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편의점 블루스
[박완순의 얼글] 편의점 블루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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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편의점은 블루스다. 동시에 블루스 무대다. 대한민국 편의점 점포 4만여 개 시대. ‘딩동’ 소리가 나는 편의점 유리문을 열고 오늘도 나는 그 블루스 스테이지에 입장한다. 내가 애용하는 블루스 스테이지는 두 평 정도의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이다. 들어선 사람이 세 명 정도만 돼도 스테이지는 비좁다. 가뜩이나 진열된 물건은 빽빽해 요즘 같이 두꺼운 외투를 입은 겨울이라면 정원 초초초과다.

다행히도 스테이지 위에는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앞선 입장객은 블루스 음악에 너무 심취했는지 제 몸도 못 가눈다. 그런 손님은 대부분 편의점 알바생에게 처치곤란이다. 나보다 미리 온 그는 소주 두 병을 계산대 위에 놓고 비틀거리는 스텝을 밟으며 알바생을 곤경에 빠뜨리는 말을 쏟아낸다.

“야 인마, 내가, 딸꾹, 너 외국인이라, 딸꾹, 못 알아듣는 거지. 딸꾹, 아니면 못, 딸꾹, 알아듣는 척 하는, 딸꾹, 거냐!”

그의 딸꾹질 소리는 외국인 편의점 알바생의 호흡을 가쁘게 한다. 불안에 떠는 눈빛, 어찌 대처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손. 알바생의 그러한 몸짓은 그를 더 자극한다. 마침내 그는 소리를 지른다. 나는 그를 블루스 스테이지 밖으로 내보낸다. 그는 그 와중에 소주 두 병을 손에 꼭 쥐고 나를 바라보며 한 마디 한다.

“같이 한 잔 할래?”

편의점의 슬픈 블루스가 잠시 멈춘다. 그래도 한 번 블루스 무대인 편의점은 영원히 블루스 무대다. 강렬한 춤사위가 일고 나면 여운이 진하게 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편의점은 태생적으로 블루스 기운이 넘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편의점이 4만여 개나 되는 만큼 편의점 알바 노동자의 수도 엄청나다. 편의점 알바 노동자가 감내해야할 노동의 무게 역시 어마무시하다. 때가 되면 편의점 물품을 실어 날라야 하고 진열해야 한다. 손님을 상대하며 감정을 소비해야 한다. 요즘에는 택배도 보내주고 받아줘야 한다. 편의점 알바생은 노동의 무게에 고개를 짓눌리고 휘청거리는 다리로 블루스를 춘다. 아니, 계속 추고 있다.

무대 위에서 블루스를 생각하며 2+1 먹거리를 쳐다보고 있을 때 ‘띵’하는 맑고 고운 전자레인지 알림 소리가 들린다. ‘띵’과 함께 블루스는 다시 시작된다. 어느새 들어와 있던 한 청년이 편의점 도시락을 데우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 이 곳에서 편의점 먹거리를 섭취하는 젊은이는 누구인가.

돈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이다. 편의점 도시락 내용물은 다른 음식에 비해 건강하지 않다. 전자레인지에 편의점 도시락을 돌리면 플라스틱 용기도 일그러진다. 환경호르몬이 나온다. 그래도 먹는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최저의 삶에 맞춰진 이들의 음식이다. 다시 한 번 ‘띵’ 그 젊은이는 전자레인지를 열고 일그러진 편의점 도시락을 주섬주섬 챙긴다. 주섬주섬이라는 박자에 맞춰 블루스를 추며 편의점 밖으로 나간다.

나 또한 2+1 박자에 맞춰 계산대로 가 계산을 하고 ‘딩동’ 소리가 나는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간다. 블루스는 끝났을까. 아니다. 편의점이 비추는 빛과 밤 골목의 어둠이 만나는 그 경계까지 블루스 타임은 이어진다. 폐지를 줍는 노부부가 꾸역꾸역 리어카를 밀고 편의점 불빛 안으로 들어온다. 폐지 박스를 주우며 노부부의 블루스 타임이 시작된다.

그 순간 만취 손님, 편의점 알바생, 편의점 도시락을 산 젊은이, 폐지를 수거하는 노부부의 삶이 겹쳐 보인다. 이렇게 편의점은 대한민국 최저기준의 삶들이 짠하게 섞여있다.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이라는 스테이지 위에서 힘겹게 블루스를 추고 있다.

편의점이 비추는 불빛, 블루스 조명을 얼른 벗어나 컴컴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웬걸 아직 편의점 블루스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는 경계에 아까 그 만취 손님이 비틀비틀 스텝을 밟고 있다. 갈지자를 그리며 여기까지 밖에 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옆을 지나는 순간, 비틀거리던 그가 정자세로 전화를 받는다. 상대가 앞에 있지 않는데도 고개를 연신 숙이며 딸꾹질은 멈춘 채 최대한 혀가 덜 꼬부라져 보이려 노력하는 말투로.

“네, 사장님 잘 들어가셨죠? 네, 네, 네. 아, 그럼요. 내일 바로 가서 해놓겠습니다.”

‘딩동, 딸꾹, 띵, 2+1, 주섬주섬, 꾸역꾸역, 그리고 네, 네, 네‘가 어우러진 박자 위에 편의점을 드나드는 모두들 블루스를 추고 있다. 편의점 블루스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현재진행형이다. 4만여 개의 편의점에서 울려 퍼지는 블루스가 대한민국을 덮고 있다. 애잔한 블루스 다음 선곡은 무엇일까? 그보다는 조금 밝은 노래였으면 하는 것은 무리한 소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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