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 또다시 간호사 생명을 앗아가다
'태움' 또다시 간호사 생명을 앗아가다
  • 박재민 기자
  • 승인 2019.01.22 13:17
  • 수정 2019.01.2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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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료원 간호사 자살 사건, 직장 내 괴롭힘 가능성 제기
ⓒ 박재민 기자 jmpark@laborplus.co.kr
ⓒ 박재민 기자 jmpark@laborplus.co.kr

지난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의료원 소속 간호사 고(故) 서지윤 씨 사건에 대해 서울시가 나서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시민단체와 종교계의 요구가 나왔다.

시민단체, 노동조합, 전문가로 구성된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22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유가족과 시민대책위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시민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은 임상혁 녹색병원 부원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를 노동존중시로 만들겠다고 했다”면서 “서울시 산하 병원인 서울의료원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을 외면한다면 그 말은 공허해질 뿐”이라고 말했다.

2013년 서울의료원 입사 이후 병동에서만 근무하던 고인은 지난해 12월 18일 행정부서로 발령이 난 뒤 업무 관련 사항을 인계받던 중 성북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지난 11일 타살 흔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새서울의료원분회는 입장문을 내고 “고인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희생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주장했다. 사건 배경에 간호사 조직 내 존재하는 ‘태움’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태워서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힌다'는 뜻의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가르치는 수단으로 괴롭힘을 이용하는 문화를 지칭한다. 지나친 인격 모독 등 폭력적인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아 간호사 주요 이직 이유로 꼽힌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태움 문화는 위계질서를 구축해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하려는 경영전력의 부산물”이라며 “부조리한 문화를 방치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한 사용자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태움 문화가 간호사 개인의 선택적 행위이기 이전에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파생되는 구조적 부조리라고 평가했다. 현 본부장은 “간호사들 중 10시간 넘도록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면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태움을 개인 차원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면서 이번 서울의료원 사건을 ‘구조적 타살’이라고 정의했다.

지난해 2월 서울아산병원 신입 간호사가 병원 근처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을 때도 ‘태움’이 사건 배경으로 지목됐다.

고인의 유서에는 ‘병원 사람들은 조문 오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대책위가 이번 사건을 ‘타살’이라고 정의하는 근거다.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는 5명이다. 이성종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서울의료원 내부 관계자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로 이번 사건 원인을 밝히겠다는 것은 허황된 소리”라면서 “계속되는 간호사 희생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서울시가 책임감을 갖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