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논란 속 막지 못한 한국지엠 법인분리
먹튀 논란 속 막지 못한 한국지엠 법인분리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11.13 00:21
  • 수정 2018.11.13 0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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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OPEL) 사례에서 교훈 얻어야

[리포트] 한국지엠 법인분리

지난 19일 한국지엠은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연구개발(R&D)법인 설립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번 한국지엠 법인분리를 높고 노사의 주장은 엇갈리고 있다. 회사는 법인분리와 한국 철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노조는 법인분리가 철수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GM은 다수의 브랜드를 가지고 전 세계 곳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법인분리 사례가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오펠(OPEL) 사례를 통해 한국지엠 법인분리 사태와 법인분리 이후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제2의 한국지엠 사태 발발

한국지엠은 올해 초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하면서 철수설에 시달렸다. 그 이전부터 철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었지만, 군산공장 폐쇄 발표는 철수설에 힘을 실어주기 충분했다. 당시 한국지엠은 군산공장 최근 3년 가동률이 약 20%에 머물렀고, 계속 하락하고 있어 지속적인 공장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장폐쇄 소식에 노조는 크게 반발했으나, ‘한국지엠 부도처리’라는 회사의 강수에 노조와 정부는 꼼짝없이 GM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 5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군산공장은 폐쇄됐다. 한국지엠 지분의 17%를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 산업은행은 8,1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며, GM은 한국지엠에 생산시설을 10년 이상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던 한국지엠 사태에 다시 불이 붙게 된 것은 GM이 현재 단일법인인 생산공장과 연구개발기능을 2개 법인으로 분리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GM은 법인분리를 한국지엠 투자계획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한국지엠은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품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판매할 제품의 연구 및 디자인 개발이 필요하다”며 “한국지엠 연구개발 부문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정상화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의 이야기는 다르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지부장 임한택, 이하 한국지엠지부)는 현재 단일법인에서도 연구개발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연구개발-생산-판매-서비스’는 단일법인일 때 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법인분리를 한국 철수를 위한 GM의 사전 포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해철 한국지엠지부 정책기획실장은 “GM은 법인분리를 통해 회사를 쪼갠 뒤 필요에 따라 생산법인을 폐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법인분리 이후 매각, 제2의 공장폐쇄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회사가 법인분리 이후 연구개발법인에는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은 커지고 있다. 한국지엠지부는 연구개발법인의 노조를 무장해제하고 후에 연구개발 자료와 자산만 챙겨 한국을 떠나더라도 아무도 저항하지 못하게 노조를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렇게 노사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산업은행이 역시 제동에 나섰다. 주주총회 개최금지를 목적으로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17일 인천지방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주주총회가 예정대로 개최됐다.

지난달 19일, 한국지엠지부는 주주총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행, 김앤장, 한국지엠 부평 본사 본관과 홍보관, 디자인 건물 출입구를 봉쇄하는 등 주주총회를 막기 위해 항의시위를 벌였지만, 한국지엠은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안건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주주총회를 막기 위해 현장에 있던 한국지엠지부에 의해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산업은행은 주주총회가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개최회지 않았고, 산업은행이 주주권 행사를 위해 현장에 도착하였음에도 한국지엠은 주주총회 참석여건 조성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법인분리는 주주총회 특별의결사항에 해당된다고 발표했다. 또한, 단독으로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안건을 의결한 한국지엠과 주주총회 참석을 막은 한국지엠지부에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밝혔다.

징후 있었지만… 막지 못한 법인분리

지난달 22일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산업은행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여야 의원들은 “산업은행 패싱”, “정부와 산업은행을 호구로 봤다” 등 발언 수위를 높이며 한국지엠 법인분리에 대한 산업은행의 책임을 물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한국지엠 법인분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인분리가 좋다, 나쁘다)예단해서 판단하기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법인분리가 이른바 ‘먹튀’를 위한 GM의 전략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한국지엠이 철수할 경우에 적어도 GM 역시 4~6조 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며 “(법인분리를)반드시 나쁘다고 보는 것은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답했다.

