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공공기관 경영평가, 본래 취지는?
30년 된 공공기관 경영평가, 본래 취지는?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12.14 17:11
  • 수정 2018.12.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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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명암①

한국사회에서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의미는 크다. 18년 기준 지정 공공기관은 모두 338개, 17년말 기준 임직원 정원은 312,320명에 달한다. 이중 35개 공기업과 93개 준정부기관은 공공기관 경영평가 대상기관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30년이 넘은 제도다. 그동안 다양한 필요에 따라 변모해 왔으며, 이와 같은 변화 역시 세간의 평가 대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평가 자체가 곧 공공기관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교정하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규모에 대한 것을 차치하더라도 공공기관의 ‘문화’는 민간기업에 파급되는 효과 역시 크다.

공공부문이 특히 그러한 것처럼 경영평가 역시 정권의 성격에 따라 변화상이 달랐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변화의 모습이 있었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의 사례를 통해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지점까지 함께 짚어본다.

한국사회에서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는 점은 수치로 확인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가령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다양한 공공서비스, 전기, 수도, 도로, 가스 등 실생활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보편적 서비스를 부담이 되지 않은 낮은 요금으로 제공하고 있다. 직접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기관이 아니더라도 국민경제와 기업활동, 안전, 소비자보호 등 다양한 공공성을 위한 활동과 간접적 가치들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1983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모태

이처럼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의미’가 큰 만큼, 다양한 논란도 불거진다. 가령 공공부문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네북”이란 자조적 표현이 나올 만큼, 정부 정책기조에 따라 운영, 관리에 부침을 겪었다.

공공기관의 역할과 성과, 운영과 관리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았다. 한때 대표적인 주홍글씨였던 ‘방만경영’ 네 글자 아래 공공기관의 구성원들은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도덕적 해이나 부채와 관련한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움직임도 계속되었다.

근본적으로 공공기관은 국민의 세금에 기반하여 설치,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법률적 근거로 안정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비판과 지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또한 보다 공공기관이 공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장치로 대표적인 것이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라고 볼 수 있다. 경영평가제도는 지난 1983년 제정된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을 통해 근간이 형성됐다. 30년이 넘은 제도다. 이후 2007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정권에 따라 공공기관은 부침을 겪었지만, 30년 넘게 경영평가제도는 큰 변화를 겪진 않았다. 한편으로 경영평가제도는 공공기관의 경영자율성을 보장하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을 통해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며 궁극적으로는 대국민 서비스를 향상시키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경영평가제도는 정부가 공공기관의 통제를 용이하게 하는 데 이용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 정권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이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등의 이름으로 무리한 공공기관 통제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공공기관도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특히 경영평가제도에 대해 그동안 가장 날선 비판을 가하며 대립각을 세웠던 공공부문 노동계 역시 평가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하진 않는다.

또한 그동안 경영평가제도가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점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가 본래 취지대로 공공기관의 공공서비스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평가 결과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해당 기관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는 방향이라기보다는, 기관의 서열화와 관료적 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지적 역시 타당하다.

통합과 분리 되풀이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의 30여 년 역사를 살펴보면 통합과 분리가 되풀이된다. 1983년 제정된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을 기반으로 정부투자기관에 대한 경영평가가 시행되다가, 2004년에는 정부산하기관 경영평가제도가 새롭게 도입됐다. 2000년부터는 이와 별개로 정부투자기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된 사장경영계약제도와 연계해, 사장경영계약이행 실적평가제도가 새로 시행됐다. 지금의 기관장평가의 개념이다.

지난 2007년 4월 시행된 공운법에 의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는 통합, 일원화되었다. 정부투자기관과 정부산하기관으로 이원화돼 있던 제도는 ‘공기업, 준정부기관 경영평가’로 통합된 것이다. 2008년부터는 평가기준과 방법의 일원화도 추진된다.

이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기관장평가의 경우 통합과 분리가 되풀이되었다. 2000년 정부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된 기관장평가는 2007년 공운법 시행과 함께 준정부기관으로까지 적용대상이 확대된다.

2009년에는 기관평가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평가지표체계를 독자적으로 설계했을 뿐 아니라 평가단도 독자적으로 구성해 운용됐다. 이와 같은 독자적인 기관장평가 모델은 2011년까지 적용됐다.

