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비관적인가?
한국 경제, 비관적인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19.03.11 12:15
  • 수정 2019.03.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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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에서 보이는 빨간불

[커버스토리] 변화의 시기, 한국 경제와 일자리①

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월 13일 우리나라 경기 침체가 만성적이라고 전제한 뒤 그 원인으로 내수 부진과 수출 위축을 지목했다. 같은 날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분석을 보면 매출에 대한 제조업 기업들의 전망은 어두웠다. 기업경기실사지수는 기업이 느끼는 체감경기를 수치화한 것으로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경기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걸 뜻한다. 2019년 1분기 제조업 기업들의 매출에 대한 기업경기실사지수는 85였다. 매출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기업보다 나빠질 거라고 비관한 기업이 더 많았다는 말이다.

시장만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지역 가계 부채가 지난 7년간 90조 원 증가했다(2010년 195조 원. 2017년 285조 원)는 서울연구원의 발표가 지난 1월 4일 나왔다. 서울 시민 10명 중 6명(63%)이 원금 및 이자 상환에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가계 부채 증가가 가계 가처분소득 축소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가계 주머니 사정 역시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이처럼 연초부터 연이어 나온 경제 관련 지표들을 살펴보면 한국 경제는 위기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 한 언론은 ‘한국 경제가 불안하지 않은 적이 있었겠는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현재를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 비교한다. 단순 수사라고 치부하기에는 수치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 경제는 정말 위기일까?

비관적 시장 문제, 내수 부진 해결에서 시작해야
가계소득 감소가 내수 축소 원인

“국내총생산(GDP)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면 자연스레 가계소비 비중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건이 과거보다 잘 안 팔리는 상황이다. 여태까지는 수출로 내수시장 문제를 해결해온 측면이 있는데, 지금은 이조차도 어렵다.”

(조영철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

가계소득 위축은 곧 내수시장 축소로 이어진다는 게 조영철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논문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평가’에서 한국 경제 내수시장 위축 문제의 주요 원인을 ‘지난 수십 년간 경제성장률이 성장한 것과 비교해 가계소득 증가는 더뎠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6년 70.8%에서 2016년 62.1%로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 비율은 같은 기간 15.7%에서 24.1%로 늘었다. 조영철 교수는 경제성장률에 비해서 가계소득 증가율은 낮아지고 기업소득 증가율은 오르는 현상이 내수시장 위축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가계소비 감소율 현황을 들여다보면 이 설명에 설득력이 실린다.

2016년 국내총생산에서 가계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46.4%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인 48.6%보다 낮았다. 현재를 외환위기와 비교한 한 언론사의 평가가 가계소비 영역에서는 일정 부분 실체에 부합하는 셈이다.

수치로 확인되는 자영업자 문제

“제대로 된 직장에서 밀려나면 갈 데가 없기 때문에 치킨집을 하는 것이다.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치킨집 사장이 된다.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자본가로 만들어놓고 너희도 자본가와 똑같이 행동하라니까 불만이 나온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가계소득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이라는 영역으로 분리해서 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영철 교수에 따르면 자영업자 사업소득은 200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정체 상태에 가깝다. 그는 ‘가계소득 증가율이 둔화한 주요 이유는 근로소득 증가 둔화보다도 자영업자의 사업소득 증가율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는 일각의 문제제기는 우리나라 가계소득 하락의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일면 타당한 부분이 있다. 다만, 그 문제 해결의 방안이 최저임금 동결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소득 양극화 문제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수많은 격차들과 양극화
노동자 간 임금 격차 문제

“자본이 가져가는 몫과 노동이 가져가는 몫의 차이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임금을 받는 노동자 그룹 내에서도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전반적인 노동소득 분배율 하락을 유도하는 원인이다.”

