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답을 정해놓고는 왜 대화하자고 하니?
[김란영의 콕콕] 답을 정해놓고는 왜 대화하자고 하니?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8.12.06 16:22
  • 수정 2018.12.06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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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영의 콕콕] ‘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 김란영 기자rykim@laborplus.co.kr
ⓒ 김란영 기자rykim@laborplus.co.kr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으니 대답만 해’를 줄여서 쓰는 말이다. 보통 원하는 대답을 정해 놓고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쓰인다.

그런데 답변하는 입장에선 ‘정답(正答)’을 맞추는 일인데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 못하다. 출제자의 의도가 어설프게 엿보이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짜증이 난다.

그것은 아마 상대방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에서 비롯될 것이다. 애초에 정답을 정해놓고는 마치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다른 대답을 하더라도 흔쾌히 수용해줄 것처럼 다정히 질문을 건네는 너. 그것은 ‘위선(僞善)’이다. 말 그대로 상대를 속이는 행위다.

그래서 온라인에는 이들을 퇴치할 이른바 ‘답정너 퇴치법’이 한창 공유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자꾸 아이유랑 닮았대. 이해가 안돼”라는 친구의 토로에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 말을 이어갈 틈을 주지 않거나 “전혀 다르게 생겼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오답(誤答)’을 곧바로 내는 식이다.

답정너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지난주 월요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김주업 위원장과 김은환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은 해직 공무원들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나섰다.

“우리도 교섭이니까 우리 걸 100% 들어줄 거라고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교섭장에 나가보니 정답은 한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이럴 거면 도대체 대화를 왜 하자고 한 건지 모르겠다.”

이들은 앞서 세 차례 진행한 실무 교섭에서 정부가 노조가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복직 방식은 깡그리 무시한 채 정부가 낸 복직안만을 수용할 것을 강요했다고 전했다.

정부와의 실무 교섭 전 “다행히도 행정안전부가 올해 안으로 해직 공무원 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했다”며 안도했던 조합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애초부터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않’았거나 ‘못’했거나. 하지만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때의 답답함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노동계는 그 이유로 ‘변하지 않는 관료’들을 꼽았다.

실제로 대화하는 능력은 지도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사회 구성원들이 단번에 소유할 수 있는 물건 같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물건을 만들어 내는 기술에 더 가깝다. 그래서 우리 사회 관료들은 지난 10년 동안 대화하지 않았던 두 전직 대통령 아래서 시민사회와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해보는 경험, 능력 함양의 기회를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청와대 국민청원, 공론화조사위원회 등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형식’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대화’로 도약할 때다. 이는 비단 우리 쪽 대통령만의 과제는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4월과 9월, 두 차례 보여준 것도 ‘가능성’이다. 아직 ‘실천’의 수순이 남아있다.

똑같은 적(敵)이라도 대화 가능성에 따라 ‘괴물’이 되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화 가능성이 실패로 미끄러질 땐 더욱 더 악질의 ‘괴물’로 변모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