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노동자에게 내일은 없다
택시노동자에게 내일은 없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7.2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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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택시노동자의 하루

택시산업이 심상찮다. LPG 가격 인상으로 인해 택시노동자 1인당 월 부담액은 올해 초에 비해 많게는 30만 원까지 늘어났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도 참아왔던 택시노동자들은 당장이라도 거리로 뛰쳐나올 기세다. 당면한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온라인 <참여와혁신>이 택시산업의 고민을 들어봤다. 

1. 택시노동자의 하루      2. 택시 걸림돌은 이것      3. 해법은 없나?


손님은 줄어드는데

A씨(47)는 ○○운수에서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 운전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다. 여러 일을 전전하다가 나이 서른 다 돼서 시작한 택시 운전이 벌써 18년째다.

오전 7시. A씨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간밤에 운전했던 B씨와 교대해 택시를 점검하고 잔돈을 챙겨서 거리로 나선다.

오늘은 또 어떤 손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을까 내심 기대하며 회사 근처 지하철역으로 방향을 잡는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출근하는 손님들이 제법 있다.

7시 20분. 첫 손님을 태웠다. 순간 운전석까지 진하게 풍겨오는 술 냄새. 밤새 술을 마셨나보다. “가장 가까운 사우나 갑시다.” 알아듣기 힘든 말로 행선지를 말한다. 오늘은 일진이 사나울 모양이다. 근처를 뒤져 사우나에 손님을 내려주고 나서도 한참을 술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환기를 시키고 나서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9시. 출근시간이 어느덧 다 지나갔다. 예전 같으면 출근 손님을 20명은 태웠는데 요즘은 통 신통찮다. 오늘도 겨우 10명밖에 못 태웠다. 벌이는 4만 원 남짓. 이래가지고는 9만3천 원 사납금 채우는 것도 힘들 텐데.
사무실이 모여 있는 오피스타운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기다리다 보면 심심찮게 장거리를 뛰는 손님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이마저도 뜸하다. 거리에는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차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살이 따갑기만 하다. 오늘도 무척 더운 하루가 되려나보다. 오피스타운에는 벌써 빈 택시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LPG 값은 오르고

12시. 그럭저럭 오전을 보내고 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아침도 못 먹고 나와서 오전 내내 돌아다녔어도 수입은 겨우 7만 원을 갓 넘겼다. 날씨도 덥고 벌이도 시원찮아 별로 밥맛이 없다. 그래도 근처 기사식당으로 향한다. 메뉴는 4500원짜리 백반. 그나마 이 집이 근처에선 제일 저렴하고 음식도 깔끔하다. 식당에 들어서니 메뉴판 아래 못 보던 글씨가 붙어 있다. ‘다음주부터 5백 원씩 가격을 올립니다.’

뜨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뽑는다. 다음주부터 5백 원씩 올리면 밥 먹고 나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줄여야 할 모양이다. 끊은 지 몇 년 된 담배가 오늘따라 당긴다. 나른한 식후 졸음을 커피로 쫓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조금 가다보니 계기판에 주유 경고등이 깜박인다. 얼마 다니지도 못했는데 벌써 LPG 충전해야 할 때인가 보다. 충전소에 들려 LPG를 채운다. 2년 전만 해도 3만5천 원이면 가득 채웠는데 지금은 5만 원으로도 부족하다. 오전에 번 돈 대부분이 LPG 값으로 나간다. 사납금 맞추려면 지금부터 정신없이 뛰어야 한다.

오후 6시. 조금 있으면 교대시간이다. 지금 손에 남아 있는 돈은 아침에 들고 나온 잔돈 빼면 9만5천 원. 사납금 넣고 나면 달랑 2천 원 남는다. 조금이라도 더 수입 남기려면 교대하기 전에 손님을 더 태워야 한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입에 풀칠도 어렵다

오후 7시. B와 교대를 하고 나서 회사 사무실로 향한다. 사납금 입금하고 나니 1만5천 원이 손에 남는다. 이 돈 벌려고 아침부터 그 고생을 했나 생각하니 맥이 풀린다. 월급 60만 원에 사납금 넣고 남은 수입금 다 합해도 이번 달 수입은 100만 원 겨우 넘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까부터 참아왔던 화장실이 급하다.

당장 다음 달에 아이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통장에 남은 돈이 거의 없다. 아내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다른 일 시작하라고 성화다. 개인택시 신청해 놨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들리는 말로는 서울에만 3천 명이 밀려 있단다. 한 때는 택시 운전이 꽤 짭짤했는데 요즘은 도통 일할 맛이 안 난다.

그렇다고 당장 새로 할 만한 일도 없다. 젊은이들도 일자리를 못 구해 난린데 내일 모레 50을 바라보는 나를 채용해줄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딱히 내세울 경력도 기술도 없다. 그저 운전대만 잡고 살아온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택시만 운전해서는 먹고 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 걱정 저 걱정에 집으로 향하는 A씨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