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참여, 위기를 극복하는 노사의 힘
소통과 참여, 위기를 극복하는 노사의 힘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11.13 00:21
  • 수정 2018.11.13 0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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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제조업 사업장
구조조정 사례

[커버스토리] 구조조정을 구조조정하라 ④ 제조업 사례

대기업의 구조조정 사례는 오히려 널리 회자되고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중소기업의 사정은 좀처럼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한 기업의 역사에서 늘 호황인 시기만 계속될 순 없을 것이다. 내부적 요인이든 외부 환경 때문이든, 위기에 봉착한 기업이 어떻게 대처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에 대한 사례는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한일합섬 사례와 달리, 제조업 중소기업 사업장에서 일자리는 최대한 유지하며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나갔는지 들어보자.

서진산업, 고용은 지키고 경쟁력 올리고

30년 넘게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서진산업. 차체와 샤시, 데크, 휠 등을 생산해 공급하고 있으며,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뿐 아니라 그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해외에도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1,000명 미만의 중소기업임에도 역대 대통령 두 명이 방문한 사업장이기도 하다.

약진하던 서진산업은 주요 납품처인 기아자동차 부도 이후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후 회사를 인수한 외국계 자본들의 소극적 경영으로 인해 위상이 실추된다. 이런 위기에 직면해 노사는 함께 팔을 걷었고,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수많은 제조업 갈등 사업장과는 달리 지혜롭게 이를 극복해내었다.

IMF 외환위기, 서진산업을 휩쓸다

70, 80년대 자동차 부품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서진산업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 사회 곳곳을 할퀴고 지나간 IMF 외환위기 때문이었다. 여타 많은 기업들이 경영 상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서진산업은 제품의 주요 공급처인 기아자동차 부도 사태를 맞으며 위기에 봉착한다.

결국 기업은 2003년 외국 자본에 흡수되었다. 서진산업의 지분을 인수한 Tower Automotive는 기업의 발전을 위한 투자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 경쟁력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2000년대 초반 중요한 시기를 실기하면서 업계 선도 기업은 어느새 하위권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진산업 노사가 선택한 길은 상생을 통한 회사 살리기였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서진산업 노사는 한 걸음씩 양보하며 활로를 찾았고, 일터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지속했다.

결국 암울했던 시기를 지나 SECO로 재편입되며 서진산업 노사는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 중이다.

위기극복, 노사가 팔을 걷어 부치다

지난 2006년부터 서진산업 노사가 위기극복을 위해 추진해 온 사안들은 구체적으로 살펴볼 만하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노사는 ▲생산직 잉여인력 및 인력구조 개선을 위해 희망퇴직 및 공장 간 파견 근무 ▲월차, 연차 휴가 사용 촉진 ▲노동조합 전임자 축소 ▲공장 물류 이관 등의 내용에 합의한다.

한편으로는 사내 개선반을 운영하면서 ▲라인 개선(주야 2 시프트→주간 1 시프트)으로 근무형태 변경 ▲생산성 개선을 통해 감소된 필요인원을 전환배치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한다.

2007년에는 회사의 경영 악화시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고용안정운영 규정에 합의했으며, 2009년 비상경영체제 자구책을 전격 시행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9년 노동부로부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 상생 양보교섭 실천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갈등소지 다분, 현장 중심에서 답을 찾다

자칫 노사 간 대립과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 서진산업 노사가 서로 양보와 상생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일의 완성도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튼튼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업계를 선도해 왔던 서진산업 노사는 회사의 역사와 전통, 우수한 기술력과 제품의 품질에 대해 강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작금의 당면한 위기 상황은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다른 무엇보다 경쟁력 제고라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회사는 ‘명인, 명품, 명소’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며,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서진산업의 인재가 되기를 요구했다. 단지 무리한 계획을 요구하거나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투자 확대와 조직문화 개선을 통해 구체적인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제조업에서의 경쟁력은 다른 곳이 아닌 현장에 있음을 지속적으로 천명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노동조합도 동의했다. 경영진도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상히 알아야 하고, 이와 같은 내용은 노동조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이 살아야 경영도 산다는 노조의 선언에 회사도 동감을 표했다. 회사의 구체적인 경영상황에 대해 노동조합도 충분히 숙지하고 분석과 대안 마련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었던 서진산업 노사는 지금까지도 열린 노사문화를 쌓아가고 있다. 정기 노사협의회, 분기별 조회, 분기별 조합원 교육, E-ware 게시판 등을 통해 노사 상호 정보공유를 지속하고 있다.