이와 같은 분리 구조의 기관평가와 기관장평가는 2010년 하반기에 ‘2011년 기관경영평가지표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다시 통합 평가체계로 전환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2014년부터는 다시 이원적 모델로 분리된다. 기존에 1년 단위로 실시하던 기관장평가를 3년 임기 중 1회만 평가하는 ‘기관장 경영성과협약 이행실적평가제도’로 개편함에 따라서다.

ⓒ KBS 뉴스광장 화면 캡쳐
ⓒ KBS 뉴스광장 화면 캡쳐

 

전두환 정권 군 출신 낙하산자리로 변질

1983년 당시 정부투자기관, 지금으로 치면 공기업의 경영평가제도가 도입된 배경은 무엇일까? 당시 경제기획원 등 주무부처 공무원이었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당시 정부투자기관은 정권이 내려보낸 낙하산 인사들이 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관할 부처의 국, 과장 선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 간섭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영지배구조도 전근대적이고 경영효율성 관리도 체계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 군 장성이나 이를 기반으로 한 정치인 출신 낙하산이 대부분이었는데, 나름대로 소신과 배짱이 있는 인사라면 내부 경영쇄신이나 주요 사업 추진을 감행했지만 대부분 청와대나 주무부처, 노조의 눈치보기 경영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기업 경영체제를 의결기구와 집행기구로 이원화하고, 경영평가제도를 도입하여 인사와 인센티브 보너스 제도를 차등화하자는 내용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용된 사공일 산업연구원장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것이다. 이 내용의 추진은 경제기획원이 맡았다.

민주적 의결 절차를 강화한다며 사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상위기관으로 ‘이사회’를 설치했지만, 이는 결국 군 출신 인사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옥상옥 구조를 만들려는 전두환 정권의 속셈이었다.

경영평가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애로점은 무엇보다 평가지표의 개발이었다고 한다.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달리 단기적 이익추구가 아닌, 비경제적 목표, 공공성 확충, 소셜인프라 정비 등을 추구한다. 따라서 경영성과 측정이 계량화되기 어려운 요소가 많았다는 것이다. 평가지표를 계량과 비계량으로 나누고, 그 비중도 기업마다 다르게 했는데 비계량 평가의 경우 어떤 전문가에게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게 할 것인지 정하는 게 어려운 과제였다.

2007년 공운법 제정으로 현 모습

김대중 정권 들어 1998년 7월 3일에는 공기업 민영화 계획이 발표된다. 포스코, 한국중공업, 담배인삼공사, KT 등 5개 핵심 공기업을 완전 민영화하고, 한전, 가스공사 등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2007년 공운법에 따라 공공기관 지배구조 혁신의 후속조치로 경영평가제도의 개선도 이뤄진다. 당시 몇 가지 쟁점사항을 살펴보자면, 우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경영평가제도를 통합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각 기관의 설립목적, 대상사업, 대정부관계 등에 있어서 차이점 때문에 평가지표, 기준, 방법을 차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평가제도 운영상의 효율성을 기하고 공운법이 제시하는 통일적 관리체제의 필요성을 고려해 통합의 방향으로 조정됐다. 이에 따라 기존에 구분돼 운영되던 평가단도 통합운영으로 정리됐다.

두 번째로는 기관평가와 기관장평가가 중복되는 문제에 대해 일원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던 것이다. 하지만 기관장평가의 현실적 필요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를 존치하되, 기관평가와 중복되는 점을 최소화하도록 평가지표를 재설계하였다.

하지만 현행 공공기관 평가제도가 각계각층에서 문제가 있다고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준정부기관이 공기업과 비교되는 시점에서 그 격차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다. 즉 ‘평가제도가 기관의 경영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다보니 평가의 본질이 조직의 경쟁력 강화가 아닌, 결과의 경쟁으로 내몰렸다. 더욱이 기관장평가가 인사 등과 접목되며 불만은 더 커졌다.

경영평가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이 단계에 이르러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긍정요인이 아니라 부정적 요인, 혹은 패널티 수단으로 변한 것이 안타깝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후 공공기관이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측면에서 인센티브 삭감, 복리 축소 등을 단행한 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당근이 아니라 채찍에 가깝게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반 대중들에게 공공기관은 한국사회의 어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철밥통’ 집단으로 매도되기에 이른다. 평가에 참여하는 이들로서는 공공기관에서 체감하는 분위기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공공기관은 공공기관대로 신뢰와 자율성, 자신감이 위축되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