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꿈꾸는 공정경제, 그 실상은?
한국이 꿈꾸는 공정경제, 그 실상은?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0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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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자영업자 어려움,
최저임금이 아닌 대기업 갑질!

[커버스토리] 변화의 시기, 한국 경제와 일자리⑤

국민들은 사회에서 여러 갑질을 보거나 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소비자들의 갑질, 가사도우미를 상대로 폭언을 가하는 갑질 등 언론을 통해서 여러 갑질의 형태가 소개되고 있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기업들 사이에서도 갑질은 존재한다. 협력업체나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한 대기업들의 갑질이 그것이다. 기업 간 갑질은 다른 형태의 갑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는 주요 경제정책 중 하나로 ‘공정경제’를 목표로 삼았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공정경제가 무엇이며,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 청와대
ⓒ 청와대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아 경제 발전 기반 마련

문재인 정부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라는 국정목표를 세우고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및 공정경제를 3대 축으로 해 제도개혁과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경제 정책으로 소개된 소득주도성장에 비해 공정경제는 상대적으로 생소하게 느껴진다.

정부가 말하는 공정경제는 기업·시장의 불공정을 시정하고, 우리 경제·사회 각 분야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경제정책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진보 경제학자라 불리는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을 맡으면서 공정경제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공정위에서 발표한 ‘2017년 사건 및 민원 처리 결과’를 살펴보면 2016년과 비교해 민원·신고 신청은 31,795건에서 41,894건으로 늘었다. 또한, 고발, 시정명령, 과징금 등이 부과되는 주요 사건 처리 건수가 420건에서 503건으로 증가했다.

촛불 정부 출범과 함께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하자 억울함을 하소연하거나 피해구제에 대한 기대심리로 신고 신청이 늘었으나, 그 중 상당수가 시효가 이미 지났거나 과거 신청했던 민원을 재신청한 사건이 포함돼 있어 실제로 사건을 다룬 수는 차이가 있었다.

공정위는 공정경제의 핵심을 ▲기회의 균등 ▲공정한 경쟁 ▲공평한 분배로 설정하고,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는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함으로써 모든 경제주체들이 일한 만큼 보상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19일에는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함께하는 성장’을 슬로건으로 공정위를 비롯한 금융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6개 부처가 모여 ‘공정경제 전략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도 회의에 참석해 “공정경제는 경제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는 일이며, 열심히 일한 만큼 결과가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너무나 당연한 소망을 이루는 일”이라며 “공정경제는 과정에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결과로서 성장의 과실을 정당하게 나누는 것이며 서민과 골목상권,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잘 살고자 하는 일이다”라고 직접 중요성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회의에서는 공정경제가 내 일터와 생활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이 될 수 있도록 입법과제 외에 체감형 정책을 적극 발굴해 성과를 창출하기로 계획했다. 주요 과제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갑을문제 해소를 통한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상생협력 강화 ▲공정거래법 집행 역량 강화 및 소비자 권익 보호 등을 설정했다.

대기업 갑질로 눈물 흘리는 피해자들

지난해 8월, 정의당은 공정경제민생본부 발족식과 함께 ‘대기업 갑질 피해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증언대회를 통해 대기업들의 갑질로 인해 피해를 입은 협력업체나 하청업체들이 사례를 증언함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증언대회는 일회성에 끝난 게 아니라 지난해 10월과 12월에도 이어져 모두 3차례의 증언대회가 진행됐다. 정의당은 두 달에 한 번씩 증언대회를 지속해서 열 예정이다.증언대회에서 불공정행위·갑질을 증언한 당사자들로부터 몇 가지 사례를 들어봤다.

우선 조선업종에서는 대기업 3사(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로부터 갑질을 당한 피해하청업체들이 모여서 ‘대기업 조선3사 하도급 갑질 피해하청업체 대책위(이하 대책위)’를 꾸렸다. 이들은 조선업종의 호황기가 끝나고 불황기로 접어들던 시기인 2012년부터 대기업들의 갑질이 본격화됐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조선업에 종사하는 인원의 80% 정도는 하청업체 소속”이라며 “호황기 때는 하청업체 수가 200개 정도였는데 현재 100여 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원도 3만 5,000명~4만여 명 수준이었는데, 2만여 명으로 줄었다”면서 “조선업이 위기에 봉착하자, 대기업들은 가장 먼저 하청업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인건비를 줄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 업체당 평균 150명의 인력을 파견하고, 많을 때는 200명에 이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수가 확연히 줄었다”며 “지금 원청 직원이 50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면, 하청업체 직원들은 250만 원 수준에 그친다”고 밝혔다.

유통업에서도 롯데그룹 계열 유통업체들로부터 갑질 피해를 받은 이들이 증언대회를 통해 사례를 발표했다. 이들은 증언대회를 계기로 ‘롯데피해자연합회(이하 연합회)’를 결성하여 활동 중이다.

