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용균입니다"
"내가 김용균입니다"
  • 박재민 기자
  • 승인 2018.12.18 18:10
  • 수정 2018.12.18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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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100인 대표, "고 김용균 씨 뜻 이어갈 것"
위험의 외주화 멈추고 정규직 전환 요구
ⓒ 박재민 기자 jmpark@laborplus.co.kr
ⓒ 박재민 기자 jmpark@laborplus.co.kr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가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된 18일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은 이날 오후 ‘비정규직, 이제는 그만’이라는 구호 아래 “비정규직과 직접 만나 이야기할 것”을 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장은 “우리도 김용균이다”라면서 “너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도 죽고 있다”고 말했다.

위험의 외주화 멈춰라

한국가스공사에서 시설관리를 업무를 담당한다는 홍종표 씨는 “구의역 사건과 이번 태안화력발전소 사건 모두 인력 부족이 원인이었다”면서 “규정이 있어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계속 인명 사고가 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태안화력발전소 사건을 보면 인력부족으로 인한 규정 미준수가 원인이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고인은 지난 11일 새벽 3시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사망한 지 5시간이 지난 뒤였다.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 내부지침을 보면 소음 지역이나 분진 지역을 점검할 경우에는 2인 1조로 작업장에 출입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태안화력발전소 트랜스타워 5층 내부에 있는 컨베이어 벨트 점검을 담당한 고인은 규정대로라면 2인 1조로 작업해야 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고인과 같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신대원 씨는 “모든 시설 관리 감독 승인권을 갖는 원청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를 이야기해도 아무 반응도 없었다”며 “규정대로만 작업이 진행됐어도 사고가 나지 않았거나 시신이 5시간 동안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죽음의 외주화를 막을 수 있게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복해 주장한 사항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자’는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가 일반적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이번 사건에서도 증명된다.

한국서부발전은 연료환경설비운전 업무를 외주화해 비정규직인 고인이 담당하도록 했는데, 설비 업무 특성상 위험이 내재한다는 점에서 하청업체가 이 업무를 맡았다는 사실이 일상화된 위험의 외주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참석자들은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보일러 교체 작업을 하던 한국서부발전 하청노동자가 협착 사고로 숨진 지 1년 만에 이번 사건이 재발했다는 점에서 한국서부발전이 인명사고 방지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한다. 참고로 2008년부터 2017년 10월까지 10년간 한국서부발전에서 발생한 58건의 안전사고로 총 7명이 숨졌는데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한국서부발전도 불법파견 알았다

김승현 KTX 비정규직 승무원은 “위험의 외주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문제는 원청업체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없는 나라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한국서부발전이 보인 모습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실제 우리 사회에서 요원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서부발전이 고인과 함께 한국발전기술에 소속됐던 하청노동자들의 불법파견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방치했다는 점이 문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국서부발전 포함 발전 5개사 의뢰로 노무법인 서정이 작성한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컨설팅 최종보고서’를 보면 고인이 맡은 업무를 외주화 하는 것이 불법파견에 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고인 등을 직접고용 대상에서 배제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건에는 고인이 맡았던 연료환경설비운전 업무가 원청업체의 지휘·명령과 관련해 불법파견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맺는 도급계약은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만,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를 지휘하거나 감독하는 등 실제적인 사용자 구실을 하면 도급계약 위반으로 불법파견으로 취급된다.

보고서를 보면 발전 5개사는 계약조건을 변경하거나 운영방식을 바꿔 지휘·감독의 위험 요소만 제거하려 한 정황이 드러난다. 사안의 근본적인 해결에 집중한 게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불법파견 가능성만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예들 들어, 한국서부발전은 고인이 맡은 업무가 전문성과 기술력이 필요해 외부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세워 불법파견으로 해석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을 다짐했다.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21일 “서울노동청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할 것”을 예고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원한다면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