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위 노동자들, 426일 만에 땅을 밟다
굴뚝 위 노동자들, 426일 만에 땅을 밟다
  • 강은영 기자,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1.11 16:08
  • 수정 2019.01.14 0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인텍 노사, 20시간 교섭 끝에 고용보장·노조인정 등 합의 이뤄내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426일, 1년 넘게 하늘 위 생활을 해 오던 두 명의 파인텍 고공 농성자들이 드디어 땅을 밟게 됐다. 6차례 교섭 끝에 노사는 고용보장과 노조인정 등이 포함된 합의를 이뤘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진행된 6차 교섭은 20시간이 넘는 밤샘 협의 끝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협상이 타결된 11일 오전 노사는 조인식을 가졌다.

합의 내용을 살펴보면, 회사의 정상적 운영과 책임 경영을 위해 파인텍 대표이사를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가 맡는다. 또한, 회사는 2019년 1월 1일부터 6개월간 노동자들에 대해 유급휴가로 임금 100%를 지급한다.

오는 7월 1일부터 공장을 정상 가동하고 파인텍지회 조합원 5명을 업무에 복귀시킨다. 지회에서 요구했던 고용보장은 2019년 1월 1일부터 최소 3년간 보장하기로 명시했다.

노사는 파인텍지회를 교섭단체로 인정하고, 기본급 최저임금+1000원, 주40시간(최대 52시간) 등을 포함한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오는 4월 30일 안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교섭이 타결됨에 따라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이던 두 명의 노동자들도 내려올 수 있게 됐다. 지난 2017년 11월 12일 굴뚝 위에 올라간 지 426일만이다. 또한, 차광호 지회장 단식 33일, 두 명의 고공 농성자들이 단식한 지 6일 만에 이뤄진 결과다.

홍기탁 파인텍지회장은 농성장 앞에서 기쁨의 포옹을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홍기탁 파인텍지회장은 농성장 앞에서 기쁨의 포옹을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한국합섬에서 파인텍까지,
그리고 두 번의 고공농성

스타플렉스는 지난 2010년 섬유가공업체인 한국합섬을 인수하고 법인을 스타케미칼로 변경했다.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는 인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공장 정상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인수 1년 반 만에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회사는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 요구한 것이다.

차광호 파인텍지회 지회장은 지난 2014년 스타케미칼 공장 안 45m 굴뚝 위에 올라 “약속을 지켜라”고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굴뚝 위 408일간 투쟁을 통해 고용보장,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 보장, 생계 및 생활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합의를 통해 파인텍 공장이 설립됐다. 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품고 공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의 희망은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회사는 또 다시 약속을 어겼다. 체결하기로 한 단체협약도 체결되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들은 또 한 번의 굴뚝 농성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스타플렉스 사무실이 위치한 목동 CBS가 보이는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 위였다. 홍기탁·박광호 파인텍지회 조합원이 굴뚝 위에 올랐다.

또 다시 408일 최장기 굴뚝 농성을 넘길 수 없다며 지난해 12월 6일, 스타플렉스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끝장 투쟁’을 선포했다. 이들은 청와대에서부터 스타플렉스 사무실이 위치한 CBS까지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했다.

또한, 지난해 12월 10일에 차광호 파인텍 지회장의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고 같은 달 18일에는 사회단체 대표자 4명이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 지난 1월 6일에는 고공농성 중인 두 명의 조합원도 단식에 들어갔다. 교섭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벼랑 끝 투쟁’을 선포한 것이다.

차광호 지회장은 몇 차례 스타플렉스 사무실을 찾아 교섭을 요구했지만, 김세권 대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고공 농성자들의 건강 악화와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노사는 지난해 12월 27일 첫 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교섭 과정도 쉽지 않았다. 노조는 노조-고용-단체협약 3승계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5차례 교섭이 진행됐지만,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두 명의 고공 농성자 건강 상태가 날로 안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식까지 들어가자 지난 10일 오전, 노사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교섭을 진행했다. 교섭은 밤새 협의를 진행한 끝에 합의를 맺을 수 있었다.

박준호, 홍기탁 파인텍지회 조합원은 굴뚝 농성을 해제하고 지상으로 내려오기 위한 준비 중이다.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박준호, 홍기탁 파인텍지회 조합원은 굴뚝 농성을 해제하고 지상으로 내려오기 위한 준비 중이다.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또 다시 굴뚝 위에 오르지 않기를

노사 합의가 이뤄진 11일 오후 파인텍지회는 ‘교섭 결과보고 및 굴뚝농성 해단식’을 가졌다. 농성장 앞에 도착한 차광호 지회장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 동안 연대해 준 이들과 포옹을 나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첫 번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며 “어렵게 노사 합의가 이뤄진 만큼 이번만큼은 꼭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차광호 지회장과 함께 동조단식을 함께 진행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은 “다시는 누구도 저 높은 굴뚝 위에 오르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번 합의가 사측의 양보를 통해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있는데 애초에 사측이 이전에 합의한 내용만 지켰어도 지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 중요한 것은 어렵게 만들어낸 합의서가 지켜질 수 있도록 책임을 다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굴뚝 위 농성을 해제한 두 명의 조합원은 몸에 안전 줄을 묶고 구급요원 보호 하에 자력으로 굴뚝 위에서 내려오는 중이다. 이들은 에너지 공사 정문으로 나와 그 동안 연대해온 이들과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