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6급 공무원, 박물관 관람객 안전 위해 ‘특별(?)하게’ 일했을 뿐인데
울산시 6급 공무원, 박물관 관람객 안전 위해 ‘특별(?)하게’ 일했을 뿐인데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8.11.13 00:20
  • 수정 2018.11.13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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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 “주무관으로서 정당한 요구”
운영사측 “근거 없는 권한 남용”
울산시 해임, 울산지법은 취소 선고

[리포트] 울산시 6급 공무원

올해 3월 공무원의 ‘복종의 의무’를 명시한 국가공무원법 제57조에 ‘다만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이의를 제시하거나 따르지 아니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 신설됐다. 그동안 국가공무원법에 해당 조항이 없어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자신의 명령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설득할 수 있었고, 하급자는 그 상급자의 불법적인 권위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범죄를 사면받는 ‘전략’으로 활용해왔다는 반성에서다.

그러나 여기, 공무원임에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서’ 해임된 울산광역시 6급 공무원 김 아무개 씨(59) 이야기가 있다.

1988년 1월, 울산광역시 공무원으로 임용된 김 씨는 정년퇴직을 바로 앞둔 지난해 4월 울산시로부터 해임 처분을 받았다. 울산시가 공무원인 김 씨가 복종의 의무, 성실의 의무, 품위 유지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개인정보 보호법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곧장 “박물관 운영업체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운영비 사용 내용을 요구하고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돼 관리 문제들을 지적했을 뿐, 처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인사위원회와 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요구했다. 그러나 모두 기각됐고, 결국 그는 같은 해 10월, 울산지방법원에 울산시장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그리고 지난달 13일 울산지법 행정 1부(재판장 김태규)는 “김 씨가 공익을 우선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한 것은 징계 사유가 될 수 없고, 공무원에게 소속 상사에 대한 복종 의무가 있지만,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며 울산시의 해임이 부당했다고 밝혔다.

한편, 운영업체 측은 “김 씨의 취지가 공익에 있었다고 해도 그 방법과 절차는 운영업체와 울산시가 계약한 ‘임대형 민자사업(이하 BTL) 표준실시협약서’에 따랐어야 했다”며 재판부 판결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그러나 해당 소송은 김 씨가 운영업체가 아닌 당시 울산시장에 ‘해임의 정당성’을 따지기 위해 낸 것임을 거듭 밝힌다.

울산박물관은 BTL로 울산시가 시행사업자인 ‘C&S 자산관리’에 매달 임대료와 관리비 등 운영비를 지급하면 이들이 정해진 기간 울산박물관의 운영과 관리를 도맡는 식이다. 시행사업자는 그 기간 내 운영비 수입으로 건설비 등 투자비를 회수하고 이후 울산박물관은 울산시에 귀속된다. 울산박물관의 위탁 기간은 2011년 2월부터 2030년 10월까지다. 총사업비 472억, 연간 예산 40억이 지출 된다.

‘BTL 표준실시협약서’ 갑론을박
그 시작은 2년 전 동해지진

사건은 2016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월 5일, 동해 앞바다에서 규모 5.0 지진이 발생했고 그 여파로 울산박물관 안팎에 ‘붙여져 있던’ 화강암 석재(石材)들이 떨어져 나갔다. 이에 울산박물관 관장은 지진 일주일 뒤 BTL 운영·관리 업무 담당 주무관으로 발령받은 김 씨에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며 관련 문제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김 씨는 그 과정에서 박물관 석재 마감 공사가 도면과 다르게 시공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설계도면 대로라면 석재와 석재 사이에 ‘고정핀’이 ‘박혀’있어야 했지만, 석재 접착제인 ‘에폭시(epoxy)’로 ‘붙여져’ 있었던 것. 이는 애초 시공업체가 박물관 유지·보수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부 벽체에 ‘앵커지지 건식공법(건물 구조체에 앵커철물을 사용하여 석재를 연결하는 방법)’을 사용하겠다고 울산시에 전면적으로 안내했던 내용과 상반된다. 김 씨는 “박물관 포스터를 뗄 때, 석재가 같이 떨어질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며 “지진이 나지 않았다면 계속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진 발생 시 일어날 수 있는 대형 안전사고를 우려해 울산박물관 위탁 운영 민간업체인 ‘C&S 자산관리’ 산하 ‘㈜울산박물관’에 정밀검사와 건설사 측의 특별조치를 요청했다. 김 씨는 그밖에도 지하기계·공조실, 관장실 입구 천장 등 박물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던 누수와 항온항습기 정지, CCTV 카레라 고장 등 크고 작은 시공 하자 및 관리문제 28건을 문서로 작성해 운영업체 측에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운영사측이 이를 2개월이 넘도록 차일피일 미뤘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특히 그는 “지하·공조실의 경우 전기구 위로 물이 떨어져 자칫 누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급한 사항이었지만 운영사측이 수년째 방치했다”고 말했다. 이에 운영사 측은 “당시 누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다른 건들도 관련 업체와 일정 조율을 하느라 시간이 걸렸을 뿐 시정이 정당한 건들에 대해선 모두 조치를 완료했다”고 답변했다.

