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산업 개편의 신호탄을 터트리다
국내 조선산업 개편의 신호탄을 터트리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3.11 12:09
  • 수정 2021.01.2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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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빅2 체제’ 도래

[리포트] 대우조선해양 주인 찾기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의 최종 인수후보자로 확정되면서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이달 8일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본계약이 마무리되면 오랜 기간 빅3 체제(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로 유지됐던 국내 조선산업이 빅2 체제로 개편된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두고 규모의 경제, 시장 경쟁력 강화 등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한편, 동반부실, 독점, 지역경제 침체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의향서 제출부터 본계약까지, 한 달여 동안 대우조선해양 주인 찾기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들을 종합해봤다.

대우조선해양 주인 찾기

현대중공업, 산업은행에 인수의향서 제출

지난해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국내 조선산업 빅2 체제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며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 또는 삼성중공업에 인수·합병되어 국내 조선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시간이 흘러 지난 1월 31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의지를 공식화하고, 산업은행(대우조선해양 최대주주)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지분 55.7%를 인수하는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을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물적 분할 후 중간지주회사인 조선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중간지주회사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방식에 합의했다. 이렇게 되면 중간지주회사인 조선합작법인이 현대중공업 사업회사, 대우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4개 조선사를 보유하게 된다.

산업은행은 삼성중공업에도 동일한 조건으로 인수를 제안했으나, 삼성중공업이 인수 참여의사가 없다고 밝히면서 현대중공업이 최종 인수후보자로 확정됐다. 이제 산업은행은 이달 8일 현대중공업과의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국내 조선산업 빅2 체제 개편은 조선산업 침체와 대우조선해양 경영위기가 겹친 2015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대중공업의 인수의향서 제출 후 한 달여 만에 국내 조선산업은 빅2 체제를 맞이하게 됐고, 대우조선해양은 새 주인을 찾게 됐다.

슈퍼빅의 탄생, 시너지 효과는?

사실상 빅2 체제가 확정되면서 조선업계 전반이 들썩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현대중공업이 전 세계 수주점유율 30~35%를 차지하는 ‘슈퍼빅’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영국 조선·해운전문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의 수주잔고는 261척(3,279만DWT),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잔고는 68척(1,423만DWT)으로, 이를 합치면 삼성중공업 수주잔고 대비 4.8배에 이른다. 말 그대로 ‘슈퍼빅’의 탄생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시킬 거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조선산업의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선박수주 사이클이 돌아올 때마다 반복되는 국내 수주 경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무엇보다 중복투자 회피와 기술공유에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1월 대우조선해양은 부분재액화기술 개발 특허를 등록했다. 이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2014년 12월, 2015년 3월 대우조선해양 관련 특허 2건에 대해 무효심판을 제기한 바 있다. 특허심판원은 2015년 5월 1심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특허가 유효하다며 대우조선해양의 손을 들어줬지만, 2017년 1월 2심에서는 1심을 뒤집고 특허 무효를 결정했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우조선해양이 LNG선 재액화장치를 개발하고 현대중공업이 이듬해 완전재액화장치를 개발해 둘 사이에 소송전이 펼쳐진 바가 있다”며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기술을 공유하고 중복투자를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술공유가 한국 조선업계가 선도하고 있는 LNG운반선 부문 시장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LNG운반선 발주 63척 가운데 54척(86%)을 한국 조선업체들이 따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 54척 중 빅3가 따낸 수주는 총 52척(지난해 12월 6일 기준)으로, 이는 2017년 11척과 비교했을 때 5배 수준으로 증가한 수치다. 클락슨은 지난해보다 올해 LNG운반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LNG운반선으로 인한 수주는 장시간 청신호가 켜져 있어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슈퍼빅의 탄생 소식에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 조선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일본 이혼게이자이, 일본해사신문 등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세계 최대 조선소가 탄생할 경우 규모의 경제로 이어져 일본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

조선산업 생태계 붕괴 우려

이해관계국들의 견제 가능성도…

긍정적인 전망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재편되는 빅2 체제가 단순히 ‘빅1+빅1’이 아닌 ‘슈퍼빅1+빅1’이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의 독점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삼성중공업이 슈퍼빅으로 거듭난 현대중공업에게 원가 경쟁력에서 밀리고, 이로 인해 점유율 하락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독점 문제는 균형적인 경쟁을 저하시켜 결국 국내 조선산업 생태계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지난해 발표한 조선산업 발전전략에서 ‘대-중-소 상생을 통한 조선산업 생태계 강화’를 강조했던 정부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보인다.

실제 독점 문제와 관련해 해외 이해관계국들이 견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앞서 일본은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해 한국 정부가 약 12조 원을 지원한 것에 대해 국제보조급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WTO 제소 절차 중 하나인 한국과의 양자협의를 실시했다.

일본은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외에도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에 대한 대출, 보증, 보험 등의 지원도 문제 삼고 있다. 여기에 EU도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로 양자협의에 참여한 상황이다. EU는 일본이 WTO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조치가 EU의 주요 수출품인 선박, 선박엔진, 해양장비 등의 가격과 무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원이 해당 금융기관들의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며, 국제규범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밀실협상, 고용불안, 동반부실’ 노조는 반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매각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대우조선지회는 ▲동종사(조선업) 매각 반대 ▲당사자(노동조합) 참여 보장 ▲분리 매각 반대 ▲해외 매각 반대 ▲일괄 매각 반대 ▲투기자본 참여 반대 등 매각에 대한 노동조합의 6대 기본방침을 발표하고, 지난달 12일부터 여의도 산업은행 앞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지난달 17일, 18일 이틀 동안 진행한 쟁의행위 조합원 찬반투표에서는 90% 이상 찬성표를 받아 매각 반대 파업을 결의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따른 동반부실을 우려하고 있다. 만약 조선산업 불황이 장기화되거나 유가 급락으로 발주 시장이 위축된다면 조선합작법인 산하 4개 조선사들의 동반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대우조선은 부실부분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부채비율이 높은 편이고 2조3,000억 원 가량의 영구채를 안고 있다”며 “동반부실의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경우 구조조정은 가속화될 것이고 이로 인한 노사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현대중공업 정규직노동자와 사내하청노동자 4만 명, 대우조선해양 정규직노동자와 사내하청노동자 2만7,000명의 생존권이 도마 위에 올랐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추가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으나, 노조는 인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및 노동조건 후퇴에 대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단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두 조선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대부분 자체 계열사를 통해 기자재를 공급받고 있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수많은 외주협력업체들의 일감이 사라질 수 있다. 신상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은 “대우조선해양에 엔진을 납품하는 HSD엔진(80%)과 STX엔진(20%)을 포함한 수많은 조선기자재업체들이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조선산업 불황으로 침체된 지역경제에 또다시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산업은행과 정부, 현대중공업이 매각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을 완전히 배제한 채 매각을 ‘밀실협상’으로 결정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추혜선 정의당 국회의원은 “대우조선해양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금융지원 등 혜택을 부여한 것은 단지 거대기업을 살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며 “조선사에 딸린 수많은 협력업체와 노동자들, 그들의 소득에 기대 장사할 수 있었던 자영업자들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이어서 “구조조정과 노동조건 후퇴가 발생하지 않고 중소기업들의 일감을 현대중공업 계열사가 빼앗지 않겠다는 약속과 그에 따른 계획이 협상내용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며 “밀실협상과 일방적인 발표가 아니라 노동자, 협력업체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