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제민의 고민, 무엇이 필요하나?
경세제민의 고민, 무엇이 필요하나?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9.03.11 12:11
  • 수정 2019.03.13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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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진단하는 한국 경제와 정책에 대한 조언

[커버스토리] 변화의 시기, 한국 경제와 일자리 ⑥

한국 경제의 상황 진단은 밝지만 않다. 많은 이들이 내부적으로는 이른바 경기 하강국면이라는 시각과 함께, 외부 요인 역시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한다. 경영계는 이와 같은 현실에서 노동시간 단축,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공정거래법, 상법 등 기업 부담이 가중되는 법안 개정이 추진되며 경제 활력이 위축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정책의 세 축은 여전하지만 방범은 옮겨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위기'라는 우려가 불거질 만큼 어려운 경제 현실 속에서 과연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타는 올바른 방향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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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목표와 실제 효과의 괴리를 좁혀라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은 정책실패, 가계부채, 부동산, 인구절벽 등의 4대 리스크 관리에 실패할 경우,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닥쳐올 수 있을 거라 경고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처했던 가장 큰 위기로 말할 수 있는 IMF 경제위기 시절과 같은 갑작스런 충격이 올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당시와 비교하면 경제 체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책실패 리스크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의 목표와 실제 나타나고 있는 효과가 다를 경우,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가중되고 이는 다시 정책효과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을 말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영계가 주장하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와 같은 것이 예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소비탄력성이 큰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내수 확대를 통한 생산유발 효과로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저임금의 과감한 인상을 선택했다. 문제는 한국의 최저임금 사업장이 생계형 자영업자와 생존형 중소기업에 집중분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이들은 고용주이지만, 그들이 가져가는 영업이익은 임금소득자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런 그들은 최저임금이 과도하게 인상될 경우, 종업원을 해고하거나 폐업을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실직자나 폐업한 자영업자는 소득이 없기 때문에 빈곤층은 확대되며 분배구조는 더욱 악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수시장이 오히려 축소되어 경제성장률도 자연 떨어질 수도 있는 의미다.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책실패의 예이다.

이 전 총장은 정부가 국민들의 소득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최저임금의 인상이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같은 정책을 펴는 데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국민 소득을 개선하기 위한 최상의 전략적 선택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스타트업 활성화, 전통산업의 첨단화, 문화기반/과학기반 신산업 육성” 등을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에 대해선 “정책목표와 정책수단, 정책전달체계가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혁신성장은 “모험을 즐기는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시장경제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라며 “한편으로 혁신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제에 반하거나 기업가정신을 심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투자로 일자리 창출해야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우리 경제에서 현재 수출과 투자는 충분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부족한 것은 개인의 소비이니 이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없어 소비를 안 하니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충 등을 통해 소득을 늘리면 소비도 늘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승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는 “그런데 그것으로만 될까?”라고 반문했다. 이와 같은 구조 안에는 기업의 자리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 이사는 “자본주의 시장에선 자본가들이 할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투자”라며 “오히려 한국은 투자가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소득주도성장론에서 말하는 소득을 늘려 소비를 키우자는 것도 좋지만, 기업의 투자 문제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기업의 ‘소비’인 투자는 결국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이른바 밑바닥 소득이 늘어 소득주도성장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바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으로 연결되긴 어렵다. 사람들의 소득이 많아지면서 밥 먹고, 옷 사고, 여행 가는 게 국내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정 이사는 “제조업 살리기와 같은 일자리 창출 계획은 따라서 소득주도성장만 가지고는 턱도 없다”며 “산업 자체에 대한 부흥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의 대표적 원조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루즈벨트의 정책과 스웨덴 사민당의 산업전략”이라고 말한다. 그 과정은 한국 사회 내부의 이야기만 가지고 설명이 되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서 세계의 교역이 둔화되었다. 그러다보니 해운업이 타격을 받고, 연달아 조선업이, 철강산업이 타격을 입는다. 과거와 같은 수출에 의한 성장은 구조적으로 한계를 맞는 가운데, 내수에 초점을 맞춘 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정책으로는 사회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정책으로서 혁신성장이 제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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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미래,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무수히 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쳤다.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5년 뒤, 10년 뒤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여전히 살아남을 것인지 황폐해지다 소멸해 버릴지 모를 일이다.

정승일 이사는 “지난 2010년 무렵, 전 세계가 금융위기인데 조선도 잘 나가고, 현대차도 잘 팔려, 그야말로 잘 나가던 울산지역이 10년 뒤 스웨덴 말뫼처럼 폭삭 망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했다”고 말한다. 비슷한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정 이사는 “중국은 로켓엔진을 달았는데 우리는 필요 없다고 엔진을 뗀 격”이라며 “제조업이 비교우위를 잃었으니까 서비스업으로 가자는 주장도 있는데, 그것으로 일자리가 몇 개나 만들어지겠느냐”고 반문했다.