롯데마트에 돼지고기를 납품하던 한 협력업체는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비롯해 각종 갑질을 당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단가 후려치기는 마트에서 돼지고기가 가장 활발하기 소비되는 삼겹살 데이(3월 3일)에 일어났다. 소비자들이 삼겹살을 많이 찾게 유도하고 다른 마트와 경쟁을 하려면 원가 15,000원 정도의 돼지고기를 9,900원에 팔아야 하니 9,000원에 납품하라는 내용이었다. 차액에 대한 금액은 이후에 보전해주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연합회의 설명이다.

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납품업자는 “법원에서 입증한 손실액 규모만 109억 원이며, 실상은 그보다 더 많은 피해를 봤다”며 “롯데에 납품하기 전까지만 해도 매년 61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136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갑질로 인해 파산한 후에는 직원이 20명도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 대우조선해양 갑질 피해 하청업체 대책위원회
ⓒ 대우조선해양 갑질 피해 하청업체 대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의지는 있는데 왜?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은 공정경제를 실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함께 대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분명한 의지와는 달리 현실적으로 바뀐 것은 별로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갑질 피해를 증언했던 대책위와 연합회는 공정위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책위는 “공정위가 조사를 진행할 때 대기업 하나만 보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얼마 전 대우조선 조사 과정에서 조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8월이었는데, 실제 조사에 들어간 것은 10월이었다”며 “대우조선은 1달 동안 조사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원·하청 관계는 노예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동반자 관계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재벌이나 정부는 이 관계를 동반자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연합회는 “공정위는 인력에 비해 사건이 너무 많이 제소돼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며 “공정경제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선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혁재 집행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 정책에 대해 ‘낙제점’이라고 평가했다. “많은 중소·자영업자들이 이번 정부에서 가장 많이 기대를 건 부처가 공정위”라며 “대부분이 대기업과 연관돼 있는 중소·자영업자들은 공정위가 대기업 갑질을 해소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것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어서 “평균 조사기간이 180일인데,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버티기 힘들다”며 “인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행법상 공정위만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고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받더라도 개인적인 고발이 불가능하고, 무조건 공정위의 손을 거쳐야 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전속고발권을 일부 폐지하고, 집행 권한 일부로 지자체로 이관하겠다고 밝혔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서 ‘김상조, 너마저!’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며 “김상조 위원장 진정성은 인정하나, 의지와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공정위, “더디지만 성과 만들어낼 것”

공정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3년간 공정경제 실현을 위해 ‘갑을관계 개선’과 ‘재벌개혁’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공정위는 ‘갑을관계’가 가장 고착화돼 있는 ▲가맹 ▲유통 ▲하도급 ▲대리점 분야의 거래관행 개선에 주목해 지난 2017년과 2018년에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시행했다. 또한, 재벌개혁 부분에 대해서는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대기업집단 규율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 중 하나로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엄정하게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공정위의 성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4대 갑을관계 취약분야 종합대책을 일관적으로 추진해온 결과 거래관행이 개선되는 등의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대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도 순환출자 고리가 자발적으로 해소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꾸준한 정책 추진으로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 관계자는 정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옥죄기’와 ‘재벌개혁의 후퇴’라는 상반되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던 것이 힘들었다”며 “과잉규제는 지양하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공정경제를 위해 공정위뿐만 아니라 관계 부처가 함께 상황을 공유하고 협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경제는 필요하다

여전히 언론에는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도배되고 있다. 그렇지만, 공정경제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대책위는 “공정경제는 동일한 노동을 한 사람들이 공정하게 임금을 받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회는 “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이유 중 하나는 갑질 문제”라며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대기업에서 영업이익을 제대로 보장해준다면 최저임금으로 인해 고통 받는 중소자영업자들은 없을 것”이라고 공정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혁재 집행위원장은 “한국 경제는 그 동안 기울어진 운동장 체제를 유지했는데, 이를 바로잡는 것이 공정경제”라며 “공정경제는 이제 시대적 대세이며 국민들 눈높이에서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상황은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최배근 교수는 “한국 경제의 시대적 과제 중 하나는 공정성 강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정경제를 위해 자영업자 대책을 마련한다며 카드수수료 인하나 상가임대료 인상을 제한했는데 이는 일시적인 대책에 불과하고,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배근 교수는 또, “공정경제의 핵심인 재벌기업의 사회적 자산화나 사회적 통제, 토지공개념 강화, 서민금융의 제도화 등을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는 산업구조조정이나 산업혁신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 경제 활력을 만들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이어서 “제대로 된 경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경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따른 처방을 내리면서 속도 조절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 정부에는 이런 과정이 없다”며 “국민들에게 현재 한국 경제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현 정부 들어 공정경제 실현을 경제정책의 한 축으로 삼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 성과를 내고 있지는 못하다. 대·중소기업 관계에서 하청이나 납품 등 ‘을’의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대기업으로부터 여러 형태의 갑질을 당하고 있고, 이 같은 갑질을 바로잡아야 할 공정위의 행보는 더디기만 하다. 여러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공정경제는 한국 경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인 만큼 더욱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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