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법정관리 딛고 일어난 한일합섬
두 번의 법정관리 딛고 일어난 한일합섬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11.13 00:23
  • 수정 2018.11.13 0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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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산업 패러다임을
깬 노사의 협력

[커버스토리] 구조조정을 구조조정하라 ② 한일합섬 사례

섬유산업이 과거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명성이 지금은 빛을 바랬다는 것 역시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섬유산업은 후발 개발도상국의 추격과 해외로의 생산기지 이전으로 생산, 고용,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일합섬은 “현재 한국의 섬유산업은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1964년 설립되어 50여 년 동안 전성기와 쇠퇴기 모두를 겪어본 한일합섬은 변화하는 산업 패러다임 속에서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서울 남산만한 수출을 자랑하던 전성기

1960년대는 세계섬유시장이 화학섬유와 합성섬유로 인해 대성황하던 시기였다. 양모를 대용하는 아크릴은 나일론과 폴리에스터와 함께 ‘마법의 섬유’로 불린 시기기도 했다. 한일합섬은 설립과 함께 아크릴 섬유를 생산했다. 당시 한일합섬은 국내 재계 10대 기업 중 하나일 정도로 명성이 높았으며, 섬유산업의 황금기를 한일합섬의 황금기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의 규모와 매출을 자랑하던 기업이었다.

1974년에는 국내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직원들을 위한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를 마산에 설립해 산학협동의 길을 열었다. 이후 공장이 위치한 김해, 대구, 수원에도 부설학교가 설립됐다. 1973년에는 국내 단일기업 최초로 ‘1억불 수출의 탑’을, 1979년에는 ‘4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백의현 한일합섬 대표는 그때를 회상하며 “1981년 입사했을 때만 해도 한일합섬이 1년에 수출하는 양이 서울 남산 크기만 하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황금기는 계속되지 않았다. 한일합섬은 1988년이 변화를 맞이하게 된 변곡점이라고 설명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국내에서 임금 상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섬유산업을 포함한 산업전반에 걸쳐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 국내에서 경쟁력이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논의되기 시작하고, 섬유기업들이 해외 이전 고민을 가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결국 국내 섬유산업은 변화를 맞이해 해외합장공장을 설립하고 설비를 투자해 수익을 얻는 방법을 선택했다.

한일합섬 역시 섬유산업의 이 같은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주력사업인 아크릴 부문의 수요 감소 및 비용 증가 등으로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한일합섬은 위기의 그림자를 어떻게 대응했을까? 한일합섬은 1991년부터 한차례 구조조정에 들어가 국내공장을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는 방법을 택했다. 또한, 1992년 이후에는 미래를 대비해 신재생 섬유사업을 진행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1997년 불어 닥친 IMF 외환위기에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한일합섬은 IMF 외환위기와 함께 한일그룹 해체라는 커다란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위기의 돌파구를 찾아서

한일합섬은 1991년 인도네시아로의 공장 이전을 시작으로 인도, 중국 등 해외공장 이전을 추진했다. 국내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이는 노사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지 않는다면 인건비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국내공장 고용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우갑 한일합섬 노동조합 위원장은 “국내공장 해외 이전 과정에서 노사 간에 이견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노사는 회사의 생존과 지속 성장을 위해 동의 및 협조를 함으로써 큰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일합섬은 현재까지 두 번의 법정관리를 겪었다. 한일합섬은 위기의 순간마다 회사를 살린 것은 직원들의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백의현 대표는 “당시는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운을 뗐다.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직원들이 회사의 횃불을 끝까지 쥐고 있었던 거죠. 연초에 전 직원이 모여서 1년 동안 열심히 해보고 연말 평가에서 흑자를 달성하지 못한 부서는 스스로 해체한다는 결의를 합니다.”

한일합섬 노사는 저수익 사업부의 해체, 부동산 매각 등으로 지금의 한일합섬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불가피하게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조차 자신의 희생을 통해 회사를 살리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술개발을 통한 경쟁력 확보 역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한일합섬은 국내 최초로 섬유 원료를 만드는 공법을 개발했다. 두 번의 법정관리 속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한 기술개발은 하지 못했지만 몇 가지 특수기능 소재 보유에도 성공했다. 무엇보다 항균 섬유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한일합섬의 설명이다. 백의현 대표는 “한일합섬만의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며 “지난 20년 동안 규모가 1/3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섬유 소재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 섬유산업 패러다임은 또다시 변화를 맞이해 산업소재의 경량화, 소재의 다양화, 기능성 제품 등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증가, 기업들은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앞서 한일합섬이 섬유산업이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다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한일합섬은 올해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았다. 유진그룹의 사업부에서 독립 법인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황금기를 달리던 예전의 화려함을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다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한 한일합섬의 내일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백의현 대표는 “올해는 노사 모두 지금보다 안정적인 기업을 만들이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라며 “한일합섬이 국내 섬유산업에 어떠한 일조를 할 것 인가 역시 앞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