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프리킥] 정치화, 정치세력화
[박종훈의 프리킥] 정치화, 정치세력화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9.03.18 13:52
  • 수정 2019.03.18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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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프리킥] 점심시간 야구 얘기가 듣기 싫어 축구를 좋아하기로 한 불경스런 축구 팬이 날리는 세상을 향한 자유로운 발길질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해가 바뀔수록 노조의 정치화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친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들어 노조의 힘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찬찬히 읽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만, 아무튼 이와 비슷한 느낌의 문장을 여러 기사에서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해가 바뀔수록~ 기대됐지만’이라든지, ‘친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라든지, ‘노조의 힘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등등,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 배우고 익혀야 할 길이 멀다.

특히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건 ‘노조의 정치화’가 ‘개선’되어야 할 점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이래선 안 되는 줄 잘 알지만, 기자들은 자기가 맡은 출입처와 감성적으로 동화되는 부분이 분명 있다. 출입처의 어떤 사안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든지, 역으로 부러 남들이 상관 않는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는 것도 기자가 출입처와 밀접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있다.

빤한 이야기이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다양한 면모가 존재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은 우화를 꺼내놓지 않더라도, 대상의 온전한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복잡한 이해당사자가 얽혀 있는 사안의 전후 맥락을 꿰뚫고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이란.

그런데 기자의 일이란, 즉 한 편의 기사를 써내는 데에는, 빠듯하게 시간이 주어진다. 가급적 다양한 측면의 시각과 입장을 모두 반영하여, 사안의 전체 형상을 그려낼 수 있기를 바라지만 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항상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글 첫 문장은 금융노조의 최근 행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들에게 이와 같은 표현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았다. 대개 비슷한 반응인데, ‘유감스럽지만’ ‘자주 있는 일’이고, ‘안타깝게도’ ‘노동단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란 평들이다.

앞서 언급한 ‘정치화’라는 것은 사전적으로 “권력을 얻거나 유지하는 활동과 관련을 맺는 것”이다. 문맥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노동조합이 과도하게 정치색을 띠고 있으며, 그게 안 좋은 것이니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거 같은데, ‘과잉정치화’ 정도 단어의 의미로 썼을 거라고 본다.

금융노조의 창립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금융노동자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지위를 강화하고 민주복지사회의 건설 및 참된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힘찬 투쟁을 일상화한다.”

강령 4조에는 이와 같은 의미가 좀 더 구체화되어 있다. “우리는 전체 노동운동의 통일을 견인하여 노동운동의 총 단결로 노동자계급의 지위향상을 위한 정치경제 투쟁에 앞장서며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한다.”

‘정치세력화’는 무엇일까? 아마도 ‘정치화’를 위한 과정을 가리키는 말일 텐데,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세력화라는 표현은 노동계에서 보다 자주 마주친다. 일정 규모 이상의 노동단체는 앞서 금융노조의 선언과 강령에서 보았던 것처럼 정치세력화를 지목해 주된 활동으로 기준 짓고 있다.

어떤 단체가 대체 ‘어떤’ 단체인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혀 놓았는데, 그걸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대체 무슨 의도일까? 애초에 온당치 않은 목표와 철학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선언한 목표와 달리 현실의 모습이 변질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첫 문장을 쓴 이가 어떤 생각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길은 없다. 좋다, 나쁘다 토론할 거리는 많을지 몰라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시비를 가려볼 여지도 없다.

정확한 숫자인지는 다시 한 번 헤아려볼 필요가 있겠지만, 20대 국회에서 언론계 출신 국회의원은 300명 중 9.33%, 28명이다. 국회 입성 직전의 직업이 아니라, 평생의 경력 중에 언론 쪽 경험이 있는 이들까지 신상을 털어(?) 보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치권 진출을 많이 하는 법조계 출신이 15.33%, 46명이다. 기업인 출신은 5.3%, 15명이다.

노동계 출신은 고 노회찬 의원을 포함해 12명이다. 20대 총선 직후 이러한 결과를 두고 ‘노동계의 대약진’이라고 표현한 매체도 많았다.

국회의원들의 전직(前職)을 운운한 까닭은 혹여나 아직도 노동단체에 대한 비하나 배타적인 시선이 남아 있지 않나, 씁쓸한 기분이 되어서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노동운동가도 아니고 노동단체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지만, 출입기자로 지내다 보니 감성적 편들기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편들기는 개인의 편협함을 보여주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 참여하는 것, ‘정치화’와 ‘정치세력화’에 대한 우월감의 표출이나 특정 세력의 비하는 좀 이야기가 다르다. 그 사회의 성숙하지 못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니 개선이 필요하다면 그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