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도 소송할 권리가 있다고요?
산양도 소송할 권리가 있다고요?
  • 참여와혁신
  • 승인 2018.12.14 11:00
  • 수정 2018.12.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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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녹색연합 정책팀 박수홍

녹색연합 정책팀 박수홍 clear0709@greenkorea.org
녹색연합 정책팀 박수홍 clear0709@greenkorea.org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산양은 고작 800여 마리입니다. 대부분 설악산에 살고 있습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그곳에 살고 있던 산양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산양에게는 설악산을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걸까요?

작년 11월, 문화재청은 케이블카를 추가로 설치할 수 있도록 천연보호구역에 문화재 현상 변경을 허가하였습니다. 이에 케이블카 사업구간에 서식하는 산양 28마리 등이 원고가 되어 문화재청을 상대로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법조인, 연극인, 동물권단체, 환경단체, 정당이 한자리에 모여 이 소송을 토대로 한 모의법정을 열었습니다. 이날 열린 모의재판정에는 9인의 시민배심원단과 100여명의 시민방청객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재판장이 사건의 쟁점을 설명합니다. 이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산양 소송을 한다면서 왜 저를 부르지도 않고 이렇게 재판을 합니까?” 말하는 산양이 나타난 것입니다.

모의법정은 말을 하는 설악산 오색 산양, ‘뿔이’가 직접 자신을 변론하고, 시민들이 직접 판정에 참여하는 연극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실제 소송에서는 국내 정서상 자연물이 법적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부터가 논란인데, 이 상황이 가장 답답할 산양이 속 시원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실현해 본 것입니다.

법정에 출연한 산양 ‘뿔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설악산 오색에 케이블카가 생기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산양이다. 인간이 말하는 멸종위기는 (산양인) 우리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다. 인간들은 우리 산양을 보호하겠다며 온갖 보호법률(멸종위기야생동물 1급, 천연기념물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러한 법률들이 산양이 소송을 진행할 권리와 능력을 말해주지 않는가?”

이에 대해 피고 측 대리인은 “국내법제상 당사자 능력과 소송능력에 대해서는 민사소송법에서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법과 그밖에 법률을 따르게 되어 있다. 문제는 민사소송법에서는 산양과 같은 자연물에 당사자 능력을 부여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법을 보아야 하는데, 제 3조가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원고 산양은 사람이 될 수 없다”며 “법률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양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면 법원이 3권 분립을 침해하는 것이고 법원이 입법을 창설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산양이 이번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원고 측 대리인은 최후 변론에서 “우리가 그동안 동물과 자연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그 동안 우리 법원은 인간의 이익만을 위한 판단을 해왔다. 동물과 자연이 같이 살자고 외쳐도, 그 동안 우리 법원은 당사자 능력과 법적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무시해왔다. 심지어 여러 시민단체와 변호사들이 이들을 대신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동물과 자연이 이들에게 대리권을 수여했는지 그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해 왔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을 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의문이다. 모든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이익이 무엇인지, 의사가 무엇인지 우리는 충분히 확인 할 수 있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들만의 표현방식을 통해서 심지어 죽음으로 온몸으로 표현해왔다. 오늘은 이 법정에서 산양과 붉은 다람쥐가 인간의 말로 그들의 상황을 호소했다. 오늘 이 자리는 그 동안은 우리 판례가 어때왔는지 그리고 우리 법원이 어떤 법해석을 해왔는지 보다는 앞으로 우리 법원이 어떻게 이 사안을 바라보아야 하는지와 그들의 권리와 그들을 진정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현행 법률을 우리 법원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자리이다” 라며 배심원단과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시민배심원단 9인은 변론과 증거조사 종결 후 약 30분간 별도의 공간에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산양이 원고로서 소송제기가 가능하다고 전원의견일치에 이르렀고,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삭도 설치사업 공사를 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민재판부도 배심원단의 평결내용을 전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주심재판장인은 “원고 대리인이 산양의 이익을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이것이 산양의 의사에 반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원고대리인이 적법하게 소송대리권을 위임받았다”며 산양이 변호인에게 대리권을 유효하게 수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산양이 직접 법정에서 진술을 했으며, 우리 법률상 자연물, 동물을 보호해야 할 법적의무가 있고, 현행 민사소송법 규정이 동물의 당사자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산양의 소송당사자 능력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원고가 제출한 자료와 증인의 진술에 따라 이 사건 케이블카 공사가 진행 될 경우 산양의 종 전체가 멸종할 급박한 위기에 처한다.”며 이 사건 공사의 중지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피고는 설악산 오색구간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공사를 진행해서는 아니 된다. 집행관은 위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한다. 피고는 제 1항의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1일당 1,000,000원씩 원고들에게 지급한다.”고 최종선고를 내렸습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천연보호구역인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도록 문화재현상변경허가를 진행한 문화재청을 상대로 산양과 산양후견인이 원고가 되어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의법정과 다르게 국내 사법체계와 기존 판례상 자연(물) 소송을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모의법정에서 다루었듯이 법적지위가 없는 산양과 산양연구 전문가인 후견인이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큰 쟁점입니다.

산양을 위해서 시민배심원과 시민재판부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중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산양과 같은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기본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의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전향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자연이 온몸으로 자신의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우리부터 그 시작에 함께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법부가 현행 법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입법부 또한 다양한 입법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입니다.

ⓒ 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