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소득주도성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김란영 기자, 박재민 기자
  • 승인 2019.03.11 12:15
  • 수정 2019.03.11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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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취지와 과정 따로 놀아

[커버스토리] 변화의 시기, 한국 경제와 일자리③

정부의 대표적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꼽히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의 정책들은 지난해 현장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저마다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소위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으로 꼽혔던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정책들도 노동계의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정부의 정책이 현장에서 환영받지 못한 이유를 살펴봤다. 

묻지마, 최저임금 인상?

‘최저임금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과격한 표현을 피하더라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영세 자영업자들이 떠안게 된 부담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최저임금은 지난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 7,530원으로 16.4% 올랐다. 올해 최저임금은 8,350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10.9% 늘었다. 이러한 두 자리 수 인상폭은 전례가 없어서 곧바로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샀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고,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을 부담하는 이들의 지불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정원석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 본부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지금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1만 원을 반대한 적은 없다. 다만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이행을 위해, 너무나 이념적으로 쉽게 올려버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이 갑(甲)과 을(乙)이 아닌 ‘을과 을의 싸움’으로 번진 것은 우리나라 ‘사장님’들의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에서 비롯한다. 사장님들이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못’한 것과 ‘않’은 것의 그 내밀한 의도를 차치하더라도,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2019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임금실태 등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7년 8월 기준으로 최저임금 미만율은 13%. 이는 전체 근로자 100명 중 13명이 당시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이 몰려 있는 숙박·음식점(35.2%), 10인 미만 사업장(48.9%)에서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최저임금 지불 여력이 없어서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지난 2년 간 최저임금 미만율은 더욱 크게 오를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대상 확대, 신용 카드 매출 세액 공제 한도 인상, 임차인 계약 갱신 청구권 연장 등을 골자로 한 자영업 대책을 연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줄여달라고 했더니 다른 것으로 해결해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기껏 해봐야 6개월 일하는데, 어떻게 4대 보험 가입을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 조건으로 걸 수 있나. 5인 미만 사업장 4대 보험 가입률은 12%. 정책 만들기 전에 사람들이 4대 보험을 왜 가입하지 않는지부터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작년만 해도 정부가 자영업 대책을 5번 발표했다. 노력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됐나? 대책이라고 해도 그 때뿐이고, 장기적인 목표와 전략이 부재하다” 등의 혹평이 쏟아졌다.

정원석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이러한 ‘후폭풍’을 막기 위해선 최저임금 결정 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정 본부장은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이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 최저임금 영향률과 미만율이 가장 높은 소상공인과 그곳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최임위원 중 근로자 측은 연봉이 높은 양대 노총의 목소리가, 경영자 측은 중소기업중앙회나 경총(한국경영자총연합회)의 목소리가 더 크다. 각 단체들이 노사를 대변한다고는 하지만, 단지 대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직접 나와서 얘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별·사업장 규모별 차등적용을 통해 사업장별 최저임금 지불 여력도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전직 지원 체계나 사회연금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자영업 과잉 구조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소상공인 규모는 작년 말 기준으로 564만 명. 여기에 월급 없이 일하는 가족 종사자 110만 명을 더하면 전체 취업자 2,682명 가운데 25% 차지한다. 이는 일본의 2배, 미국의 4배 수준이다.

노동시간 단축,
노사 모두 ‘윈-윈(WIN-WIN)’하려면

‘국민의 저녁 있는 삶’과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기 위해 야심차게 시작된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정책 또한 현장의 비판의 피해가기 어려웠다. 기업 입장에선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성 저하에 대한 우려, 추가적인 고용에 따른 비용 등이 부담으로 작용했고, 노동자 입장에선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감소가 정책을 기피하는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주52시간제 도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한다고 입장을 밝히는 등 정책적으로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못하거나, 일반적으로 사측이 꺼려할 정책인데도 정책의 현장 안착을 확실히 하기 위한 세부적인 지침 없이 ‘총론’만을 던진 데 그쳤다는 점에서 노동계에선 반발이 컸다.

국회는 지난해 2월 주당 법정 노동시간을 기존 68시간(평일 40시간+평일연장 12시간+휴일노동 16시간)에서 52시간(주 40시간+연장노동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지난해 7월부터 법이 적용됐으며, 50인 이상~299인 미만 사업장과 5인 이상~49인 미만 사업장은 각각 2020년 1월 1일, 2021년 7월 1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다만 주52시간제가 전면 시행되는 2021년 7월부터 1년 6개월 간 30인 미만 사업장은 노사 합의를 통해 특별연장노동 8시간을 허용토록 했다.

