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직장 괴롭힘 금지
7월부터 직장 괴롭힘 금지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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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인권 무지 예방하나

[리포트] 직장 내 민주주의

7월 16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행여나 증거가 부실할까 관련 자료들을 차곡차곡 모으면서... 직장 상사로부터 소위 ‘갑질’에 시달리는 이들이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신고하기 위해서다. 신고를 받은 회사는 즉시 조처해야 한다. 법 개정을 계기로 그동안 우리네 직장 생활에 만연해 온 인권 무지와 무능을 짚어본다.

법률 용어 된 직장 내 괴롭힘

오는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지난달 15일 공포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지위나 관계상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했다. 또 사용자에게 예방·대응책임을 지웠다. 개정안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은 회사는 반드시 조사해야 하고,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번 법 개정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률적 정의를 마련한 최초의 시도로 의미가 크다.

최혜인 직장갑질 119 상임노무사는 “그동안은 직장 내에서 폭언·인격모독 등 괴롭힘을 당해도 관련법이 없어 피해를 인정받기 어려웠다”며 “가해자 처벌이 빠지는 등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앞으론, 법적 근거를 가지고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영화 속 얘기처럼 특별한 일 아냐

법으로 개념이 정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태움(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에게 교육을 명목으로 가하는 괴롭힘)’, ‘상사 갑질’, ‘인권침해’ 등의 표현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며 꾸준히 지적돼 온 문제다.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이 비단 일부만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가 날 뿐 일상에서 누구라도 쉽게 괴롭힘을 경험할 수 있고,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지켜볼 수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최근 1년 이내에 직장에서 다른 직원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경험도 전체 응답자의 27.6%에 달했다. 임원 또는 경영진을 포함한 상급자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77.6%) 지목됐다. 괴롭힘을 경험한 이들은 괴롭힘이 ‘업무 능력이나 집중도 하락’(64.9%), ‘상급자나 회사에 대한 신뢰 하락’(64.9%), ‘동료들과의 관계 소원’(33.3%), ‘진지한 이직 고민’(66.9%)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괴롭힘 경험 비율은 성별, 고용 형태, 직장 규모 구분 없이 10명 중 6명꼴로 대체로 높게 나타났고 특별히 20대(75.7%)(연령)와 근로시간 주 52시간 초과 사업장(81.6%)(근로시간), 생산직 종사자(75.5%)(직업)가 두드러지게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소극적인 대처와 대처 이후의 결과다. 괴롭힘 경험 이후 ‘특별한 대처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답한 사람이 10명 중 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그 이유로 ‘대처해도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아서(43.8%)’를 1순위로 꼽았다. 오직 26.0% 사람들만이 ‘상대방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괴롭힘에 대처한 이들 절반 이상(53.9%)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등 개인적 차원에서 그쳤다. 반면 ‘업무상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비난을 받았다’고 답변한 이들은 각각 31.1%, 29.5%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문제를 제기해봤자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거나 도리어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거의 매일 괴롭힘을 경험하는 이들 중 14.4%가 최근 1년간 자살을 계획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고 10.6%는 실제로 자살시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프 참고>

10명 중 6명 겪는 직장 내 괴롭힘
수치에 담긴 사연들

지난해 12월 ‘직장갑질 119’가 꼽은 하반기 괴롭힘 사례 50선을 보면 수치에 함축된 아픈 사연들이 속속 드러난다.

만취한 사내이사가 회사 굴착기를 몰아 사무실을 부시거나 대표이사가 회식 때마다 직원들에게 냉면 사발에 술을 섞어서 마시도록 강요하거나 서류 검토를 하던 중 팀장이 “왜 틀렸어?” 하며 커터 날을 꺼내 위협을 하는 등의 황당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직장인들이 상사에게 들은 말들은 그 자체로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피해자들을 그 때의 시간과 장소로 되돌려 놓았다.

“너 같은 **는 나랑 안 맞어. 그냥 꺼져 이 **야. 또라이, 정신병자 아니야?”

“네가 그만두는 날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털이 다 빠질 때까지 괴롭힐 것이다,”

“오빠 같아서 걱정 돼서 그러니 남자친구를 만나면 꼭 콘돔을 써라.”

