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둘리와 우리
[박완순의 얼글] 둘리와 우리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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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둘리는 주민등록증이 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 중 한 명이 된 둘리. 주민등록상 둘리는 83년생이다. 말썽 피우며 장난을 일삼아 고길동 아저씨를 곤혹에 빠뜨리는 둘리는 이제 우리나라 나이 셈법 상 서른일곱이다.

서른일곱 둘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릴 때처럼 엉뚱한 모습으로 삶에 웃음을 전달하며 유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봐왔던 어린 둘리가 어떻게 컸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만화 <송곳>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최규석 작가의 첫 단행본인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여기에서 둘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한다. 둘리는 프레스 작업을 하다 손가락을 절단 당한다. 더 이상 손에서는 마법이 나가지 않는다. ‘호잇’하고 마법을 부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둘리는 산업재해로 그의 존재를 잃었다.

물론 만화적 상상력이기에 또 다른 상상의 서사를 불러온다면 둘리는 비정규직이 아니고 산업재해로 손가락을 잃지 않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둘리의 삶이 막연한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가 나온 2009년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1/3을 훨씬 상회했다. 또한, 사망사고만인율(1년 한해동안 근로자 수 1만 명당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사망자수)뿐만 아니라 산업재해율까지 OECD 국가 중 최상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어찌 보면 만화 속 비정규직 둘리의 삶은 대한민국의 민낯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둘리보다 젊은 세대의 삶은 어떨까. TV속 8살이었던 둘리의 모습을 보며 자라왔던 세대. 2019년 현재 20대 중반과 30대 초반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삶을 단정하지는 못하지만 몇 가지 사실들은 숫자로 나타난다.

절대 같은 말을 반복하는 문단이 아니다. 최신 통계청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는 600만 명을 육박한다. 전체 1900만 임금노동자 중 1/3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 중 청년의 비율은 절반을 훌쩍 넘는다. 우리나라 사망사고만인율은 미국, 일본, 독일 등 OECD 주요국가 대비 2~3배 높은 수준으로 최상위권이다.

2015년 구의역 참사로 목숨을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 김 군, 당시 19세. 압사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 군, 당시 18세. CJ대한통운 택배 상하차 업무를 하다 죽은 노동자, 20대의 나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당시 24세. 2019년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로 사망한 3명의 노동자, 24세, 24세, 31세.

지금 20대 중반과 30대 초반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제 30대 후반이 된 비정규직 둘리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확언하기 힘들다. 이런 모습이 계속 된다면 더더더 어린 세대 즉, 대한민국 미래 세대의 일상에 밝은 전망을 더더더 할 수 없다.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 공룡 / 호이 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 /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 공룡 / 호이 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라는 노래가 “비정규 둘리는 손 잃은 아기 공룡 / 호이 호이 둘리는 비정규 우리 미래 / 비정규 둘리는 손 잃은 아기 공룡 / 호이 호이 둘리는 불쌍한 우리 미래”로 바꿔 부르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게 무리한 소망일까. 무리한 소망이라면 무리해서라도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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