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태클’이 제조업공동화 부추긴다”
“‘정부 태클’이 제조업공동화 부추긴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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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텍, 지방 정부의 적극적 지원책에 국내 남기로

“비용 때문에 나가려고 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죠. 지방으로 갈 것인지 중국으로 갈 건지, 아니면 공장가동을 멈추든지… 물론 정부도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각종 규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걸 보면 오히려 정부가 기업 유출을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닙니까”


공장설립 규제 때문에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려고 했던 화인텍의 한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화인텍은 LNG운반선의 핵심소재인 단열판넬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으로, 국내 조선업계 운반선 수주물량이 크게 늘어나자 생산시설 확장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추가 생산라인을 확보해야 했지만 안성시에 배정됐던 공장배정물량을 이미 다 써버린 상황. 시청, 도청에 어려움을 호소해도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했던 화인텍은 지방이전도 마땅치 않자 중국행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마침 지난해 1월 상공회의소 신년회에 참석했다가 공장증설을 건의하게 됐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우여곡절 끝에 중국행 열차는 타지 않는 행운(?)을 얻었다.

 

지방경제 흔들 뻔 한 중국행
화인텍은 수도권정비규제법의 적용을 받는 경기도 안성에 위치하고 있어 공장증설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경기도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시행되는 제2차 수도권정비계획에 따라 152만평의 공장조성입지면적을 받았는데, 이 중 안성시에 16만3천평이 배정됐다. 하지만 수도권정비계획이 끝나는 2006년이 되기도 전에 토지는 벌써 소진된 상태로, 안산시청 도시개발사업소에 따르면 10만평은 지역단지 활성화를 위해 쓰였고, 나머지 6만3천평은 산업단지 조성에 들어갔다.


경기도 내에서 공장 증설이 힘든 것을 알게 된 화인텍은 작년 3월 경남통영의 1만3천평 부지에 공장을 준공한 후 생산시설을 이전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통영에 보내려고 했던 현장직원 30명 중 핵심인재 5명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모두 가지 않겠다’고 답했고, 결국 중국으로 이전할 것을 검토하게 됐다.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화인텍 관계자는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중소기업들을 지원해준다는 대책을 매일같이 쏟아내지만 각종 규제로 장벽이 너무 높고, 지방이전 기업의 세제혜택 지원은 현실성이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화인텍은 안성에 본사를 둔 회사 중 가장 큰 기업이다. 이 회사는 독자적인 기술개발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등 안성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는 중견기업이다. 특히 안성시는 타 수도권에 비해 경제적 자립도가 40%에 그쳐 경쟁력 있는 기업의 이전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안산시청 도시개발사업소 홍순임 계장은 “화인텍 같이 대기업 반열에 오를 정도의 중소기업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면 안성시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깐깐한’ 규제가 공장이전 부추겨
중국이나 동남아로 발길을 돌리는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서 떠나는 것만이 아니었다. 화인텍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까다로운 절차나 규제로 인해 투자여건이 마련되지 않자 ‘국내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나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금력도 되고, 기술력도 갖추고 있는 업체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능력이 있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경기도청 투자진흥국의 분석에 따르면 화인텍 공장증설시 170여명의 신규고용 효과와 3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액을 올릴 것으로 나타났다.


“적극적인 투자와 성장 유도가 중요한데, 요즘 나오는 정부의 새로운 시책을 보고 있으면 ‘웃기다’는 생각만 들어요” 화인텍 관계자는 매년 초 쏟아지고 있는 중소기업지원대책을 보면서 규제가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장을 짓는데 각종 인허가 절차가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까지 걸리는 바람에 웬만한 중소기업들은 서류준비에 허덕이다 지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 또한 작은 회사에 환경관리자, 방화관리자, 안전관리자 등 무려 12가지 부문에 관리자를 배치하게 해 일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과 최복희 과장은 “난개발이나 환경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지만, 중소기업을 지원해준다는 대책에 온갖 규제가 넘쳐난다”며 “이들이 숨쉴 수 있는 최소한의 숨구멍은 트이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기업이탈 막는 행정서비스, 정책 마련해야 
화인텍의 경우, 도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같은 지역의 중소기업들은 공장 증설에 앞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모 중소기업 사장은 “우리도 공장을 더 지을 방법 좀 알려 달라”고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또, 외국인 임대공장 부지 조성계획 때문에 기존에 공장을 운영하던 이들이 투자가 힘들어 사업을 포기하거나 해외로 이전을 추진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고 했다. 화인텍도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1~2년 안에 공장을 또 증설해야할 것을 생각하면 갑갑한 심정은 마찬가지다.


정부가 연일 쏟아내는 각종 취득세, 등록세의 인센티브 지급, 세제감면 혜택 등은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책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범하고 있는 큰 오류는 ‘당사자들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조립에서 첨단장비에 이르는 전 분야에 걸쳐 빠른 속도로 국내 기업의 해외이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대책은 실효성을 얻고 있지 못하고 있다.
행정서비스와 정책의 부재 속에서 국내 유망 기업의 유출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