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영의 아메리카노] ‘선’ 긋기가 아닌 ‘원’ 그리기
[강은영의 아메리카노] ‘선’ 긋기가 아닌 ‘원’ 그리기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10.25 15:49
  • 수정 2018.10.2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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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의 아메리카노] 달콤하지만 씁쓸한 아메리카노 한 잔

강은영 기자eykang@laborplus.co.kr
강은영 기자eykang@laborplus.co.kr

요즘 출근 준비를 할 때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에 빠집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 탓에 두툼한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은데, 오후에는 온도가 올라가니 조금은 얇은 옷을 입어도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 옷장을 열고 몇 벌 되지도 않는 옷 앞에서 고민에 빠질 때면 교복을 입던 학창 시절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계절에 맞게 춘추복이나 하복을 입으면 됐으니까요. 학생 때는 교복을 입는 게 지겨워 사복 입는 날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교복을 입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교복을 둘러싸고 일제시대의 잔재니 군사문화니 하는 획일화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빈부 차이를 가려준다는 긍정론도 있습니다. 명품으로 치장할 수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운 학생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모두 똑같은 옷을 입게 해 학생들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한다는 것이지요.

가을 기운이 완연한 주말의 어느 날, 저는 화섬식품노조에서 진행한 체육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날 체육대회는 충북 음성에서 있었습니다. 꿀 같은 늦잠을 포기하고 주말 아침 일찍 전국에서 먼 거리를 달려왔을 조합원들이지만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체육대회에 참여한 한 조합원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도 있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구별 없이 다 같이 하나 될 수 있는 자리”라고 몇 번을 강조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학과 섬유,  IT업종까지 함께 모여 있으니 임금 격차를 능히 짐작할 수 있지요.

조합원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서로의 근황을 묻고 술 한 잔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누가 높고 낮고를 따지는 것이 아닌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 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노동자가 됩니다.” 대학시절,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처음 하셨던 말씀입니다. 돈을 얼마를 받든지 어떤 곳에서 일을 하든지 우리는 결국 일을 하는 ‘노동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지요.

어떤 기준을 나누어 선을 긋고 구분 짓기 보다는 ‘노동자’로 하나의 ‘원’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 적어도 이 날만큼은 모두들 원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