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모의 우공이산] 연말정산 유감
[박석모의 우공이산] 연말정산 유감
  • 박석모
  • 승인 2019.02.25 22:03
  • 수정 2019.02.25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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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모의 우공이산
시련도 많고 좌절도 많지만, 희망이 있기에 오늘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늘 연말정산 명세서를 받으신 분 많으시죠? 저도 명세서를 받았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연말정산은 ‘13월의 월급’이라고 불립니다. 연말정산을 통해 지난 1년 동안 냈던 세금 중 일부를 돌려받으면 뭔가 특별상여금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돈 싫어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물론 저도 좋아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돈이 거저 생긴다면 더 좋겠죠.

그런데, 연말정산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말정산을 통해 환급받는다고 해도 거저 생긴 건 아닙니다. 연말정산을 통해 환급을 받는다면 지난 한 해 동안 자기가 냈던 세금이 원래 냈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 차액만큼을 돌려받는 것이죠. 덜 냈다면 추가로 더 내야 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국가가 세금을 부과할 때 기준으로 삼는 소득이 한 해 전의 소득이라는 데 있습니다. 소득이 변함없다면 매해 같은 세금을 내게 될 테니 연말정산이 필요 없겠죠. 하지만 소득은 매해 바뀌고,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도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연말정산을 통해 보정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야 다들 아시는 이야기일 텐데요, 앞에서 연말정산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 건 지금 내는 세금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 중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책 같은 몇 가지 물품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상품에는 부가가치세라는 게 붙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소득세인데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내는 소득세는 근로소득세입니다. 급여명세서 받을 때 공제 항목에 근로소득세 얼마라고 찍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것 같아도 연말정산을 하면서 이 항목 저 항목 공제하고 나면, 세금이 면제되는 기준점, 즉 면세점 아래로 소득이 내려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 경우에는 그동안 냈던 근로소득세를 환급받게 되는 거죠.

몇 년 전 기준이긴 합니다만,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중에서 면세점 이하의 소득을 벌기 때문에 사실상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노동자 비중이 거의 50%에 육박한다는 보도가 난 적 있습니다. 거의 두 명에 한 명꼴로 세금(근로소득세)을 내지 않는다는 거죠.

물론 소득이 낮을수록 낮은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세금을 내지 않는 노동자가 절반에 이르는 체계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가재정이 흑자여서, 즉 세금을 너무 많이 징수했기 때문에 면세점을 높게 잡아서 세금 안 내는 노동자를 늘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재정흑자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금을 너무 많이 거뒀기 때문이 아니라 세금을 너무 안 썼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게 함정입니다. 우리나라 재정이 흑자라는데, 제 생각엔 세금을 너무 안 썼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안 했다는 겁니다!

국가가 할 일을 안 하면 그 부담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우리나라 노동자 가구가 가장 많이 지출하는 게 자녀교육과 의료, 내 집 마련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세금을 많이 거둬서 교육비나 의료비가 따로 들지 않을 만큼 체계를 정비한다면 노동자들이 돈 좀 더 벌자고 자기 몸 망쳐가며 특근 경쟁하는 건 사라지지 않을까요?

물론 이건 주류경제학에서는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이긴 합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아무도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국가(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할수록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걸 ‘정부의 실패’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그러니 국가는 아무 것도(!) 안 할수록 좋다는 겁니다.

그런 주류경제학의 믿음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지난 20여 년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남을 밟지 않으면 내가 밟히는 전쟁터가 그 결과였습니다.

저는 시장에 국가가 더 많이 개입하고 더 많이 규제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의 힘이 커질수록 부패가 생길 가능성도 커지겠습니다만, 그건 보완할 다른 장치를 고민해야 할 문제겠죠. 속된 말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국가가 제대로 일하려면, 시장을 규제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하려면 재원이 필요합니다. 재원은 결국 세금에서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 저는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국민이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제대로’ 공동체의 관리자가 되어야겠지요.

연말정산 이야기하다 너무 멀리까지 왔네요. 어쨌든 저는 국가가 제대로 일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세금을 더 많이 거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면세점을 아예 없애거나 가능하면 낮춰서 더 많은 사람이 세금을 내게 하고, 그렇게 거둔 세금으로 국민이 더 많은 혜택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렵다면, 지금부터 하나씩이라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