최배근 교수는 “서비스업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금융, 의료, 법률 등 전통사회에서도 존재했던 서비스이고, 다른 하나는 제조업과 관련된 서비스”라고 말한다. 제품을 규정하고 설계하는 서비스이다. 가령 대규모 교량을 설계하는 서비스와 같은 것을 일컫는다.

이러한 고부가가치 서비스는 노하우와 역량의 축적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압축성장을 이뤘던 한국 경제는 단 시간에 쫓아갈 수 있는 부품의 조립, 생산과 같은 과정의 작업에 집중했다.

그러한 가운데 최 교수는 “한국의 제조업이 소위 로봇 밀도, 즉 노동자 한 명당 로봇 사용 대수가 전 세계에서 압도적 1위인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2016년 기준 631대인데, 2위 국가가 400대도 안 되는 수준이다. 독일, 일본, 미국 등을 보면 로봇 밀도가 완만하게 변하는 데 반해, 한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폭발적으로 급상승했다.

이는 로봇이 대체 가능한, 즉 단순 숙련 노동력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 교수는 이와 같은 점이 향후 큰 문제라고 말한다.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잃고 축출된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은 서비스업, 타 산업으로 이동하고 결국 일자리와 소득의 양극화는 계속된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 “복지를 늘려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늘리는 해결책도 필요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임금수준이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고 인식되는 간호 인력의 확충 같은 경우를 예로 든다. 2012년을 기준으로 인구 1천 명당 간호사 수를 비교하면 OECD 평균이 9.3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4.6명으로 나타난다. 간호조무사를 제외하면 2.3명에 불과하다. 다른 문제를 배제하고 일자리 문제로만 본다고 해도, OECD 평균 수준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면 지금보다 두 배에 가까운 간호사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간호사 일자리가 아니라도 사회복지 인력의 수요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본격적인 전개에 따라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관련 취업자 수는 200만 명 수준으로, OECD 평균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조 교수는 또한 이러한 일자리의 질을 높인다면 자연스레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나 이중구조 문제 등의 해법에도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김태일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너무나 열악한 서비스업을 외국처럼 그럭저럭 괜찮게 급여를 받는 중간 수준의 일자리로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정책패키지와 소통, 포용적 성장의 관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세 축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에 대한 담론은 서로 대립하거나 부딪치는 개념이 아닐 것이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당초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실에서 아쉬운 점은 마치 소득주도성장 대 혁신성장의 대립으로 비치는 경우처럼, 정치색으로 경제정책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정치논리가 지배하는 경제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지적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경제정책은 그야말로 ‘경세제민’을 고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두루 많은 사람에게 성장의 결과가 배분되며 두루 혜택을 누리는 성장’이라는 의미의 ‘포용적 성장’을 새롭게 제시한 바 있다. 포용적 성장은 기존의 경제정책의 세 축이던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포용적 성장으로 가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고용의 부진에서 찾을 수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고, 자동화, 대형화, 온라인화 등이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오던 주력 제조업의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 객관적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런 요인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경제정책을 펴는 정부가 체계적인 정책패키지를 구성해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만 하더라도,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릴 경우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이를 사전에 보완하기 위한 정책들이 패키지로 구성되어 실행됐다면 지난 한 해와 같은 혼란은 겪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사전 조치가 부족했고, 결국 일자리 안정자금을 대증요법으로 투입하면서도 비판을 피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책을 펴는 대상자이자 이해당사자인 노사와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도 되새겨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반드시 공식적인 대화기구만을 통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공식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 논의를 미룸으로써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경사노위에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뛸 것을 주문한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냈다.

참여주체들 사이의 신뢰가 충분히 쌓이기도 전에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사안들에 대해 기한까지 정해 합의를 요구한 것은 이름까지 바꾸고 새롭게 사획적 대화 체계를 만들어가려는 경사노위를 다시금 정책을 포장하는 들러리로 되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해 연말에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6~2.7%로 예상하면서 신규 취업자 수를 15만 명 선으로 전망한 바 있다. 잠재성장률과 유사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전망한 것이다. 이러한 전망이 수정될 수는 있겠지만, 이와 같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책패키지 구성, 이해당사자와의 소통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혁신성장의 동력으로서 R&D 투자의 확대는 물론, 정승일 이사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제조업 르네상스’를 위한 제조업 R&D 투자와 지역에 대한 투자도 빠뜨리지 않아야 할 요소이다. 공공부문에서의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 일자리는 민간부문에서 만들어진다는 지적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요소들을 어떻게 조합해 실행하는지에 따라 올 한 해 경제의 성과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