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목적 기관의 획일적 평가
고유목적 기관의 획일적 평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12.14 17:12
  • 수정 2018.12.14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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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불거지는 불만,
경영평가는 제대로 가고 있나?

[커버스토리]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명암③

한국사회에서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의미는 크다. 18년 기준 지정 공공기관은 모두 338개, 17년말 기준 임직원 정원은 312,320명에 달한다. 이중 35개 공기업과 93개 준정부기관은 공공기관 경영평가 대상기관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30년이 넘은 제도다. 그동안 다양한 필요에 따라 변모해 왔으며, 이와 같은 변화 역시 세간의 평가 대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평가 자체가 곧 공공기관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교정하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규모에 대한 것을 차치하더라도 공공기관의 ‘문화’는 민간기업에 파급되는 효과 역시 크다.

공공부문이 특히 그러한 것처럼 경영평가 역시 정권의 성격에 따라 변화상이 달랐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변화의 모습이 있었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의 사례를 통해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지점까지 함께 짚어본다.

지난 2015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8개 공기업이 A(우수)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공기업의 사업은 공항, 도로, 전력, 수자원 등으로 전혀 다르고 규모도 크게 차이난다. 2014년에 이어 2015년 2년 연속 A등급을 받은 공기업들인 한국조폐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감정원, 한국수자원공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규모, 업무 고려 없는 일괄적 평가틀

정부의 공공기관 평가가 공공기관 유형에 따라 일괄적으로 묶은 다음 상대평가로 진행돼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무분야는 물론 직원 수와 자산이 수십 배 차이가 나는데도 한 데 묶어 줄 세우기식 평가를 하는 실정이다.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원칙상 절대평가지만, 사실상 상대평가라 공공기관들이 평가결과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사업특성이 전혀 다른 기관을 묶어서 비교하다보니 평가 결과가 미흡한 기관에 대해선 피드백이나 컨설팅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현행 경영평가는 크게 공기업, 준정부기관, 강소형기관 등 3개 그룹으로 묶어 각 지표별 득점을 합산한 점수 순으로 기관 서열을 정한 후 최종 평가등급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각 기관들이 각각 설정한 목표를 달성해도 상대평가이다보니 평가결과에 대한 예측이 어렵고, 성격이 다른 기관끼리의 불필요한 과열경쟁도 발생한다.

한 주요 공기업 관계자는 “업종별 특수성을 반영한 평가지표의 개선이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기획재정부의 ‘2018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에 따르면 현재 공기업I군에는 10개 기관이 있는데 에너지(한전 및 가스, 석유, 지역난방공사), 공항(인천공항, 한국공항공사), 철도(철도공사), 도로(도로공사), 수자원(수자원공사), 건설(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이들의 사업 특성은 확연히 다르다.

25개 공기업이 포함된 공기업Ⅱ군에도 에너지(남동발전, 동서발전 등 발전자회사), 항만(인천항만공사 등), 주택보증(주택도시보증), 감정평가(한국감정원) 등이 동일한 평가지표 아래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

특히 공기업Ⅱ군 기관들의 직원 수와 자산, 매출을 보면 해양항만관리공단, 한국감정원, 한국조폐공사의 직원 수는 물론 자산과 매출액도 발전사 등 다른 기관들에 비해 현저히 적다. 4개 항만공사도 정원과 매출이 적다. 39개 강소형기관군에도 특성과 규모가 다른 수많은 기관이 혼재돼 있다.

경영평가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학계인사는 “한전과 공항공사 등 덩치 큰 기업이 작은 기업에게 경평 순위가 밀리는 상황이 되면 정부가 국민여론을 감안해 비계량지표 쪽 점수를 적절히 높여 등급을 조정하기도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평가결과가 이상하면 사후에 ‘뒷말’이 꼭 나온다.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라고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경영평가 분류기준을 재편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같은 군으로 분류된 기관의 경우에도 규모와 성격이 다른 기관들이 획일적인 평가기준에 따라 평가를 받고 있어 문제”라며 “평가기준을 기관 정원을 바탕으로 분류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울러 공기업II 군의 경우 에너지 관련 공사, 항만공사, 나머지 기타 공기업으로 구분해 평가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고도 덧붙였다.

기관 특수성 고려해야

기업 수출을 지원하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지난 2011~2015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모두 A(우수)등급을 받았다. 매출과 당기순이익이 증가해 경영효율 계량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에너지공기업들과 안전관련 공기업들은 그 사이 등급의 등락이 심했다.

한전에서 경평실적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KOTRA는 평상 업무만 별 일 없이 진행해도 높은 등급이 나오는 반면, 우리는 외부변수에 매년 등급이 좌우돼 불공평하다”고 푸념한다.

2012년 말 기준 수자원공사의 부채는 12조 원에 달했다. 그러나 부채가 이렇게 쌓이는 동안 수자원공사는 2008년부터 3년 연속 경영평가 A등급을 받았다. 그 결과 2011~2013년에는 B등급으로 주저앉았으나 2015년 다시 A등급으로 복귀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관련 부채가 경영평가 기준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보금자리주택 사업 등으로 138조 원의 부채를 짊어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100조 원의 부채를 안고 있던 한국전력공사 등은 각각 C등급에 머물렀다. 양 기관 관계자는 “우리도 국책사업이나 서민물가 때문에 부채가 늘었는데 평가 잣대가 도대체 뭐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매년 시행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평가기준에 공공기관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정부의 공공기관 평가등급은 S(탁월)~E(아주미흡)로 나뉜다. S등급은 지난 2011년 한국공항공사가 받은 이후 지난해 2017년 경평까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공공기관이 수행하고 있는 공공성 중심 사업에 대한 평가가 과연 제대로 이뤄진 것이냐는 비판과 지적이 제기된다. 수익성 중심의 평가가 이뤄지고, 수익성이 적어 부채가 늘어나는 기관의 경우 평가를 좋게 받을 수 없다는 불만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수익성을 위해 벽지노선을 대거 축소한 것이 좋은 예다. 지난해 12월 코레일은 승객이 적어 수익성이 낮은 경전선·동해남부선 등에서 7개 벽지노선 운행 횟수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적자에 시달리는 코레일이 2015년 경평에서도 C(보통)등급을 받은 만큼 강도 높은 효율화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지역 중에서는 철도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현행 공공기관 평가 기준을 개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김상봉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기준은 정량지표와 정성지표로 나뉘는데 부채비율 평가가 일반기업 기준과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공기관은 기본적으로 공익성이 우선돼야 한다. 제대로 운영한 결과로 부채가 커지고 실적이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며 “예를 들어 에너지공기업의 경우 요금 올려서 수익성 맞추고 하면 민간기업과 다를 게 없다. 일반기업은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가면 부실하다고 판단하지만, 공공기관에 지금처럼 이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