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실현 어떻게 해야 하나?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실현 어떻게 해야 하나?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1.11 11:49
  • 수정 2019.01.11 11: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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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노동조합 역할도 중요

[리포트]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고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성과연봉제 폐지 등과 더불어 내년부터는 경영평가에도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는 외부의 요구와 내부의 부담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지난 4일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과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공동주최한 ‘상생과 연대를 위한 공공기관의 역할 토론회’와 관련 자료들을 토대로 공공기관이 목표해야 하는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지, 그 방법으로는 무엇이 주로 논의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사회적 가치, 국정 운영 기본원리로 삼아야”

<2018년 공공기관 현황편람>에 따르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근거로 지정된 공공기관 수는 338개이며 이 가운데 공기업이 35개, 준정부기관이 93개, 기타 공공기관이 210개다. 2017년 기준 공공기관 임직원수(정원)임직원 수는 약 31만 2,000여 명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공공기관은 효율성과 성과주의 등 시장 원리 중심으로 관리돼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와 함께 ‘신공공관리론(NPM·New Public Management)’이 공공기관의 운영 기조로 자리 잡으면서다.

신공공관리론은 ‘큰 정부(big governmet)’ 실패를 전제로 공공기관에 민영화와 민간 위탁, ‘고객’서비스 지향을 위한 경쟁 등 시장화 전략을 정당화하는 행정학 이론이다.

앞서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각각 추진한 공공기관 선진화, 정상화 정책 또한 공공기관의 경영 자율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의 전환과정이었다. 물론 두 정부 모두에서 ‘공정 사회’, ‘사회적 책임(SR·Social Responsibility)’ 등의 용어로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게 소외·취약 계층에 대한 기부나 봉사 등 수혜를 제공하는 방식이어서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전면에 내세운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4년 6월 17일,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사회적 가치법)’을 대표 발의하며 “세월호 참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과 효율을 앞세웠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직시하게 한다. 이제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공공기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삼아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공공기관이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 시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도록 하는 게 사회적 가치법의 골자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과 박광온 의원이 2016년, 2017년 연달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재발의 했다. 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 모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에 상정돼 있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국가 중 우리나라의 공공성 순위는 최하위다. 연구소는 2015년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재난과 공공성의 사회학>(한울아카데미)을 출간하며 “재난은 공공성의 결여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회적 가치란 무엇인가?

사회적 가치는 명료하게 정의된 개념이 아니다. 현행 자본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긴 해도 그 시대적 맥락성과 상대성, 추상성, 다의성으로 주체마다 정의하는 내용과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표1>,<표2> 참고)

다만 앞서 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서 사회적 가치는 사회, 경제, 경영, 환경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로 정의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권리로서 인권의 보호, 재난과 사고로부터 안전한 근로·생활환경의 유지, 건강한 생활이 가능한 보건복지의 제공, 노동권의 보장과 근로조건의 향상,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회제공과 사회통합,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활성화와 공동체 복원, 경제활동을 통한 이익이 지역에 순환되는 지역경제 공헌, 윤리적 생산과 유통을 포함한 기업의 자발적인 사회적 책임 이행, 환경의 지속가능성 보전, 시민적 권리로서 민주적 의사결정과 참여의 실현, 그밖에 공동체 이익 실현과 공공성 강화 등 13개 내용으로 적시되고 있다. 아울러 두 법안은 ‘사회적 가치 성과 평가’를 사회적 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정량적·정성적으로 조사·예측·분석·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적 가치 실현 방법은?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이 설립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기만 해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신문사에서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과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공동주최한 ‘상생과 연대를 위한 공공기관의 역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공공기관의 설립 목적 자체가 공공서비스 확대에 있기 때문에 고유 사업에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고 실행한다면 그것이 곧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라영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은 “민간 기업이 사회적 평판과 주식가치를 높이기 위해 소외·취약 계층에 기부와 봉사를 하듯,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 실현에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며 “공공기관은 국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역할이자 책무이므로 그 주요 사업의 연장선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고 확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 소장은 그 방법으로 “조직의 사업 특성에 맞는 활동들을 발굴하고 조직”해야 하며 “민간이 실천하기 어려운 지역 인재, 장애인 채용 등에도 힘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도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은 공공기관이 고유사업에서 공공성을 구현하는 게 핵심”이라며 공감의 뜻을 밝혔다. 오 운영위원장은 그를 위해 공공기관의 역할이 재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 운영위원장은 “일례로 철도공사법 제1조는 ‘한국철도공사를 설립하여 철도 운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철도 산업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의해, 철도 운영의 전문성과 효율성만 강조하고 있다. 이를 ‘시민을 위한 철도서비스의 안전성, 편리성, 보편적 접근성’ 등으로 바꿔 설정하고 그 수단으로 전문성과 효율성이 명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 경영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구현’ 평가지표로 22점이 부여됐지만, 그 항목은 공공기관의 고유한 서비스 제공과는 큰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면서 “공공서비스 요금의 사회성, 보편성, 지속가능성 등 공공기관이 고유사업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에 적합한 사회공공회계 개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운영위원장은 “비록 재정적으로는 적자여도 사회적으로 더 큰 공적 가치를 발휘하는 ‘사회적 적자’개념이 자리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사(使)만큼이나 노(勞)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IS0-26000(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에서 ’CSR(Company Social Responsibility)’이 ‘C’가 빠져 ‘SR’이 됐다. 이는 기업뿐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포함한 여러 경제 주체들이 사회적 책임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그동안 노동조합은 기업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간주했지만 이제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노동조합 역시 기업과 더불어 비정규직, 취업난에 고생하는 청년층,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는 고령 은퇴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 소장은 “현재 기업별 노동조합 조직체계에서는 기업 내부 문제에 매몰되어 노동계급 전체의 문제나 공통 쟁점에 대한 대응력이 취약하다. 산별 노조로 전환해 노동자의 단결을 촉진하고 타 사업장과의 노동조건 균질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도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일반 기업보다 고용 안정성이 높고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좋은 편”이라면서 “평생 직업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임금을 줄이더라도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현 정부가 어떤 좋은 슬로건이나 신조를 내걸었을 때 노동조합이 그것이 그대로 현실화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며 “양대 노총이 그런 상황을 실현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회적 적자?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실현,

생산성 배제하는 개념 아냐

한편 일각에서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효율성과 생산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덕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실과 김경수 의원실, 양대 노총이 공동주최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토론회’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데서 보듯이, 소득주도성장은 성장을 위한 충분한 동력이 되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이어가되, 추가적인 혁신과 성장의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사회적 가치도 단순히 공공부문의 규모를 키우고 공공조달의 방식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공공성을 증진하면서도 혁신과 효율을 담보할 것인지 사회구성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의 ‘필요성’과 그 ‘사회적 수용성’은 별개”라며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에 재정을 쓰는데 사회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