한편, 주 52시간제 도입을 두고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의 양상은 사업장 별로 다양했다. 지난 1월 28일 서울 강서구 KBS스포츠월드 아레나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주52시간제 도입에 난감해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52시간제 도입 취지에 대해선 이견을 달지 않았지만, ‘기업을 설득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당장 임금 하락에 따른 불이익을 오롯이 떠안고 있어서’, ‘업종 특성 상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부가 주52시간제를 도입해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해놓고는 탄력근로제 기간을 확대한다고 하거나 계속해서 기업에게 계도기간을 주는 등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기업이 주52시간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도록 유인책이나, 강제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노동정책은 정부가 사업주에게 하라고 해야지, 노동자들이 해달라고만 해서는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려고 했다면, 보다 강력하게, 제대로 했어야 했다”

(화학섬유연맹 제일사료대전 조진석 지회장)

“주52시간 때문에 임금이 하락했다. 그동안 연장 근무 수당 등으로 얻는 수입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노동조합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제도를 진행했다. 채용을 더 한다고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정해진 근무 시간을 초과하면 근태를 찍은 후에 근무를 이어서 하는 ‘유령근무’가 발생하고 있다”

(화섬식품노동조합 파리바게트지부 임종린 지부장)

“다른 사업장과 다르게 물리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업종 특성 상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이 결국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장시간 노동을 막고자하는 원칙은 맞지만, 자칫 그것이 콘텐츠나 기사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까 하는 우려가 있다. 적자 구조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마냥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이경호 본부장)

이처럼 사업장 별로 결이 다른 논의들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그 해결책으로 노·사 양측이 정책 도입으로 한쪽이 잃고, 한쪽이 얻는 식의 접근에서 벗어나,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공통의 이익이 되는 지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낮은 노동생산성이라든지 아빠가 자녀와 하루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 6분이라는 등 노사 모두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다. 다만, 그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생산성 향상에서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노·사 간 성과 공유제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 연구위원은 “근로시간을 단축했을 때 사업주 입장에선 이전과 동일하게 생산성을 유지해야 하는 수요가 있고, 근로자 입장에선 임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고용이 유지돼야 하는 수요가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들어도, 회사에 이익이 생겼을 때, 회사가 이익의 일정 부분을 근로자에게 돌려준다면 근로자들이 생산성 향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수 추계 실패로 인한 3년 연속 긴축재정

국내총생산(GDP)에서 총저축과 총투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2011년 이후 총저축 규모는 늘고 총투자 규모는 줄어 둘 사이 격차는 확대됐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이것이 “내수 비중이 점점 작아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총저축과 총투자의 격차 심화 현상이 ‘한국 경제의 수출 경쟁력이 높다는 걸 의미하는 긍정적 지표라기보다는, 내수 비중이 지나치게 작다는 걸 의미하는 부정적 지표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은 내수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우리나라 내수시장 위축을 우려하면서 이 문제를 정부 재정정책 차원에서 접근해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같은 통화정책만으로 경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자 재정정책을 폈다. 국제통화기금과 경제협력개발기구는 금리가 낮아도 물가는 오르지 않는 만성적 총수요 부족의 시대에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함께 쓸 것을 각국에 권고해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긴축재정을 유지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금이 얼마나 걷힐지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초과세수가 발생했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긴축재정을 편 게 소득주도성장 시행 과정에서 주요 실책이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약 19조 6,000억 원, 2017년 약 14조 6,000억 원, 2018년 약 26조 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3년 연속 대규모 긴축재정을 한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분석한 재정충격지수를 보면 2017년 7월 추가경정예산 편성 당시 재정충격지수는 0.18로 전년과 비교해 확장재정으로 평가됐지만, 그해 발생한 초과세수를 포함해 결산하면 재정충격지수는 –0.25였다. 긴축재정을 폈다는 말이다.

조영철 교수는 “지난해의 26조 원 긴축재정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면서 “확장재정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완충해야 할 시점에 긴축재정으로 가는 바람에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 침체 주범으로 집중포화를 받는 빌미를 줬다”고 분석했다. 이어 “2016년 이후 대규모 초과세수가 3년 연속 발생했다는 것은 기획재정부의 단순 실수로 넘어가기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고까지 주장했다.

우리나라 OECD 중 재정 제일 탄탄
정부가 돈 써야 소득주도성장 지속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최저임금은 16.4% 인상해 과감한 태도를 보인 반면 소득주도성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 복지 영역에서 보인 소극적인 태도도 실책이었다고 본다. 최저임금 인상의 단기 부작용을 완충하려면 고용보험·기초연금·실업부조 강화 등 사회정책도 그에 상응해 강화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나아가 증세와 국채발행을 섞어 마련한 재원을 활용해 아동수당을 증대하고 청년고용을 증진하고 여성의 경제 활동을 끌어올리는 성장 친화적 사회정책을 써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다시 재정건전성이 건강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와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탄탄한 재정역량이 있다. 국제 신용 평가 기관 무디스(Moody’s)는 우리나라가 노르웨이 다음으로 재정여력이 풍부하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에 대한 호의적 평가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내총생산 대비 국채 비율이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등 5개 선진국 다음으로 우리가 낮다”면서 “그 보수적인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우리나라에 재정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쓰고 적자도 내라고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의 경제 정책을 ‘자린고비 경제학’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경제 위기를 극복할 방편으로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담론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진단이다. 우리나라 2013년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 재정 지출 비율은 31.8%였다. 같은 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은 42%로 우리 정부가 10%p 이상 돈을 덜 썼다.

한국 경제 위기론에 등장하는 ‘한국 경제 위기’의 실체는 노동소득분배율 하락, 이에 따른 가계소득 감소, 결과적으로 이어진 가계소비 부진, 다시 파생되는 내수시장 침체라는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가계 주머니 사정 곤란이 한국 경제 위기의 핵심이라는 분석에 따르면 소득주도성장 폐기론의 주요 근거인 한국 경제 위기 현상이 오히려 소득주도성장 유지론의 근거로도 사용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정부가 재정정책에 있어서 보인 소극적 태도는 재고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