이동걸 회장의 답변에 “국민들의 입장에서 집행해야 할 산업은행이 GM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GM의 대변인이냐”는 질책이 이어졌다. 의원들은 8,100억 원이라는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점, 한국지엠 철수라는 국민들이 우려하는 바를 잠재우지 않고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답변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법인분리 징후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이를 막지 못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공분은 더욱 커졌다. “8,100억 원 투자 계약 당시 법인분리를 예상하지 못했냐”는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질문에 이동걸 회장이 “4월 말 마지막 협상 말미에 GM 측에서 제기했지만 최초 제시한 경영정상화안에 포함되지 않은 사안이기에 거절했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배리앵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법인분리를 발표한 것은 지난 7월 20일이다. 그로부터 약 3개월 전, 즉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법인분리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동걸 회장은 “경영판단에 해당할 수 있는 잠재적 사항을 모두 언급해 계약서에 넣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당시 계약은 ‘10년 생산’에 주안점을 줬다”고 해명했다. 이동걸 회장의 말대로 GM이 한국에 생산시설 10년 유지를 약속한 시점에서 ‘법인분리=먹튀’로 판단하기에 이를 수도 있지만, GM이 법인분리를 사전에 인지한 뒤 이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이 단독으로 주주총회를 개회하고 법인분리를 의결한 것을 두고 소송을 제기할 것을 밝혔다. 하지만 소송의 결과가 어떻게 날지는 불투명하다. 앞서 산업은행이 인천지방법원에 낸 주주총회 개최금지 신청은 기각됐으며, 같은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최종 한국지엠 부사장은 “이번 인천지방법원의 가처분 판결에서 보았듯이 법인분리 자체가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하면서 주주총회 개최와 의결 절차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또한, 법인분리와 철수설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철수설을 부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지엠지부는 법인분리 저지를 위한 파업절차를 밟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행정지도 결정을 내려 파업권 확보에 실패했다. 한국지엠지부는 당장 파업을 하지 않더라도 선전전, 노숙투쟁, 간부 월차 파업 등으로 투쟁 수위를 높여가겠다는 입장이다.

오펠 사례 교훈으로 삼아야

이동걸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법인분리를 사전에 막지 못한 것에 대해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법인분리는 예측할 수 없는 경우의 수였을까? GM은 다수의 브랜드를 가지고 전 세계 곳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법인분리 사례가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이미 해외에서 법인분리 사례가 있었음에도 산업은행이 법인분리를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국지엠지부는 오펠(OPEL) 사례를 들면서 한국지엠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 오펠은 1862년 독일에서 설립된 이후 1929년 GM에 인수됐다. 한때 GM 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오펠은 2000년대 들어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2010년 GM은 110억 유로를 오펠에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오펠의 공장이 위치한 각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벨기에 안트베르펜 공장을 폐쇄하는 등 각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페인과 영국 정부는 지원 요청을 수락했지만 독일 정부는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이후에도 흑자전환에 실패한 오펠은 지난해 푸조시트로앵(PSA)에 오펠을 매각하고 지난 7월 푸조시트로앵은 2020년까지 수익성 회복을 위해 오펠의 연구개발(R&D)센터를 분리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오펠의 사례를 한국지엠에 대입해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개발 없이 생산공장만 남게 된다면 ‘위탁 생산공장’과 다를 바 없어진다. 앞서 군산공장 폐쇄 당시 대다수 전문가들은 GM이 한국지엠을 독자적인 하나의 기업으로 보지 않고 수많은 공장들 중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개발 없이 존재하는 생산공장을 GM이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예상이 가능하다. 생산법인은 GM의 필요에 따라 몸집 줄이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연구개발법인도 ‘지적재산권 부재’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지엠은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연구개발법인에서 새로운 차를 개발해고 이익을 얻을 수 없는 구조에 갇혀 있다. 한국지엠 말대로 이번 법인분리가 ‘연구개발 부문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정상화 지침’이 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확보가 필수적이다.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는 “한국지엠에서 개발한 차종에 대한 로열티는 한국지엠이 가져가야 하지만 지적재산권이 없어 GM 본사가 가져간다”며 “한국지엠의 연구개발비용으로 만들어진 차를 외국에서 생산하면서 그에 대한 로열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당연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오펠 사례는 GM이 벨기에 안트베르펜 공장을 폐쇄하고 각국 정부의 지원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펠을 매각하고 유럽시장을 철수했다는 결과를 낳았다.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한국 정부를 압박해 정부의 지원을 손에 넣었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지엠 사례와 상당히 비슷하다. 법인분리보다 더 아픈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오펠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