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경제 톱니바퀴, 제대로 굴러가나?
문재인 정부의 경제 톱니바퀴, 제대로 굴러가나?
  • 김란영 기자, 박재민 기자
  • 승인 2019.03.11 12:15
  • 수정 2019.03.11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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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세 축, 순조롭진 않다

[커버스토리] 변화의 시기, 한국 경제와 일자리②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세 축인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어떤 상호작용 속에서 기능하는 것일까?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기관인 민주연구원의 박정식 정책네트워크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폐기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던 지난해 7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 전체 영역 수요의 측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말하는 것이라면, 공급의 측면에서는 혁신성장이 필요한 것이고, 이 두 가지가 가능하려면 공정한 룰이 전제돼야 하므로 공정경제를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급 측면이 강조되는 지점에서 언급되는 혁신성장은 대기업 수출 경제 구조에서 파생되는 낙수효과를 지향하던 과거 경제정책을 떠올려 소득주도성장의 대척점으로 인식되는 면이 있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 김동연 전 부총리 간 대립’이 ‘소득주도성장 대 혁신성장 대립’으로 읽힌 것도 이 맥락에서 나왔다. 두 축의 대립 구조 속에서 나머지 한 축인 공정경제는 존재감을 상실한 면이 있다. 정치적 색깔이 짙게 스며들어 본래 선명성이 옅어진 정부의 경제정책 세 축은 그렇다면 원래는 어떤 의미였을까?

소득주도성장 정책, 불가피한 선택

지난 2017년 7월 정부가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 보고서를 보면, 당시 정부는 우리나라 가계 문제의 본질을 ‘저성장 고착화’, ‘양극화 심화’ 두 가지로 지목하고, 이를 위한 방법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제시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가계 소득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실질임금 증가·소득분배개선→소비 증가→고용 및 투자 증가→노동생산성 증가→실질임금 증가’의 선순환을 전제한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주된 관심사는 선순환의 물꼬를 트는 일, 즉 국민들의 실질 임금을 올리는데 있다. 기존 경제 체제에서 소득은 성장의 결과일 뿐,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지지하는 소위 케인스주의, 포스트케인스주의 학자들이 소득 증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들이 한국 경제의 내수침체 원인을 더디게 증가해온 가계소득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 국가에서 창출한 모든 부가가치를 더한 것이 국민소득이다. 노동과 자본을 통해 발생하는 국민소득은 노동 몫, 자본 몫으로 나눌 수 있다.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으로 나뉜다는 뜻이다. 노동소득 분배율은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점유하는 양을 말한다. 20세기 초반 영국 경제학자 보울리(Bowley)는 노동소득 분배율이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이후 경제학계는 노동소득 분배율이 일정하다는 명제를 정설로 받아들였다. 자본주의와 산업시대 황금기에는 이 정설은 현실과 부합했다.

이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와서다. 일본은 1970년대 후반 80%까지 올랐던 노동소득 분배율이 최근 65% 이하로 떨어졌다.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도 1970년대 중후반 정점에 달한 이후 노동소득 분배율이 2010년대에 대체적으로 10%p 하락했다.

우리나라 국민총소득 대비 가계소득 비율은 1996년 70.8%에서 2016년 62.1%로 8.7%p 하락했고, 국민총생산 대비 가계 소비 비율은 2016년 47.4%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48.6%)보다도 낮은 상태다. 반면, 국민총소득 대비 기업소득 비율은 1996년 15.7%에서 2016년 24.1%로 8.4%p 상승했다(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노동생산성 상승에 비해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선진국이 겪은 문제를 우리나라는 20년 시차를 두고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태일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이와 같은 현상이 갖는 함의를 ‘불평등 혹은 소득분배 악화’라고 진단한다. 그는 “자본소득은 대체로 고소득자에게 귀속된다”면서 “중하위 계층의 소득은 대부분 노동소득”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국민소득 중 자본의 몫이 증가하고 노동의 몫이 감소한다는 것은 그만큼 분배가 악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자 간의 소득 격차,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들이 가계 소득 증가 속도에 전 방위적인 제어를 걸고 있는 셈이다.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 소득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세계 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수출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수출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 100대 국정과제’에 나오는 소득주도성장 관련 항목의 핵심은 결국 ‘일자리’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16번 과제 세부내용을 보면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과 광주형일자리 모델 확산이 주요내용으로 돼있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마중물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 외 소득주도성장 관련 과제들도 공공서비스 구축을 통한 일자리 마련, 성별 및 연령별 일자리 제공, 은퇴 후 일자리 강화, 좋은 일자리를 위한 서비스 산업 혁신과 가계 부채 위험 해소 등을 다룬다. 소득주도성장을 성장전략으로 설정하고 일자리를 그 추진 과정에서의 핵심 요인으로 잡은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좋은 일자리’ 마련을 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세부 내용의 세부 내용’일 뿐 소득주도성장 그 자체는 아니다.

변질된 혁신성장, 어떻게 변했나?

