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안전관리비에 낙찰률 배제
올해부터 안전관리비에 낙찰률 배제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2.01 15:55
  • 수정 2019.02.01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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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집행방식·감사 등
보완될 점 많아

[커버스토리] 건설산업의 오늘 ⑤ 안전

건설업 안전관리비(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이 안전관리비가 올해부터 기존보다 25~30%가량 더 확보된다. 지난해 10월 5일 고용노동부가 낙찰률과 무관하게 안전관리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건설업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및 사용기준’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안전관리비는 추후정산 된다. 그래서 현장에선 종합건설사는 발주자의 눈치를, 전문건설사는 종합건설사의 눈치를 보며 ‘정해진 한도 내에서(사실은 그 보다 더 적은 범위 내에서) 허락을 받아 쓸 수 있는 비용’으로 통한다.

건설산업은 안전 분야에서 만년 꼴찌다. 2017년 건설노동자 2만 4,000여 명이 일을 하다 다쳤고 506명이 사망했다.

안전관리비는 이름처럼 건설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제 몫을 하고 있을까? 여기서 안전관리비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만을 한정해서 의미한다.

안전관리비, 낙찰가와 함께 내려갔다

안전관리비는 공사 입찰 과정에서 낙찰률이 반영돼왔다. 그래서 애초 예정 가격으로 계상되는 금액보다 낙찰률만큼 금액이 줄었다. 낙찰률이 80%라면 20%만큼 안전관리비가 주는 셈이다. 업체들의 가격 경쟁이 치열할수록 안전관리비가 줄어드는 폭도 커지는 구조다.

그나마 지난 2016년 공공시설 공사 입찰에 최저가낙찰제도가 폐지되고 종합심사낙찰제도(종심제)가 도입되면서 안전관리비가 줄어드는 규모가 소폭 줄기는 했다. 하지만 낙찰 가격 자체가 예정 가격보다 적게 정해지기 때문에 안전관리비가 주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또 가격뿐 아니라 공사수행능력, 사회적책임 등을 종합 평가해 낙찰자를 선정하자는 종합심사낙찰제도는 도입 이후 그 취지가 무색하게 점차 힘을 잃었다. 대한건설협회 자료에 따르면 종심제가 시범적으로 도입됐던 2014년과 2015년 낙찰률은 각각 81.6%, 82.8%로 같은 해 최저가낙찰률보다 6~7%p 높았지만, 본격 도입된 2016년 79.3%, 2017년 77.6%로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만큼 안전관리비도 줄어왔단 뜻이다. 올해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노동자들의 지상 위 일터,
건축물? 안전시설물?

하지만 안전관리비가 건설산업 안전을 위한 비용으로 제대로 집행되기 위해선 추가적인 보완이 불가피해 보인다.

먼저 안전관리비 사용처가 건설 현장 추락사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비계(飛階)에 다소 소극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노동자들의 이동 통로이자 작업장인 비계는 건설 현장의 핵심 안전시설로 꼽힌다. 비계의 안전성이 노동자의 안전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2017년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산업재해 현황분석을 보면 건설업 업무상 사고 사망자 가운데 가장 많은 228명이 떨어져 사망했고 절반 이상이 비계 등 가설건축구조물 등에서 추락했다. 떨어져 다친 이들도 8,600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비계는 ‘건축물’로 이해돼, 안전관리비를 쓸 수 있는 안전시설비에서 제외된다. 다만 기본적인 시설에 더해지는 발끝막이판, 추락방지용 안전방망, 안전대 걸이 설비 등은 포함된다. 대신 건설기술진흥법(건진법 제62조 제11항)에서 비계를 포함한 거푸집, 동바리 등 가설구조물의 구조적 안전성을 관계 전문가에게 확인토록 명시해뒀다. 건설기술진흥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의 방점을 각각 건축물과 노동자에 찍는다. 똑같이 건설 안전을 추구해도 그 결을 달리하는 셈이다.

그래서 비계의 법적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는 비계에 들어가는 비용을 좌우한다. 비계를 ‘노동자 안전을 위한 시설’로 규정한다면 보다 비계 시공에 들일 수 있는 비용을 적정 수준으로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 비계는 그렇지 않아도 싸게 건물을 지으려는 풍토 속에서 비용 절감의 우선순위가 돼왔다. 비계는 공사가 끝난 뒤 필요가 없다. 단, 해당 공사에 한해서만 일회용이다. 비계 임대업체는 비계를 재활용한다. 여기서 비계의 안전성은 다시 한번 취약해진다. 이학기 동아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생산단계는 물론 현장에서 가설 기자재를 1회 이상 사용했거나 사용하지 않은 경우라도 품질을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설기자재 특성상 장기간에 걸쳐 반복 사용되고, 과다한 하중이 작용해 얼마만큼 피로가 누적됐는지 파악할 방법도 없다”고 지적했다(가설기자재 품질관리제도의 비교·분석에 관한 연구,2016).

