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정리해고?
구조조정=정리해고?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11.13 00:23
  • 수정 2018.11.13 0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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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약한 고리부터,
꾸준히 줄었다

[커버스토리] 구조조정을 구조조정하라 ① 구조조정의 역사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기업의 구조조정은 구성원의 정리해고와 동일시됐다. 대규모 고용이 가능했던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대규모의 정리해고가 진행됐고, IMF 외환위기를 지나며 이는 금융업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도 닥쳐왔다.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의해 진행돼야 하는 정리해고는 물론, 비교적 ‘손쉬운’ 고용조정은 꾸준히 이뤄졌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기업의 상시적 구조조정은 필수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사업장에서 구조조정은 주로 인력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알게 모르게, 꾸준히 줄어든 노동

고용노동부의 2013년~2016년 8월 대량고용변동 신고내역을 조사한 결과, 경영상 진행되는 정리해고와 대량 고용변동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법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정리해고에 비해, 대량 고용변동은 경영상 어려움과 관계없이 한 달 내 고용노동부에 신고만 하면 가능해 대기업들의 고용조정의 수단으로 남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기업들의 정리해고는 2013년 32곳 929명에서, 2014년 46곳 1,429명, 2015년 39곳 1,948명 등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량 고용조정은 2014년 27곳 사업장 1만 2,923명에서 2015년 50곳 6,026명, 2016년에는 8월까지만 해도 벌써 74곳 5,791명에 달했다.

2015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포스코는 포스코건설(520명), 포스코엔지니어링(600명) 등 전 계열사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량 고용조정을 추진했다. 두산그룹 산하 두산인프라코어는 입사 4개월 된 신입사원을 비롯해 전 직원의 30% 가까이를 감원했고, 퇴직을 거부하는 직원을 면벽 수행시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정리해고 사업장은 제조업이 61%(64곳)로 가장 많았다. 가장 많은 정리해고 사유는, 원청의 도급·용역 계약해지라고 밝혀 원청의 어려움이 하도급에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상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정리해고와 달리 고용정책기본법의 대량고용 변동은(고용정책기본법 제33조) 한 달 안에 신고만 하면 제약 없이 고용조정을 할 수 있다.

금융권 역시 ‘상시 고용조정’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2014년부터 2016년 8월까지 11곳 금융사에서 3,076명을 감원했다. 한국시티은행 600명, 한화생명보험 543명, 메리츠화재해상보험 420명, 삼성증권 361명을 감원했다. 기타 현대증권, 알리안츠생명보험, 아이앤지(ING)생명보험, HMC투자증권(현대자동차계열), 한국씨티그룹캐피탈 등 각 200명 가까이 감원했다.

쌍용차·한진중공업도 비정규직부터

정규직의 고용이 불안한 가운데, 비정규직의 일자리라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 최근의 경우, 조선·해운산업 등에 대한 구조조정 방법론을 둘러싸고 여·야·정이 제각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주장이 엇갈리는 이 순간에도 해당 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는 이미 소리 없이 진행 중이다.

산업 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직은 늘 소리 없이 잘려나갔지만 한국사회 구조조정의 역사에서 이들은 늘 주변부였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존재였다. 향후 본격화될 구조조정 국면에서 직격탄을 맞을 사내하청 노동자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정부가 원청업체를 교섭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은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긴 대표적인 구조조정 사업장들이다. 정규직 정리해고로 기억에 남지만, 정규직이 잘려나가기 전에 구조조정의 표적이 된 것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었다.

2005년 쌍용차 사내하청 노동자 규모는 1,700여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2009년 5월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쌍용차지부의 총파업 직전 사내하청 규모는 300여 명으로 줄었다. 2008년 10월부터 강제휴업, 폐업, 희망퇴직 등의 형식으로 대량해고가 본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역시 사내하청 노동자들부터 희생양이 됐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011년 1월부터 309일간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벌인 고공농성과 희망버스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김 지도위원은 크레인에 오르기 1년 전 이미 영도조선소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는 2010년 1월 부산본부 홈페이지에 “정리해고 방침이 발표되면서 아저씨들의 불안한 눈빛이 제 눈엔 보인다. 열에 여덟은 하청 노동자들이다. 이미 1,000명 가까이 잘려 식당과 통근버스가 텅텅 비었다는 소문이 괴담처럼 떠돈다”고 적었다.

“원·하청 노사 참여하는 기구를”

울산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 바람을 가장 먼저 맞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고용보장, 산업안전 등에 대한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원청은 “이들의 사용자는 하청업체”라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하창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당장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누구랑 교섭을 하고 노동권은 어디서 보장받아야 하느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노조법상 원청은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가 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2003년 사내하청 노조 설립 과정에서 위원장·사무국장 등이 소속된 하청업체를 폐업시키는 방식으로 이들을 해고했지만, 대법원은 2010년 현대중공업을 하청 노동자들의 사용자로 인정하고 “원청이 노조 활동을 위축·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현행 노동관계법과 법 해석론은 원청이 해고 등과 관련된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라고까지 ‘원청 사용자성’을 확대하고 있지는 않다.

남은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정규직 노조가 하청 노동자 고용 문제를 끌어안는 교섭을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를 일정 부분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로 삼아온 원청 노조가 정규직 조합원 구조조정을 앞둔 상황에서 연대 정신을 발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손정순 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향후 친환경 대형 선박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 사내하청 노동자를 자르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며 “업종 차원에서 기능직의 장기적 보존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며 원청 사용자들이 이 논의 테이블에 참여하도록 정부가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가 조선산업 총고용보장 대책기구를 구성하고 하청 노동자 해고에 대해 교섭하길 거부하는 원청이 이 기구에 참여하도록 강제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