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프리킥] 말하는 북
[박종훈의 프리킥] 말하는 북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9.03.04 17:02
  • 수정 2019.03.04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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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프리킥] 점심시간 야구 얘기가 듣기 싫어 축구를 좋아하기로 한 불경스런 축구 팬이 날리는 세상을 향한 자유로운 발길질

기자들의 일은 필연적으로 언어와 관계가 깊습니다. 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며, 각종 자료를 읽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리한 내용을 한 편의 글로 엮어내는 게 기자들의 일입니다.

타인의 말을 듣고 옮기는 것은 늘상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장시간에 걸쳐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완벽하게 암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기억을 보조하는 도구를 씁니다. 수첩에 메모를 하거나 들고 다니는 컴퓨터라든지, 컴퓨터 역할을 해 주는 다양한 기기를 활용해 말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받아 적기도 합니다. 종종 이야기를 그대로 녹음하거나 영상을 촬영해 놓기도 합니다.

녹음된 이야기를 문자로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장시간 인터뷰 녹취 정리에 지친 기자들은 그래서 ‘말을 글로 옮기는 기기를 발명하면 노벨상을 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뭐 그렇게 처음 보는 기술은 아닐 겁니다. 기술의 발달로 이른바 ‘음성인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장 업무에 활용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나오는 푸념이겠지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정리한 내용도 완벽하긴 어렵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에 없었던 이에게 녹음 파일을 건네주고, 들리는 대로 옮겨 적으라고 주문하면 결과물의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정보나 지식의 수준이 다르고, 또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말이든 글이든, 이른바 언어란 한 군데 가만 머물러 있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일상에서 타인에게 의미를 전달한다는 행위야 사실 그 기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인간은 도대체 언제부터 언어라는 걸 가졌을까? 이 물음의 답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은 기원전 4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던 수메르 사람들이 점토판에 남긴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도 고고학의 발전에 따라 좀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말은 글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쓰였을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문자 이전 인류의 언어란 정말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일 것입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멀리 떨어진 이에게 빠르게 의미를 전달하는 행위 역시 중요합니다. 학창시절 흔히 하던 게임 중에 ‘말 옮기기 놀이’가 있습니다.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문장을 옆 사람이나 뒷 사람에게 전달하여, 여러 사람들이 말을 옮기다 보면 종국에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게임입니다. 전혀 생뚱맞은 결과가 나오면 다들 배꼽을 잡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만약에 멀리 떨어진 전쟁터에 작전 명령을 지시하는 일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곳의 상황은 정확하게 어떠한지, 그리고 적확한 지시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역사 속 유명한 영웅들에게도 난제였습니다.

근대 이전에는 그나마 가장 확실한 방법이 직접 사람을 보내어 명령을 구두로 전달하거나, 지시사항이 적힌 문서를 건네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방법은 메신저가 현장에 도착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중간에 유감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경우, 가령 전령이 적군에게 붙잡히거나 하는 경우,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봉화나 봉수대 같은 것을 떠올리신 분들은 역사에 좀 관심이 있는 분들일 겁니다. 높은 산 봉우리마다 멀리서도 눈에 띌 수 있도록 연기나 불빛을 이용해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마치 말 옮기기 놀이처럼 연기 신호는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전달되고, 멀리 떨어진 수도에서도 적군의 침입 사실을 비교적 빠른 시간 내 알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신호체계는 아주 단순한 정보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약속한 최소한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시설을 짓고, 관리하는 이들을 두어야 하며, 불을 지필 수 있는 물자를 비축해 놓아야 합니다. 산꼭대기에 말이지요. 날이 궂어서 불이 잘 안 붙거나, 시야가 흐려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어떨까요? 요새 표현으로 ‘가성비’가 좋은 체계는 아닐 겁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종종, 심지어 고대나 중세의 전쟁터가 아니라 현대의 전장에서도 정보 전달보다 군대의 진격이 더 빨랐던 사례가 종종 나타납니다. 로마 제국의 유능한 장군이었던 카이사르의 군대는 노상 전령보다 본대의 진격이 빨랐다고 합니다. 1967년 있었던 3차 중동전쟁은 이른바 ‘6일 전쟁’이라고 불렸는데, 이스라엘 군의 전광석화 같은 진격에 일패도지한 이집트 군은 통신망마저 붕괴되어, 전황을 알 수 없었던 지원군이 이동 중 궤멸당하기도 했습니다.

1844년에는 미국에서 전신이 처음 개통됩니다. 길고 짧은 신호의 조합으로 만든 이 의미전달체계는 고안한 이의 이름을 따서 지금도 ‘모스 부호’라고 불립니다.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전신망이 설치된 것은 1861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신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의미전달체계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제국 열강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식민지 정책이 추진되고 있을 무렵에 말이지요. 철도를 통해 기관차가 다니고, 증기기관선이 맹그로브가 울창한 내륙의 강을 달리던 시절에도 말이지요.

모스 부호가 발명될 무렵, 아프리카 니제르 근처를 항해하던 윌리엄 앨런 선장은 기묘한 기록을 남겨 놓습니다. 아프리카인 항해사가 어느날 새벽 귀신에 홀린 듯 갑판에 나와 저 멀리 아련하게 들리는 북소리에 넋을 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북소리를 통해 아들이 갑판 위로 나오라고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와 같은 이야기는 서구인들의 눈에 신비롭고 이국적인, 그리고 다소 미신적인 것으로 비칩니다.

1900년 즈음부터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지냈던 영국의 선교사 존 캐링턴은 40여 년 동안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1949년 ‘아프리카의 말하는 북’이란 짤막한 책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런 것이 그냥 신비로운 경험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북소리가 일종의 언어로 기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안개 낀 정글 속에서도 이 북소리는 9~11킬로미터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며, 봉화가 이어지는 것처럼 중간중간 메시지를 전달해 나가면 순식간에 160킬로미터 이상 소식이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기를 내뿜는 괴물에 타고 있는 이방인들에 대한 소식은 정글 곳곳에 흩어져 사는 각 원주민 부족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의 눈에 비친 이와 같은 의미전달체계는 그들을 환영하는 세리머니나 공격을 준비하는 의식으로 비쳤을지 모르지요.

좀 더 ‘말하는 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보자면, 북소리의 높낮이 조합을 통해 의미의 단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중국어를 비롯해 아직까지 몇몇 언어에 남아 있는 성조의 변화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쉬울 거 같습니다. 타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라는 걸 감안하면, 자음을 제거하고 모음만을 가지고 조합한 단어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거라고 합니다. 부모들이 아기의 옹알거리는 발음을 용케 알아듣는 것처럼, 의외로 꽤 잘 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보가 잘못 전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간단한 내용도 길고 복잡한 수사를 덧붙여 설명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시체’라는 단어를 전달할 때는 ‘땅 위의 흙덩어리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장황해 보이는 수사는 그냥 폼을 잡기 위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혼동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형구들은 미리 약속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잘 안 들리는 소리가 있더라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구(口)어와 부호 사이에 문(文)어가 매개하는 모스 부호와는 달리, 기록을 위한 문자 체계가 없었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북소리는 그네들의 말과 상당히 닮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을 치는 것은 오래 훈련된 특별한 사람만이 가능했지만, 북소리를 알아듣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장황하게(?) 전령이니 봉화니, 전신에서부터 아프리카의 말하는 북까지 나열했는데, 결국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정론직필’하겠다고 약속하든지, 좀 더 영양가 있는 메시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예시들을 들 수 없냐고 질책하신다면 할 말(?)이 없을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