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세대 퇴장, 노동운동은 과도기
87년 세대 퇴장, 노동운동은 과도기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1.11 11:48
  • 수정 2019.01.11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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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정년퇴임

[인터뷰]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민주노총준비위 시절 만든 정년이 60세였는데, 일부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랬죠. ‘왜 정년을 만들어? 민주노총 끝날 때까지 활동해야지’, ‘무슨 늙어서 노조운동이냐, 60세까지면 충분하지’ 이런 농담한 게 엊그제 같은데…”

민주노총의 첫 정년퇴직자, 김태현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퇴임식이 지난달 14일 오후 4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선배 가시는 길에 후배들이 빠질 수 있으랴. 이날 퇴임식에는 인생 1막을 마치고 2막을 시작하는 김태현 연구위원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김태현 연구위원은 퇴임식 전 진행한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2018년 12월 7일)에서 민주노총의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평가했다.

지난 30년 동안 민주노총에서 정책을 담당해왔다. 민주노총의 정책 역량을 평가한다면?

민주노총 초기의 낡은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정책이라는 건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이쪽과 저쪽의 힘의 관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 노동운동의 대의를 지키면서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원래 정해져 있는 정답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100점을 바라지만 현실이 100점이라는 게 있을 수 없지 않나. 현재 상황은 50점이냐, 70점이냐로 논쟁하고 있는데, 100점만 바라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민주노총의 정책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책 담당자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도부의 결단력도 필요하다. 정책은 장기적으로 키워나가야 하는 부분인데, 조직을 운영하는 지도부 입장에서는 정책적인 투명한 판단보다는 민주노총 전반적인 조직 정서에 이로운지 아닌지를 따지게 되는 것.

어떤 때는 내부에서 욕을 먹더라도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해야 할 때도 있고, 일정한 타협 지점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정세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노동운동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를 판단해야 하는데 내부에서는 타협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심한 경우는 적당히 타협해서 넘어가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중간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어려운 것. 이런 상황에서는 원칙적인 표명을 하는 것이 제일 쉽다. 투쟁을 통해서 돌파하자는 민주노총의 기질이 문화적으로 체질화된 측면도 있다.

물론 민주노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도 있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것도 민주노총의 큰 성과 아니겠나. 주5일제라는 담론을 만들어낸 것, 사회복지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의료보험통합일원화 등 복지 영역을 노동운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개척한 것 역시 민주노총의 큰 성과다.

민주노총의 현재를 어떻게 보는가.

과도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민주노총에서 떠난다는 이야기는 87년 노동운동 1세대가 퇴장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시작됐고, 활동가들도 슬슬 떠나는 시기가 왔다. 1세대들의 노동운동은 탄압과 억압 속에서 전투적으로 민주노조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던 운동이다. 이제 우리 다음에 오는 2세대들의 운동이 시작되는 것. 다만, 아직 2세대들이 전면적인 주류로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과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년퇴임 이후 인생 2막은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지.

이제 정면에 나설 일은 없겠지만 노동운동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젊은 활동가, 후배들과 호흡하고, 비정규직 등 주변부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