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위 판정에도 꿈쩍 안 하는 옥시, 해고노동자들은 오늘도 길거리에
중노위 판정에도 꿈쩍 안 하는 옥시, 해고노동자들은 오늘도 길거리에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11.02 15:47
  • 수정 2018.11.02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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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형구 옥시RB노동조합 위원장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부당해고의 억울함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어요.”

지난여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옥시레키센키저(옥시RB) 해고노동자가 한 말이다.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이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역시 옥시RB가 익산공장 노동자 36명을 해고한 것을 두고 부당해고라고 판정했지만, 해고노동자들은 여전히 갈 곳 없는 신세다. 지난해 9월부터 청와대, 국회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던 옥시RB노조는 국회 국정감사 시점에 맞춰 상경투쟁을 실시, 벌써 4주째 청와대 앞에서 전 조합원이 부당해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옥시RB 노사 단체협약 제20조(사원채용 및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에 따르면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에 의하여 노동자를 해고할 경우 해고를 하고자 하는 날의 50일 전까지 이를 통보하고 성실하게 노조와 ‘합의’를 거치도록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회사는 노조와 합의를 거치지 않고 근로자대표와 해고를 협의한 뒤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내몰았다. 지노위는 판정문에서 “당시 근로자대표로 선출된 옥시RB 서울사무소 영업부장 오 모씨를 실제 근로자들의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근로자대표로 보기 어렵다”며 “해고와 관련해 회사가 근로자대표와 성실한 협의를 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근로자대표와 성실한 협의가 없었으므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해고 회피 노력, 해고 대상자 선정의 합리성·공정성에 대하여는 더 이상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중노위에서도 해고노동자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이고 “옥시레킷벤키저는 노동자들을 원직에 복직하고 해고기간에 정상적으로 근로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중노위 복직명령에도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지난달 11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석한 박동석 RB코리아 대표는 중노위 원직복직 판정 수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행정소송을)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되풀이 했다. 문형구 옥시RB노조 위원장은 “노조가 봤을 때 회사는 행정법원 소송까지 시간을 끌면서 해고노동자들이 지쳐서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중앙연구원은 “해고노동자들은 더욱 낙담하게 만드는 건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형식적인 대응”이라며 “고용노동부는 지난 1년여 간 실효성 있는 구제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중재노력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정부가 무능으로 일관할 때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는 현실로 발현한다”며 “더 늦기 전에 갈 곳 잃은 노동자들의 호소에 응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뷰] 문형구 옥시RB노동조합 위원장

문형구 옥시RB노조 위원장. ⓒ 한국노총
문형구 옥시RB노조 위원장. ⓒ 한국노총

- 현재 남은 조합원 수가 어떻게 되나?

원래는 140여 명이었던 조합원이 지금은 39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희망퇴직신청을 받았을 때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대부분 그만두셨기 때문에 지금 남아있는 조합원 대부분은 30대 젊은 친구들이 많다. 희망퇴직 당시 받았던 금액이 얼마 되지 않으니 재고용을 바라고 남은 조합원들인데, 회사에서는 신규채용으로도 재고용을 해주지 않고 있다.

- 해고 이후 생계 문제가 상당했을 텐데.

그렇다. 조합원들이 제일 힘든 건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하는 투쟁이 아니다. 투쟁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가장 힘든 건 금전적인 것. 앞서 이야기했듯이 조합원들 나이가 30대가 제일 많은데, 이제 막 가정을 꾸렸거나, 자녀들도 어린 경우가 많아서 생계 문제를 힘들어 하고 있다. 해고 이후 임금을 받지 못한지 벌써 1년이다. 실업급여 수급도 끝났고, 은행에서는 대출도 안 되고. 생계가 어려워지자 가정불화가 생긴 조합원들도 많다. 생계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 중노위 판정까지 1년이 걸린 상황에서 행정법원 소송 결과까지 나오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위원장 말대로 생계 문제 등 시간을 끌수록 힘든 점이 많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투쟁하는 이유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포기할 수 없었다. 고용승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고, 고용노동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고. 투쟁만 1년 넘게 해오고 있는데도 해결은 안 되고 있어서 너무 답답했다. 그래도 어떻게 하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투쟁 밖에 없다. 가만히 있는 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 고용노동부가 구제 노력을 성실하게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단체협약에는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에 의하여 노동자를 해고할 경우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 이건 단체협약에서 노사가 정당하게 결정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노조와 합의 없이 근로자대표와 협의해 노동자를 해고시켰다.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단협 위반을 처벌하거나 공장 매각에 관여했어야 했는데 지노위와 중노위에 맡기고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사전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힘든 건 노동자들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투쟁이다. 1년 가까이 전면적으로 투쟁만 했었는데, 투쟁이 길어지다 보니까 생계 문제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약간의 수위 조절을 해가며 생계와 투쟁을 함께 해나가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