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2019 하나로 전진할 것인가, 몰락할 것인가?
[신년사] 2019 하나로 전진할 것인가, 몰락할 것인가?
  • 박송호 발행인
  • 승인 2019.01.02 10:58
  • 수정 2019.01.04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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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입니다. 기업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야 할 시점에 의욕마저 꺾는다고 합니다. 더 힘을 모아달라고 합니다.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고 합니다. 반면 국민 대다수는 살기 힘들다고 난리입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현재의 어려움, 한국경제의 저성장은 예견된 것이자 진행형입니다.

중국의 성장 등 후발국가의 추격, 더 낮은 비용을 찾아 한국을 떠난 기업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기업은 혁신, 혁신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나선지 오래입니다. 사회적으로 빠른 속도의 고령화, 가계부채와 청년실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사회는 선택과 집중으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산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했습니다. 그리고 성장했습니다. 성장의 힘은 비용경쟁력이었습니다. 이제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 즈음 우리 국민은 재벌을 위한 나라, 국민을 구하지 못하는 나라답지 못한 나라의 실체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아랍의 봄을 만든 동력은 경제난과 청년실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눈앞에 펼쳐진 대기업 중심, 기울어진 운동장, 양극화, 고용불안정 등이 촛불의 동력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사회가 풀어야 할 의제이자 과제입니다.

참여와혁신은 지속적으로 경제적 패러다임의 이동을 이야기 했습니다. 조선산업의 몰락을 보도 하면서 한국경제의 전형화된 문제점을 드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빨리빨리, 결과중시의 문화는 선택과 집중의 정책과 산업구조가 만든 결과물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R&D의 혁신, 사회적 대화와 통합, 그리고 사회안전망입니다. R&D의 혁신은 현장의 창의성, 다양성, 자율성을 살리는 원칙으로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고 형식적인 의견수렴이 아닌 공론화과정이어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한 공론화과정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모아 사회의 경쟁력으로 만드는 사회통합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더 이상 고도성장은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을 몰아내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아니더라도 일자리는 줄어든다고 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조조정과 다양한 도전, 그리고 실험을 위해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합니다.

공공과 민간을 포함한 국가 총 연구개발비 규모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GDP 대비 총 연구개발비는 세계 2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총 연구개발비 연평균 증가율은 7.7%입니다. 우리사회는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투입량에 비례하여 성과는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과학연구계는 연구에 집중할 풍토가 아니라고 합니다. 자기결정권이 없는 현장배제의 제도로 인해 장기적인 투자와 노력을 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최근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가 11년만에 부활했습니다. 과기정통부는 2040년의 미래모습을 위한 추진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과학연구계는 이러한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줄기차게 연구풍토의 개선을 주장해온 노동조합과 이해당사자의 참여는 미흡하다는 평가입니다. 또 다시 과학연구의 당사자는 의사결정의 수행자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해당사자이자 혁신의 주체인 현장의 배제는 비단 과학연구계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사회 곳곳은 더불어 함께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중 하나입니다. 더 저렴한 비용, 더 안전한 누군가의 노동을 위해 양산된 것입니다. 자본과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조직화된 노동의 연대와 참여가 필요합니다. 노동이 정부와 자본의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신뢰와 능력을 키워야합니다.

전통적인 노동계층의 구분은 제조업과 사무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사무직과 생산직을 넘어 숙련된 전문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로 나누어집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백인 시골사람을 ‘레드넥스’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계화가 진행되어 전통산업이 붕괴되고 (러스트벨트 같은) 이민자가 유입되면서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기반이 된 사람들입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념과 레토릭으로 무장해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것은 세계 정치사에 흔한 일입니다. 우리사회도 혐오라는 이름의 갈등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극복해야 할 역사적 산물을 누군가의 책임으로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다름과 어려운 삶이 혐오로 가지 않도록 사회연대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우리사회는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성과를 이뤘던 방식이 새로운 변화를 가로막는 상황입니다. 누가 더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다만 우리사회 모두가 함께 극복해야할 과제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서로 존중하고 다양성과 창의성이 만개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하는 시대적 사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2019년 더 도전하고 격려하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