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으로 빛나는 종로, 그 뒤 세공노동자는?
보석으로 빛나는 종로, 그 뒤 세공노동자는?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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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서울노동청, 세공노동자 권리 찾기 손 잡아

[리포트] 종로 세공노동자

종로 3가부터 5가에는 귀금속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귀금속을 가공해 장신구를 만드는 이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1970년대 조성됐다는 종로 귀금속 거리에서 일하는 세공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지난 4월 세공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금속노조 서울지부에 가입했다.

이들이 말하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노동조합과 서울고용노동청은 세공노동자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화려한 주얼리와 세공노동자

귀금속 상점들의 아름다운 주얼리 상품들은 지나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사로잡게 만든다. 주얼리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종로 귀금속 상점 뒤에는 크고 작은 500여 개의 공장들이 존재한다. 매장에서 손님들이 상품을 선택하면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주문이 들어간다. 공장에서는 4일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매장에 완성된 주얼리를 전달한다. 또한, 중간 상인들이 공장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직접 매장에 전달하기도 한다.

귀금속 거리가 조성된 70년대에는 가내수공업처럼 2~3명의 노동자가 주얼리를 만들어 보급했다고 한다. 당시에 영세업체들이 다수를 차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제작과정에 변화가 생겼다. 각 제작 파트마다 전문가가 생기면서 퀼리티 차이가 심해졌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제작 과정은 크게 3파트, 작게는 4~5파트로 나뉘게 됐다. 먼저, 금을 녹여 주물 형틀에 붓는 첫 번째 단계, 형틀에서 나온 주얼리를 깎고 때우는 과정을 거쳐 제품화 될 수 있도록 광을 내는 작업으로 세분화됐다. 과거에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소화하던 세공작업이 분야별로 나뉘게 된 것이다. 각 제조 파트마다 2~3명의 전문가들이 작업을 진행한다. 지금은 한 공장 내에 근무하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10여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고등학교 조기 취업을 통해 근무하게 된 김정봉 씨는 올해로 경력이 20년 차다. 세공노동자들의 평균 근속 연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이 많다고 추산했다. 오랜 시간 근무한 전문가들이 있지만,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김 씨와 함께 세공업에 뛰어든 10여 명의 친구들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친구들은 3명 밖에 없다고 한다. 결코 적은 임금을 받는 직업이 아닌 세공업임에도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공작업장은 여전히 70년대 그대로

김 씨에게 세공노동자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그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문제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설명을 해야 하는데, 문제가 아닌 게 하나도 없다 보니 어느 부분이 문제라고 말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세공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로 안전불감증과 임금이라고 밝혔다.

주얼리를 제작하며 금을 1,000도가 넘는 온도에 끓이다 보면 그을음이 생긴다. 그을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청산가리를 사용해야 원래 금 색깔로 돌아온다. 또한, 땜질 과정에서 물건을 굳히거나 열을 가하면서 금 색깔이 까무잡잡해지는데, 이를 벗기기 위해서는 황산에 넣고 끓여야 한다.

세공 과정에서 유해물질 사용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해물질 환기 시설은 굉장히 미흡하다. 청산가리를 사용할 경우 연기를 환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이를 환풍기 하나로 대체한다. 황산을 환기하는 장치를 설치한 사업장은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안전에 대한 문제는 유해물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르고 때우는 작업 중에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산재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공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임금에 대한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월급을 적게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업장에서 세금 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임금을 받는 방식이 독특하다. 80년대에서나 볼 법한 노란봉투에 현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이따금씩 만 원짜리로 월급이 들어오면 벽돌을 받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도 태반이다. 사업주와 노동가 4대 보험 가입에 대한 인식 없이 오랜 시간 이어져 오다 보니 4대 보험 미가입이 관행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퇴직금을 온전히 받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김 씨는 “지급 능력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면 핑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덜 주고 안 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퇴직금에 대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불법적 관행, 한 걸음씩 개선해나가야

서울고용노동청(이하 노동청)은 지난 10일 종로세공 사업주를 대상으로 근로개선을 위한 자율점검 사업 설명회를 진행했다. 기초노동질서와 관련해 ▲근로계약서 작성 ▲근로자 명부 ▲최저임금 위반 여부 ▲임금체불 여부 점검을 주요한 내용으로 사업주들에게 설명했다.

