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끈 비정규직 문제, 마침표 찍어야 할 때
10년 넘게 끈 비정규직 문제, 마침표 찍어야 할 때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11.13 00:20
  • 수정 2018.11.13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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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인터뷰] 김수억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14년 간 불법파견을 끝내자며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가족들과 추석 연휴를 포기하며 2주 넘게 농성과 단식을 진행했다. 지난 2일 오후 고용노동부 중재로 원청인 현대기아차와 직접교섭을 진행하게 됐음을 밝히며 농성을 해제했다. 직접교섭을 진행하며 비정규직들은 어떤 마음인지 김수억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을 만나 그 심정을 들어봤다.

원청과 직접교섭, 현실은 여전히 답답

지난 11일 기아자동차 원청과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1차 교섭을 진행했다. 지회는 이번 교섭을 통해 원청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참여했을 거라 기대했다. 교섭에 들어가며 먼저 고용노동부의 중재안 취지와 교섭에 대한 의미를 원청에 확인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원청은 특별채용 합의를 기반으로 추가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수억 지회장은 “이러한 태도는 어쩔 수 없이 사회적 여론과 압박에 의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직접교섭을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원청과 교섭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정규직 노조인 현대자동차 지부와 함께 교섭의 상과 내용들을 논의하고 정리하는 과정에 있다. 김 지회장은 “교섭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느냐보다는 교섭을 통해 실질적으로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교섭의 속도나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원청이 교섭에서 지회의 요구를 교섭 의제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교섭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지회는 원청과 교섭에 4가지 의제를 제시할 생각이다. 첫 번째는 법원 판결 기준에 따른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이다. 정규직 전환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차별 금지와 여성 공정 블록화가 핵심적으로 포함됐다고 강조했다. 김 지회장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10년 넘게 일해 온 여성 비정규직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노동자는 주로 완성차가 나온 후 검수하는 PDI공정과 자동차 범퍼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공정에서 일한다.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기술이 필요한 공정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를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던 곳으로 배치하고 여성 노동자들은 쫓겨나 가장 어려운 공정이라고 불리는 제조 공정에 넣고 있다며 위 사항을 포함시키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그 동안 불법파견 처벌 요구로 해고된 해고자들에 대한 복직이다. 이어서 불법파견 처벌 운동을 하며 희생된 노동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도 의제에 포함됐다. 마지막 의제는 파견법의 한계로 인해 불법파견 판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청소·식당·경비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 고용도 포함됐다.

직접교섭 열려도 해결할 문제는 산재

직접교섭의 길이 열렸다고 하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특별채용이 알려지면서 지회 내 조합원들의 반응이 나뉘었다. 특별채용을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정규직이 되고 싶지 않고 싶다는 조합원들도 있지만, 불합리한 부분을 감수하더라도 특별채용을 통해 정규직으로 가겠다는 조합원들도 존재한다. 김 지회장은 “이런 상황이 당사자들 스스로 선택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해고되고, 감옥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현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에 이런 방식으로라도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선택하게 된 것”이라며 조합원들은 강요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정규직 노조와 이해관계가 부딪힌다. 김 지회장은 정규직 노조와 실질적으로 마찰이 생길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법원 판결에만 따른다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된 비정규직 공정을 정규직 공정으로 전환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규직 노조와 충돌하는 부분은 전적문제이다. 정규직 노조 단협에 따르면 신입사원은 조립부서로 배치돼 근무를 시작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다른 부서로 옮긴다. 하지만, 특별채용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신입사원으로 규정하고 조립 부서로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 정규직 노조의 입장이다. 김 지회장은 “특별채용 과정에서도 근속을 일부 인정을 해준다고 하면서 신입사원으로 구분하는 경우는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조는 합의된 특별채용의 내용은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비정규직지회의 직접교섭에 대해서는 지지하고 연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일터를 만들자는 대의에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를 계기로 삼아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하나 돼 회사를 상대로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드러냈다.

비정규직 문제, 정부가 앞장서 해결해야

현대기아차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를 안고 있는 사업장은 전국 곳곳에 있다. 김 지회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은 청와대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비정규직 제로화 시대’를 선언했을 때 희망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비정규직들이 1년 반이 지난 지금 절망의 눈물로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김 지회장은 “정부에서 솔선수범해 공공기관부터 정규직화를 시킨다면 민간부분에도 영향력이 끼칠 것”이라며 “현재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지만, 해결의 키 역시 정부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적폐 청산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확하게 요구하고 얘기해야 할 때”라며 “더 이상은 정부의 희망고문에 속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가 약속한 1년간의 기다림은 끝났고,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 김 지회장의 입장이다. 그 시간만큼 비정규직 문제는 후퇴했을 뿐이라며 이제는 비정규직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