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영의 아메리카노] 그들이 머리를 미는 이유
[강은영의 아메리카노] 그들이 머리를 미는 이유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03.14 10:44
  • 수정 2019.03.14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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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의 아메리카노] 달콤하지만 씁쓸한 아메리카노 한 잔

 

강은영 기자eykang@laborplus.co.kr
강은영 기자
eykang@laborplus.co.kr

아침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사투를 벌이는 것 중 하나는 머리를 단장하는 일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머리 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머리를 감고 말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신체 중 머리를 정돈하고 유지하는 일은 중요하면서도 필수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머리카락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가난한 부부가 서로에게 줄 선물을 고민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선물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시계를 팔아 머리핀을 선물로 삽니다. 또, 아내는 남편의 시계 줄을 사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돈을 마련합니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교환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의 내용입니다.

한국에서 머리카락과 관련된 일화를 떠올린다면, 단연 이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나의 모든 신체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뜻으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하는 것이 효도의 첫걸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지키지 못 하고 상하게 되면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단발령이 내려지자 선비들이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외치며 강력하게 저항하기도 했지요. 많은 선비들의 반발에 일본 경찰들은 이들에게 강제로 단발령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머리카락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수단이기도 했으며, 돈을 마련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자신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서 현안에 끝까지 맞서겠다는 투쟁의 의지를 담아 삭발식을 거행하는 경우가 있지요. 지난 6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산별대표자들의 짧은 머리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만큼 결연하게 투쟁을 임한다는 뜻이겠지요.

삭발식을 하는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앙다문 모습에서 투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드러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삭발을 하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현안을 한 번에 해결할 강력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넉넉한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삭발까지 합니다! 우리의 뜻을 들어주십시오!”라고 말하려는 거겠지요.

그래서 ‘삭발’은 늘 비장하고, 아립니다. 배가 고파서,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이들이 줄어드는 세상을 꿈꿉니다. 더 이상 '슬픈 삭발'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