혁신성장이라는 단어는 ‘대통령 100대 국정과제’ 중 39번부터 41번 과제를 묶는 ‘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이라는 소제목에 등장한다. 각각의 과제에는 ‘혁신을 응원하는 창업국가 조성’ ‘중소기업의 튼튼한 성장 환경 구축’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축소 등을 통한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라는 제목이 붙었다. 제목만 봐서는 ‘혁신성장이 소득주도성장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할 포장지로서 기능한다’는 비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중소기업 집중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성장 달성, 중소기업 인건비 지원 및 성과 공유 확산 통한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완화라는 각 항목의 과제 목표를 살폈을 때 혁신성장은 애초 소득주도성장의 대립 개념으로 탄생한 것은 아니다. 과제 집행 기관이 중소벤처기업부로 설정됐다는 점도 대기업 중심 낙수효과 성장 담론의 또 다른 모습이 혁신성장이라는 비판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소득주도성장 달성’이 혁신성장 과제 목표 중 하나라면 왜 홍장표 부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소득주도성장론을 정립한 주상영 건국대학교 교수는 혁신성장을 두고 “혁신을 통해 성장하라는 말은 맞는데, 거기서 나온 정책이라는 것이 별 볼 일 없다”고 평가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혁신성장의 본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2017년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보고서에서 혁신성장에 대해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중소벤처기업부 신설, 중소기업 R&D 투자 확대, 혁신 공간 구축,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 등)하고 경제와 산업 등 전 영역에 걸쳐 4차 산업혁명 대응태세를 강화(4차 산업혁명위원회 신설, 5G·IoT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제조업 부흥 전략, 친환경·스마트카 등 8대 선도산업)하며, 보호무역 기조 속에서 전략적인 해외진출을 꾀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혁신성장은 6개월 뒤 ‘2018년 경제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해 혁신성장을 경제·성장을 전반으로 확산하고 선도사업 추진으로 성과를 조기 가시화’하는 것으로 달라진다. 정부가 혁신성장 정책의 방점을 ‘중소기업’과 ‘4차 산업혁명’에서 ‘선도사업’으로 바꿔 찍은 것이다.

다시 1년 뒤인 지난해 12월 ‘2019년 경제정책방향’ 보고서에선 그동안 혁신성장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 묶여 있던 정책들이 ‘전 방위적 경제 활력 제고(기업투자 활성화, 창업 지원)’, ‘경제 체질 개선 강화(주력사업 경쟁력 제고, 4대 신사업 집중 지원, 서비스사업 획기적 육성)’, ‘미래 대비 투자 창업 지원(4차 산업혁명 대비)’ 등 세 가지 정책 방향 아래로 뿔뿔이 흩어져버린다.

혁신성장의 의미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청와대 한 인사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기조를 알려면 변양균 전 참여정부 정책실장의 책을 읽어라”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언급된 책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변양균 전 실장이 낸 <경제철학의 전환>을 지칭한다. 이 책은 ‘케인스적 수요정책에서 슘페터적인 공급정책으로 전환을 설파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케인스(Keynes)의 ‘일반이론’ 에서 따온 것으로, 성장이 자본가의 비용 절감을 통한 절제가 아니라 소비에 의해 촉진된다는 것이다. ‘낙수효과’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뿜어지는 ‘분수효과’가 성장을 이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변양균 전 실장이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언급한 ‘전환’이 다시 공급 위주 정책으로의 전환을 말한다면, 혁신성장이 과거 정부의 경제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판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유의미한 문제의식에도 존재감 약한 공정경제

공정경제 정책은 세 차례 걸친 경제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정책의 목표와 방향성, 세부 정책 내용 모두 앞선 두 정책에 비해 일관되고 뚜렷하게 정리된다.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없애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며, 소상공인 골목상권을 보호해 보다 더 공정한 시장 경제를 만드는 것. 그로써 ‘동반 성장의 기반을 닦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2017년 경제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다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선 ‘부문 간 상생’ 정책의 일부로 취급됐던 공정 경제를 위한 정책들을 경제정책 한 축으로 전면화하고, 단체구상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 집단소송제 도입,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개선, 일감몰아주기 규제·과세 강화 등 관련 정책들을 보다 구체화했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2019년 경제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올 해도 동반 관련 법 제도 개선과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일관된 정책들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경제의 문제의식은 대기업이 주도해온 성장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공정한 시장 경쟁을 망친다는 가치 판단 차원의 지적을 넘어 대기업·수출 중심 성장전략이 이제 무용하다는 판단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었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은 보고서 ‘신성장 패러다임의 모색’에서 제시한 것처럼 대기업의 취업유발계수가 크게 낮아지면서 대기업 중심 성장전략을 지지하는 주요 논리로서 낙수효과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연구자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시각이다. 글로벌시장에 진출한 대기업의 해외 투자 및 생산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진 점이 낙수효과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금융감독원이 2011년 낸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국내 자회사 투자액은 12조 원인 반면 해외 자회사 투자액은 28조 원이었다. 그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갖는 가치 그 자체도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요인이었다. 산업연구원이 2013년 발표한 자료에 나오는 제조업 분야 대기업 고용유발계수는 6.5인 반면 중소기업은 10.2였다. 실효법인세율 항목을 살펴봐도 중소기업이 2012년 실질적으로 감당한 법인세율은 13.3%로 상위 10대 대기업 13.0%보다 높았다.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재벌 총수 일가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 ‘공정거래 감시 역량 및 소비자 피해구제 강화’ ‘사회적 경제 활성화’ ‘더불어 발전하는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을 과제로 하는 공정경제는 대기업의 질주를 제동하겠다는 시각에서뿐 아니라 중소기업 중심 성장전략이 시대적으로 유의미하다는 판단 아래서 나왔다.

이처럼 공정경제 실현이라는 문제의식이 의미 있는 문제의심임에도 불구하고 공정경제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대립 구도에 가려 존재감이 약하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정경제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책 추진의 동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채 입지가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화려한 수사를 앞세우지만 실제로 눈에 보이거나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