위기 극복 당시에 다소 후퇴했던 근로조건과 복리후생도 제자리를 찾고 있다. 매년 1박 2일로 진행되는 한마음 체육대회에는 전국 8개 공장의 전 직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학자금 지원도 실시된다. 사내 복지기금의 수혜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과 관련한 내부 제도 개선도 눈에 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장시간 근로 개선을 위해 서진산업 노사는 지난 2009년부터 실무팀을 구성해 논의를 시작하여, 2016년 1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사무직 장시간 근로 개선을 위해 노사발전재단과 4월부터 8월 사이 컨설팅을 진행하여, 시차 출근제, 집중 근무제, 보상 휴가제 등 다양한 개선책을 마련해 적용을 진행하고 있다.

4월부터 9월 중에는 한국금형협동조합과 함께 직무분석 컨설팅을 진행해, 직원들의 명확한 업무분장 및 업무편중을 해소하고, 내부 교육자료 및 업무 프로세스에 활용하고 있다.

열린 경영과 자발적 참여, (주)레이언스

레이언스는 엑스레이 시스템의 핵심부품인 TFT와 CMOS 디렉터 기술을 모두 보유한 국내 최대의 디텍터 전문 기업이다. 2007년 바텍 DR사업본부로 출범해 삼성과 디지털 엑스레이 공동 개발을 추진, X-maru 시리즈 제품을 론칭하고 자체 개발 S/W를 확보하며 성장의 계단을 밟았다.

바텍에서 분사해 레이언스로 자립하면서 레이언스가 구성원에게 제시한 키워드는 ‘소통’이었다. 좋은 회사(Good Company), 강한 기업(Strong Corporation)을 향한 레이언스 노사 소통 방식은 지금의 레이언스를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현명한 갈등 해결로 노사관계 출발점에 서다

2011년 5월 바텍에서 분사한 레이언스는 레이언스 R&D센터 설립 등 통합 기업으로서의 체계를 다지고자 노력했다. 그로부터 1년 뒤 CMOS디텍터 전문기업 휴먼레이 합병을 통해 디텍터 사업 분야에서 다시 한번 재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원이 지속적으로 충원되자 신규 입사 인원과 기존 인원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발생했다. 회사의 성장과 안정이 같은 속도로 가지 못해 생긴 문제였다.

이에 레이언스는 연봉 인상 시 장기 근속자들이 소외되지 않고 과거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별도의 CATCH UP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또한 직책자 워크숍을 통해 조직 내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신규 입사자들에게는 낯선 환경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멘토링 제도를 제공했다. 신규 입사자는 입사 후 6개월까지 업무와 회사 생활 전반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레이언스 노사는 안정적인 노사관계 구축의 첫 출발점에 서게 된다.

노사가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하다

레이언스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이 있다. 이 힘은 노사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값진 산물이다.

2015년 1월 레이언스의 핵심부품 공급업체가 국내 사업장을 철수하면서 돌연 패널 공급 중단을 통보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위기에 레이언스 경영진들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회사의 존폐가 걸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영진의 첫 번째 행동은 구성원들에게 회사의 위기를 알리는 것이었다.

현정훈 대표이사는 “덮어 놓는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기에 직원들에게 회사의 위기를 설명하는 것이 먼저였다”며 그날을 떠올렸다. 이후 새로운 패널을 개발하기 위한 레이언스 노사의 밤낮 없는 생활이 시작됐다.

이들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R-패널 개발 성공 및 출하에 성공하게 된다. 기존의 2년 가까이 걸렸던 개발 기간 역시 6개월로 줄였다. 이 모든 것은 열린 경영을 실천하는 경영진과 이를 믿고 따라준 직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결과 이듬해 4월에는 코스닥 상장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매출액은 2015년 866억에서 2016년 995억으로 늘어났다. 레이언스 노사는 당시의 위기를 노사관계의 전환점이자 노사가 하나라는 일치감을 느낀 순간이었다고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