또한, 세공노동자 특성 상 발생하는 산업안전과 관련해 유해물질 사용여부와 특수건강검진, 작업환경 측정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했다. 노동청 관계자는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설명회를 통해 산업계와 노동계가 협의를 통해 상생적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사업주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은 근로계약서 작성과 4대 보험 가입에 대한 내용이었다. 갑작스럽게 4대 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실질임금이 하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노동자들의 우려에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질문이 나왔다고 밝혔다.

노동청은 사업주들에게 근로자 명부를 누락시키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근로감독을 갔을 때 근로자들이 더 있음에도 사업주들이 근로자 수를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아 고충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종로 세공업계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세공 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는 지난 5월에도 진행된 바 있다. 노동청 차원에서 참여를 늘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16명만이 참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10월에 진행된 설명회에는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는 노동조합이 설립되면서 사업주들 역시도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노동청은 평가했다.

10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서울고용노동청은 종로 세공사업장 현장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전 계도에 대해 불법적 요소들이 개선되겠느냐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불시점검에 대한 문제점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청 관계자는 “불시점검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수많은 사업장 중 몇 군데만 단속을 하게 되면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사업주들이 생겨 오히려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아침에 불법적 관행들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업주들 스스로 인식을 개선하고 자율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계도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동청에서 생각하는 세공노동자들의 큰 문제점은 작업환경이라고 설명했다. 고부가가치인 세공작업에 젊은 인력들이 많이 투입돼야 하는데 작업장 내 분위기가 어둡다고 느껴져 쉽게 일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청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으며, 앞으로 세공 작업에 젊은 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평범한 노동자로 살고 싶어요

금속노조 서울지부는 지난 5월 ‘종로세공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준비위원회)’을 꾸리고 종로 세공노동자들의 노동상담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최정주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사무장은 “앞으로도 현장 홍보를 계속할 생각이다. 서울고용노동청에 근로개선을 위한 사업들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세공노동자들에 대한 통계자료가 미흡해 전반적 근로 조건과 관련된 내용들에 대해 실태조사 사업 진행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준비위원회를 정식 사업단으로 확대해 특화 업종인 세공노동자들의 근로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도 설명했다. 이를 위해 노조 중심에서 벗어나 진보정당이나 지역의 노동자들, 권익에 관심 있는 노동단체와 함께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세공노동자 김정봉 씨는 노동조합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책 후기에는 “저 시대에는 저랬구나, 심란하다, 먹먹하다”라는 내용이 다수를 이루었다. 본인 역시도 책을 읽고 답답함을 느꼈다. “이게 70년대 이야기란 말이지, 그런데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며 또 다른 먹먹함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조의 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처음 노동조합이 생겼을 때 동료들의 반응은 “1만의 노동자가 있다고 하지만 처음 노조가 생겼으니 이게 제대로 되겠느냐”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얻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도 퍼졌다. 최근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은 소문에 의하면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가비를 지불해야 해 많은 돈이 드는 줄 알고 있었다는 경우도 있었다. 노조 가입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노조의 역할을 알아가는 노동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김 씨는 변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희망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소망은 ‘평범한 노동자’라고 한다. 옛날에는 사업주에게 부탁해 휴가를 받으면 감사 인사를 해야 했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연차를 쓸 수 있다. 오랫동안 세공노동을 하고 있는 한 분은 자랑스럽게 자식들의 졸업식, 입학식을 한 번도 가지 못 했다고 말 한다. 안타까운 상황임에도 속상함조차 느끼지 못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노동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원하면 요구하고, 요구해야 얻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노동조합을 통해 종로의 세공노동자들이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힘을 모을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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