“퇴사하면 블랙리스트 만들어서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뿌리겠다.”

“앞으로 출근 시, 퇴근 시, 휴무 시, 외근 시, 어딜 움직이든 간에 전부 대면 보고해!”

피해자들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행복한 제 인생에 상사가 용암을 들이붓고 다 태워버리는 느낌이다.”

“치가 떨리고 인격적인 모멸감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불면증에 매일 술을 마시고, 갑자기 심장이 막 뛰고, 어지럽고...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욕을 먹어야 하는지 불안한 마음이 제 영혼을 잠식해버린 기분입니다.”

“너무 원통하고 억울해서 업무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한 사회생활인 줄 알고 시키는 대로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존감이 떨어져 나 자신이 하찮게 느껴졌습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퇴사를 결정하기엔 억울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예상돼서 꾸욱, 꾸욱 참고 있었다.

“저는 불만조차 내비치지 않고 죽어라 일했습니다. 잘리게 되면 생활고로 시달리는 게 더 힘들 것 같아서...”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억울하게 그만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요?”

“퇴직금 정산 때문에 욕을 들어도 반박하지 않고 ‘네. 네’하고 대답만 했습니다.”

퇴사 이후에도 악몽은 계속됐다.

“퇴사 3년이 지났지만, 상사차와 같은 차를 보면 가슴이 뜁니다. 지금이야 농담처럼 쓰지만, 자살 충동과 살인 충동을 참는 6년의 세월이었습니다.”

“퇴사 후 전해 듣는 소식들과 당시 저에 대한 평가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

“출근하자마자 녹음기를 켜라.” 직장갑질 119 상담가들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선배(?)들은 입을 모아 조언한다. 상사의 입에서, 언제, 어디서 폭언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계속해서 관련 증거를 수집해놓으라는 뜻이다.

한국만 이렇다? 이유가 뭘까?

직장 내 괴롭힘은 비단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단체 생활에서 차별, 괴롭힘, 따돌림 등은 어느 정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된다”고 설명한다(직장 내 괴롭힘 실태와 제도적 규율방안, 2017).

다만 외국은 한국보다 노동자의 노동권, 인격권 침해에 대한 문제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으며, 이미 사회적 논의를 거쳐 법으로 안정화된 상태다. 앞서 1993년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을 규율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와 범위, 일상적 조치 등을 담아 조례(AFS, Victimization at Work Ordinance)를 제정했다. 이후 국제노동기구(ILO)는 2003년 ‘직장 내 폭력’을 ‘근로자가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또는 업무의 직접적 결과로서 폭력, 협박, 위해, 상처를 입게 되는 모든 행동과 사건’으로 정의하고 ‘직장 내 폭력에 관한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유럽은 2007년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들이 모여 ‘직장 폭력에 관한 유럽기본 협약’을 체결했다.

학계는 직장 내 괴롭힘의 주원인으로 ‘계급 사회’, ‘경쟁 사회’를 꼽는다. 김근주 부연구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 현상은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도 있지만, 전통적인 ‘사용-종속관계’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라며 “무한 경쟁 사회라는 큰 흐름 속에서 우리는 괴롭힘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학교와 군대, 직장, 생애 주기 모두에서 괴롭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88만원 세대> 우석훈 경제학 박사는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서 “박정희 이후 군대식 문화가 사회 전체적으로 강조됐고 공채를 통한 선후배 문화가 결합해 대기업에서 꽃폈다”고 말했다. 거꾸로 “직장 내 민주주의는 그 군대식 모델인 상명하복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그 이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사실상 ‘종이호랑이’가 될 여지가 크다. 또 근로기준법에서 벗어나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이에 직장갑질 119는 취업규칙이나 시행령 등에서 보완할 수 있도록 적용 대상자를 전체 노동자로 확대하는 등 모범 취업규칙을 만들어 공개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논의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직장 내 괴롭힘은 상사의 무능 또는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법이 현실에 적용되기 위해선 다양한 층위에서 괴롭힘에 대한 정의가 정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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