(김태일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지난해 12월 10일 나온 한국은행 보고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책 대응: 해외 사례 및 시사점’을 보면 우리나라 상·하위 10% 임금 근로소득 배율은 4.5배였다. 소득 기준 하위 10% 임금 노동자가 근로소득으로 100만 원을 가져갈 때 상위 10%는 450만 원을 가져간다는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3.41배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임금 소득 양극화가 상대적으로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소득 양극화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지속적으로 심화되는 보편적 구조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세계상위소득데이터베이스(The World Top Income Database)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면 1995년 우리나라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29.2%였다. 같은 시기 미국(40.5%), 일본(34%) 등 대부분 조사 대상국보다 상위 10%에 대한 소득 집중 현상이 낮았다. 외환위기 이후부터 상황이 바뀌는데, 2012년 해당 수치가 44.9%로 상승한다. 33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미국(47.8%) 다음으로 높았다.

취업률과 고용률 두고 제기되는 고용위기론

“취업률이 떨어지는 현상을 장기 재정 전망하는 연구자들은 오래 전부터 예측해왔다.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 경제성과를 평가하는 유일한 지표로 보기는 적절하지 않다. 다만 고용률이 하락 추세인 것은 맞고 실업률도 올라가고 있어 일자리 정부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고용 실적으로는 초라하다.”

(조영철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

낮은 취업률은 한국 경제위기론을 논할 때마다 거론되는 지표다. 2017년 대학 이상 졸업자의 취업률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해 2017년 대학교 이상 졸업자의 취업률이 66.2%로 현행 방식의 조사가 시행된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고 발표했다. 최근 4년간 해당 수치 추이를 보면 2014년 67.0%, 2015년 67.5%, 2016년 67.7%, 2017년 66.2%였다. 보수언론은 2018년 이후 취업자 수 증가 둔화를 두고 고용위기라는 굴레를 씌웠다.

다만 고용위기론과 관련해 다른 시각을 제시해줄 만한 지표도 있다. 2018년 9월 고용률은 61.2%로 61.4%였던 2017년 9월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61%를 기록했던 2016년 9월보다는 높은 수준이었다. 이 같은 점을 들어 조영철 교수는 “현재 상황이 고용 위기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일자리 정부’를 자처할 만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중요시했다. 2017년 대선 당시에는 일자리 81만 개 창출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된 직후에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한다고 해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통령부터 일자리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만큼 일자리 문제를 중요시하던 문재인 정부였던 만큼, 지난해 고용상황을 둘러싸고 보수언론과 야당의 ‘고용참사’라는 공격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두고 매일 일자리 현황을 점검했는데도 불구하고 월간 창출된 신규 일자리가 최악으로 떨어졌으니,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공격하는 데에는 최적의 조건이 된 셈이다.

가장 먼저 타깃이 된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7년과 2018년에 각각 다음 해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바 있다. 언론에는 거의 1년 내내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 경제 상황은 돌아보지 않고 대선공약에 맞추기 위해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끌어올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물론 대기업마저도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고용은 늘어나지 않고 이미 고용된 취업자와 일자리를 구하는 구직자 간의 양극화가 심해졌으며 경제는 활력을 잃고 추락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최저임금에 대한 공격은 자연스럽게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됐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의 3대 축으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세웠지만, 이전 정부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문재인 정부만의 특징은 소득주도성장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소득주도성장이 가장 핵심적인 경제정책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정책들 중 한 가지였다. 그런 최저임금 인상이 잘못이라고 비판했으니, 그 비판이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비판은 나름대로 효과적인 공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이 겪고 있는 민생의 어려움과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에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는 비판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경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정책방향을 수정했다. 비록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정책의 방점은 소득주도성장이 아닌 혁신성장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던 주력산업들이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고, 고용상황이 개선될 조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던 반도체 경기 역시 한 풀 꺾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는 정말로 위기인가? 위기라면 위기의 진행상황은 어떠하며 그 극복 방안은 무엇인가? 역대 최악으로 불릴 만큼 악화된 고용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하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고,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