운영비 사용 내용 보고·정산 의무 없는 ‘BTL 표준실시협약서’
운영사측 “김 씨, BTL사업 이해 부족해”
김 씨 “담당 주무관으로서 정당하게 요청할 수 있는 내용”

운영사 측이 박물관을 소홀히 관리하고 있다고 판단한 김 씨는 그 원인을 ‘임대형 민자사업(BTL) 표준실시협약안’에서 찾았다. KDI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가 작성한 해당 협약안에 사용 후 남은 운영비 정산 처리에 대한 조항이 빠져있던 것. 김 씨는 “운영업체 입장에선 돈을 적게 쓸수록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셈인데 박물관을 위해서 운영비를 제대로 썼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김 씨는 운영사 측에 운영비 집행 상세 내용 공개를 요구했고 운영사 측은 “한두 번 정도야 괜찮지만, 지속적인 보고와 그에 따른 정산은 하지 않는 것이 BTL사업의 원칙”이라고 맞섰다. 이들은 운영사가 매년 주무관청에 제출해야 할 ‘실시계획서’ 주요 보고 내용에 대해서도 견해차가 크게 났다. 김 씨는 운영현황에 운영비 집행 내용이 응당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운영사 측은 운영현황보고가 운영비 집행 내용보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완강히 거절했다. 울산박물관 사업시행자인 C&S자산관리 담당자 A씨는 “KDI도 2011년 ‘BTL 표준 실시협약 해설 연구’ 보고서(95p)에서 ‘운영비는 시설 완공 이후 운영 기간 중 시설물의 유지보수비용, 사업관리비용 등 운영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합산한 금액으로 매년 똑같은 금액으로 정해져 주무관청이 사업시행자에게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BTL 취지상 주무관청이 민간의 운영비 집행내용을 확인하거나 정산을 요구할 수 없다’고 밝혔던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는 운영사측이 이를 악용해 ‘성과 요구 수준’에 부합하는 박물관 유지와 보수는 소홀히 하면서 정부지급금을 챙기는 것을 일종의 ‘횡령’으로 간주하고 2016년 하반기 성과평가위원회를 거쳐 운영사측에 1억 9,000만 원을 환급조치 했다.

한편, 운영사측은 운영비를 어디에 얼마나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박물관을 운영·관리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A씨는 “박물관을 제대로 운영·관리하지 않아 분기별 성과평가에서 ‘B등급’이라도 맞을 시엔 6개월 운영비에서 5%가 삭감된다”며 “울산시로부터 매달 운영비를 받아 투자비를 회수해야하는데 어떻게 소홀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울산박물관에 확인해 본 결과 현재도 울산박물관은 운영업체로부터 운영비 사용 내용 보고를 받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박물관 관계자는 “운영비 집행 내용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협약서 상 근거가 없어서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김 씨가 지적했던 모든 건에 수리 공사를 완료됐고 운영사측과도 원활하게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BTL 표준실시협약서’ 두고 시시비비 가렸는데
김 씨 해임한 울산시

BTL 표준실시협약서에 운영비 집행 상세 내용 보고와 정산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곧장 위법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취재 결과 김 씨와 운영사측은 ‘BTL 표준실시협약서’해석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씨에 돌아온 것은 상급자의 협박과 좌천이었다. 운영업체는 “김 씨가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직권을 남용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했다”며 울산시에 민원을 제기했고 관장은 김 씨를 불러 “(업체가)네 목을 붙이기는 어려워도 떼는 건 쉽다”며 “조용히 있다 가면 되지 골치 아프게 하지 말라고”협박했다. 당시 해당 업체 회장은 여당인 새누리당 전직 14대, 15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었고 울산시장도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울산시장이 관장과의 계약을 2년 더 연장한 뒤부터는 이전엔 똑같은 공문을 다섯 번이나 결재해줬던 관장이 여섯 번째부터 반려하기 시작했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김 씨는 관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운영 업체에 대한 추가분 환급과 계약 해지 절차를 추진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2월 하급기관에 전보됐다가 4월 해임처분을 받았다. 김 씨는 “주변에선 조금만 참으면 되지 않느냐고 만류했지만, 공직자로서 마지막 사명감을 지키고 후회 없이 퇴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울산시가 다시 항소하게 되면 김 씨는 2심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정년이 지나 복직이 어렵게 된다. 김 씨는 복직보다도 “공무원이 공익을 위해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을 때 입지를 발휘하기는커녕 피해를 보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에 단서조항이 생겼지만 내 경우를 보더라도 지방 공무원들에게까지 잘 적용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소신 있는 공무원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후속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C&S자산관리가 맡은 BTL사업은 현재 울산박물관 사업을 포함한 14건으로 이들이 ‘BTL특유의 속성’을 내세워 국가 세금으로 충당되는 운영비를 깜깜이로 집행하는 데엔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해당업체는 올해 4월 회생절차개시 결정을 받고 최근 조기종결 결정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