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제화공 공임 올리더니 2개월 만에 위장폐업?
20년 만에 제화공 공임 올리더니 2개월 만에 위장폐업?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1.04 19:06
  • 수정 2019.01.04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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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브랜드 '미소페' 하청공장, 폐업 한 달 전 통보에
"안 그래도 비수긴데 어디로 가라고..."
정기만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장이 미소페에 제화공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 .co.kr
정기만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장이 미소페에 제화공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 .co.kr

구두 전문 브랜드 ‘미소페(misope)’에 여성 수제구두를 납품했던 하청공장, ‘슈메이저’가 지난 26일 갑작스럽게 폐업을 결정하고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밝히면서 해당 공장에서 근무하던 제화공 25명 모두가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에 내몰렸다. 미소페는 슈메이저 등 11개 하청공장으로부터 구두를 납품받아왔으며 현재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공장은 전무하다.

이에 해당 하청공장 소속 제화공 25명은 지난달 27일 서울 성동구 미소페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공장의 일방적인 폐업 통보를 규탄하고 원청인 미소페에 직접고용 등 책임을 요구했다.

일주일이 지난 4일 오후에도 이들은 같은 장소에 모여 미소페에 지난 10년 동안 하청 공장에서 미소페의 신발만을 만들어온 수제공들의 실업을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하청공장 제화공 25명이 소속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동조합은 “지난해 10월 22일 미소페 제화공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교섭에 미소페 본사가 직접 들어와 하청공장과 함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며 “4대 보험을 들어주기 싫어 위장 폐업하고 중국으로 공장을 옮긴 슈메이저에 대해 작년 대비 7% 매출 성장, 1,050억 원을 올린 미소페 본사가 책임을 미루지 말고 일자리를 잃은 제화공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공장에서 9년 간 몸 담아온 제화공 김광식 씨는 “제화공들은 철저히 ‘을’이다. 공장 대표가 폐업을 통보했을 때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성수동 일대가 전반적으로 일감이 주는 비수기인데다 제화공 모두가 50대 후반이여서 앞으로 생계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기만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장은 회사의 폐업 결정이 “정말로 예상치도 못했던 갑작스러운 통보”였다고 전했다. 정 지부장은 “최근 대법원이 제화공 15명이 구두 회사 ‘소다’를 상대로 ‘퇴직금을 달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제화공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으로 4대 보험 등 제화공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귀찮아지니 공장 문을 완전히 닫아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법적 지위는 ‘개인사업자’로, 실질적으로는 원청인 미소페의 납품단가 결정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등 지휘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가 아니다.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실업급여 등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한편 슈메이저는 불과 2개월 전인 10월 22일 공임비(신발 한 켤레 당 제화공이 받는 임금)률 기존 5,500원에서 6,800원으로 인상하고 12월부터는 200원 추가 인상하기로 제화공들과 단체협약을 맺은 바 있다.

이는 지난해 4월 탠디(TANDY) 하청업체 제화공들의 파업을 계기로 성수동 제화공들의 열악한 처우가 다수 언론에 조명되면서 20년 만에 이뤄진 공임인상이다.

이에 미소페측 관계자는 “슈메이저와 거래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소페와 슈메이저는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사업체”라고 선을 그었다.

미소페측 관계자는 “독립된 사업자가 폐업을 하든, 어떤 결정을 하든 사업주의 판단이지 거래 업체가 폐업을 했다고 해서 본사가 폐업한 업체의 제화공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도 폐업 2주 전에야 (하청공장의) 폐업 소식을 들었다. 오히려 해당 공장에서만 생산되던 물량을 취소해야 하는 등 매출 감소의 피해를 봤다”면서도 “해당 공장 대표가 월세 방을 얻어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영난에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폐업까지 했겠느냐. 이미 폐업한 회사에 일일이 피해 보상을 요청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노조의 직접고용 요구에 대해서도 “하루하루 매출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중소기업으로서 그럴 여력도 안 된다. 노조가 주장하는 작년 매출 1,050억 원은 미소페뿐만 아니라 여러 브랜드들의 매출을 모두 합한 것으로 미소페 매출액은 2016년도 811억 원에서 2017년도 771억 원으로 줄었다”고 해명했다.

또 “제화공의 근로자성 인정 문제는 첨예한 법적 다툼의 대상이다. 일개 영세 사업장이 그걸 어떻게 판가름 하느냐”면서 “그럼에도 노조에서 요구해, 법적 의무는 없지만 단체교섭에 참관해 협조해왔다. 탠디를 보며 단체교섭에 앞선 7월 1일부터 공임인상을 소급적용해, 연간 30억 원 부담을 감수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과거 오랜 기간 공임을 동결해왔다 하더라도 상당 부분 인상한 거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회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는 본사가 해당 하청공장이 폐업할 거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본사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변명하고 있다는 입장이어서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날 제화공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 광진구 롯데백화점 스타시티점 앞으로 도보로 이동해 주변 시민들에게 관련 내용을 알렸다.

공장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제화공들이 롯데백화점 스타시티점 앞에서 시민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 .co.kr
공장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제화공들이 롯데백화점 스타시티점 앞에서 시민들에게 관련 내용을 알리고 있다.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 .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