2016년 감사원이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9개 기관이 발주한 18개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가설기자재를 무작위로 수거해 성능시험을 한 결과 전체 116개 표본 중 63개(54.3%)의 표본이 당시 안전인증기준 및 자율안전기준에 미달했다. 특히 강관과 강관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이음 부재인 강관조인트는 수거 표본 모두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강관포인트 파손 시 비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비계의 취약성은 단지 기자재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비용을 줄이려 작업발판과 난간 등을 띄엄띄엄, 생략해 설치하거나 시간을 줄이려 볼트와 너트 등을 꽉 조이지 못한 경우도 있다. 비계 설치 노동자는 물론 설치 후 그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의 안전을 위협한다. 안전보건공단은 이를 ‘불량비계’라 명명했다. 안전보건공단은 소규모 현장(공사금액 20억 원 미만)에 발판과 통로, 안전난간 등을 사전 제작해 현장에서 일괄적으로 설치하는 시스템 비계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시스템비계는 국내 건설 현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강관비계보다 비용이 1.3~2배 정도 비싸다.(<표2>참고)

종합건설기업 관계자는 “비계 등 가설구조물은 돈과 시간이 드는 하나의 시공이다. 발주자가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데, 시공사 더러 무조건 안전하게 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산안법이든 건진법이든 관련 근거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안전관리비도 다단계 집행

안전관리비가 원도급자의 결정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집행되는 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안법은 발주자가 원도급자에게 공사 종류 및 금액을 기준으로 1.57%~3.43% 등 요율을 적용해 안전관리비를 주도록 한다. 이에 따라 원도급자는 안전관리비 사용 계획서를 작성하고 시공 전 발주자에게 제출해야 한다. 원도급자는 안전관리비 모두를 직접 사용할 수도 있고 하도급자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이처럼 안전관리비를 계획하고 결정하는 원도급자와 다르게 하도급자는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처지다. 원도급사에서 하도급사에게 떨어지는 금액이 적을뿐더러 이미 제한돼 있어, 현장의 필요를 반영하지 못한다.

대한전문건설협회(KOSCA) 기술관리부 손영 주임은 “고용부 고시를 보면 원도급자가 하도급자에게 안전관리비를 얼마 줘야 한다는 원칙이 없다. 원도급자에게 산안법 요율과 똑같이 안전관리비를 주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원도급자가 같은 요율로 안전관리비를 썼다간 소위 갑질을 당하거나 깎기기 일쑤”라며 “안전관리비를 먼저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원청이 안전관리비로 반영해주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해주지 않거나, 하도급자가 100만 원을 안전관리비로 사용하고 다음에 정산을 해도 원청이 80만 원만 인정해주기도 한다. 이때 20만 원은 자비로 처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 주임은 “이러한 처지는 원청도 마찬가지”라며 “원청도 발주자의 허락을 맡아야 추후에 안전관리비를 받을 수 있다. 사용 범위가 정해졌을 뿐 사실상 현장에선 눈치 보며 쓰는 비용”이라고 했다.

한편, 안전관리비 최종 수혜자인 건설노동자들의 입지는 더욱 더 좁은 상태다. 이승현 건설노조 노동안전담당 정책국장은 “건설노동자들은 안전관리비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 현장 소장에게 안전시설에 필요한 걸 요구를 해도, 남는 돈이 없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근본적으로 건설산업의 불법 하도급이 근절되지 않고, 노동자들이 천천히,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충분한 공사 기간이 확보되지 않는 한, 안전관리비가 조금 더 늘었다고 해서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제2의 대우건설 막으려면

금액이 늘어나는 만큼 안전관리비 감독도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산안법은 안전관리비 전용을 금지한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건설회사 관계자 8명으로부터 1년여 간 40차례에 걸쳐 1,050만 원 상당의 접대와 향응을 받은 혐의로 부산고용노동청 동부지청장을 구속했다. 접대비의 재원은 모두 안전관리비였다.

더욱 앞선 2017년 4월엔 <경향신문> 보도로 대우건설이 2015년 8월 완공한 광교 주상복합아파트 공사에서 안전관리비 등으로 비자금 1억 8,000만 원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광교 공사 현장은 타워크레인 전복 사고 등으로 3명이 사망하고 부실시공 논란으로 현장 소장이 자살하는 등 잡음이 많았다. 대우건설은 타워크레인 사고 후 현장 소장에게 부과된 벌금과 유족 등의 산재 신청을 막기 위한 사망 인부 조의금, 노동부 산업안전 근로감독관 매수 등에 사용됐다.

오인환 전 산업안전연구실 차장대우는 “조만간 ‘건설업 안전관리비 사용 투명성 강화방안 연구’ 최종보고서가 발표될 것”이라며 “노동조합은 물론 안전관리자 등 현장 관계자들과 전문가인터뷰를 통해 대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오 전 차장대우는 “그동안 현장 노동자들은 안전관리비와 관련된 정보 자체를 받지 못했다. 건설노동자 특성상 일용직 근로자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현장 노동자들이 안전관리비 사용 내역을 쉽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해서 자율적인 감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주요 골자”라고 설명했다. 해당 연구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 2017년 국정감사에서 대우건설 등 안전관리비 부당 집행 건에 대한 시정 및 처리 요구를 받은 이후 진행한 용역 연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