힘들어서(30.4%)’, ‘피로감 등 건강상태(27.1%)’, ‘임금수준 불만족(12%)’ 순이었다.

이들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인력 증원(47.4%)’이 가장 시급하다고 답했다.

이는 의료노련이 올해 3월부터 한 달 동안 14개 병원, 1,377명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이 가운데 간호사가 983명으로 가장 많이 참여했다.

김혜림 의료노련 정책국장은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백의의 전사’다. 병원 내 장시간 노동은 매년 실태조사에서 재차 확인 되고 있다. 병원 규모와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의료 인력 문제는 기, 승, 전 ‘인력’이다. 병원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은 환자에게도 영향을 미치므로 조속한 인력 증원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노동시간 단축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보건의료 인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지원을 규정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