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생산물에 대한 고찰
[김란영의 콕콕] 생산물에 대한 고찰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8.11.13 00:22
  • 수정 2018.11.21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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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영의 콕콕] ‘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 김란영 기자rykim@laborplus.co.kr
ⓒ 김란영 기자rykim@laborplus.co.kr

지난달 초, 대형 백화점 정규직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A를 만났다. 5년 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취직한 A는 올해도 ‘잘 버티고 있다’라며 안도했다. 그리고 곧 결혼한다고 깜짝 발표 했다. 평소에 나는 그의 성품을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마음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진심으로 A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소망하면서.

그리고 나는 그 다음 주 국회로 가서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의 연구팀이 백화점 납품업체 소속 판매직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과 건강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A는 고객용 화장실을 몰래(?) 사용하다 발각된-백화점 지침에 따라 사용이 금지되어 있으므로-판매직 노동자들을 질책하고, 손님이 갑질을 해도 백화점 이미지를 위해 판매직 노동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라고 강요했던, 소위 ‘악의 끄나풀’로 형상화돼 있었다.

그래서 악마는 개인에서 오는가, 구조에서 오는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A는 어제와 같이 오늘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버텨냈을 뿐일 테니까. 그래서 우리에겐 자신이 어떤 구조 속에서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행위’가 필요해 보인다. 작은 톱니바퀴도 제품을 평가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두고 ‘생산물에 대한 고찰’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인간은 한평생 ‘지으며’ 산다. 말과 글. 하다못해 날숨과 들숨마저 숨으로 탄생한다. 나의 지난 5년은 어떤 글짓기를 업으로 삼아야 악마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던 시간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새 쓰레기를 짓는 삶을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세월호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우리 언론들이 쏟아냈던 기사들을 보면서 시인 황경신의 표현처럼 ‘우리가 지어야 할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사랑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날 기자들은 무진장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경찰들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러나 그 부지런한 열정들은 본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모여모여 다른 이들의 하루를 짓밟고 말았다.

그래서 어떤 회사에, 어떤 산업 구조에 속해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단지 임금 등을 가늠해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층위에서 중요하다.

쓸데없는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혹, 들여다봤다고 한들 어쩌란 말인가? 꼭 세상의 빛이 되는 생산물을 만들어야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조차도 나의 생산물에 자신만만하지는 못하므로. 하지만 아는 거, 보는 거 까지만도 괜찮다. KBS2 드라마 <최고의 이혼>에서 ‘휘루(배두나)’가 자신이 나쁜 아이 같다고 고백한 10살 ‘성빈(고재원)’에게 “한 번에 다 바꾸기가 어려워서 그냥 보기로 했어. 그런데 신기한 게 거기까지만 해도 많이 달라진다”고 위로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