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노크노크] 일본에서 만난 우주소년 아톰
[이동희의 노크노크] 일본에서 만난 우주소년 아톰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3.08 11:20
  • 수정 2019.03.09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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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얼마 전 올해로 3년째 일본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도쿄에 다녀왔다. 친구 집과 가장 가까운 역인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駅)역에 내리자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 저 멀리
라라라― 힘차게 날으는
우주소년 아톰 용감히 싸워라

다카다노바바역에서는 열차 안내 방송으로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를 사용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경우 주제가를 국내에서 따로 창작곡으로 만드는 경우와 일본곡을 번안해서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아톰은 번안곡으로 한국과 일본의 주제가가 같다) 일본에는 만화가 문화적·산업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렇게 특정 장소나 지역에 갔을 때 만화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이 많다. 일본의 만화사랑이 전철역이라는 일상에서도 드러나는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다카다노바바는 우주소년 아톰(일본원작 ‘철완 아톰’)이 태어난 장소로, 다카다노바바역은 아톰과 아톰을 세상에 내놓은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를 기념해 열차 안내 방송을 아톰 주제가로 바꿨다. 다카다노바바역 밖으로 나가면 데즈카 오사무가 만든 만화 캐릭터로 가득 채운 벽화도 만나볼 수 있다.

아톰은 2003년 4월 7일(만화에서 2003년은 50년 뒤 미래로 나온다) 신주쿠 다카다노바바에 있는 과학청에서 태어났다. 과학청의 천재 과학자 덴마 박사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고자 아들과 똑같이 생긴 로봇 아톰을 만든다. 아톰은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똑똑한 로봇이었지만,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어린아이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덴마 박사는 아톰이 아들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며 아톰을 서커스단에 팔아버린다.

그런 아톰을 딱하게 여기는 이가 있었다. 바로 로봇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믿는 오차노미즈 박사였다. 오차노미즈 박사는 아톰에게 가족이 되어 주고, 이후 아톰은 악당을 물리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정의의 로봇으로 다시 태어난다.

데즈카 오사무가 아톰을 세상에 내놓은 건 1952년 만화잡지 <소년>을 통해서다. 1963년에는 만화영화로 만들어 방영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에서 아톰이 받는 사랑은 여전하다. 2003년 일본에서는 아톰이 태어난 해를 맞아 아톰 열풍이 불기도 했다. 다카다노바바역에서 아톰 주제가를 안내 방송으로 사용하고, 역 밖 벽화가 그려진 것도 아톰의 생일을 기념한 2003년이었다. 2003년 4월 7일에는 아톰에게 오차노미즈 박사를 세대주로 한 특별주민권이 주어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만화 캐릭터에게 특별주민권이 배부된 것은 이때가 최초였으니 아톰이 받은 사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톰은 착하고 정의감 강한 로봇이었지만, 덴마 박사에게 버려졌던 과거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상처받기도 했다. 만화 후반에는 로봇이라는 이유로 노동 착취를 당하는 모습도 나온다. 평론가들은 이 시기의 아톰이 귀여운 로봇 캐릭터가 아닌 노동자의 캐릭터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아톰은 노동 착취 끝에 버려지는 로봇들의 편에 서서 로봇들과 함께 인간에게 항거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인간을 위해 대신 죽음을 맞이해 지구를 지켜내는 고귀한 희생을 실현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싸웠던 아톰.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보다 몇 배나 큰 악당들을 무찌르며 정의를 지키는 귀여운 로봇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삶을 헤쳐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은 만화와 달랐으면 좋겠다. 고귀한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고귀했으면 한다. 사소한 궁금증으로 찾아봤던 아톰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이제는 아톰의 크고 반짝이는 눈을 봐도 마냥 예쁘다고만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카다노바바역 밖 데즈카 오사무 작품들을 담은 벽화.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진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벽화가 또 있다. 이 내용으로 칼럼을 쓸 줄 알았다면 좀 더 가까이서 찍었을 텐데 아쉽다. 아톰 주제가는 알아도 아톰을 본 기억은 없어 '서사에 근거한 캐릭터 디자인 연구, 유희나' 자료를 참고했다.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다카다노바바역 밖 데즈카 오사무 작품들을 담은 벽화.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진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벽화가 또 있다. 이 내용으로 칼럼을 쓸 줄 알았다면 좀 더 가까이서 찍었을 텐데 아쉽다. 아톰 주제가는 알아도 아톰을 본 기억은 없어 '서사에 근거한 캐릭터 디자인 연구, 유희나' 자료를 참고했다.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