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FTA 노동조항 위반 세계 최초 국가되나
한국, FTA 노동조항 위반 세계 최초 국가되나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3.18 18:58
  • 수정 2019.03.19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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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공익위원, ILO 기본협약 비준 노사정 합의 촉구
“4월 9일까지 가시적 성과 보여야”… 노사에 수용 가능한 과제 ‘우선적 합의’ 제안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소속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이 ILO 기본협약 비준에 대한 노사정 합의를 촉구하며, 노사 양측이 제시한 다섯 가지 제도 개선사항 중 현실적으로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과제를 우선적으로 집중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박수근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위원장은 18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오는 4월 9일까지 EU 측에 우리나라 ILO 기본협약 비준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한국이 FTA 노동조항을 위반한 세계 최초의 국가로 남을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달 말까지 조속한 타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18일 오후 1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아카데미실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 등에 관한 노사정 합의를 위한 공익위원 제언’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승욱 공익위원 간사(이화여대), 박수근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위원장(한양대), 김인재 공익위원 간사(인하대).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18일 오후 1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아카데미실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 등에 관한 노사정 합의를 위한 공익위원 제언’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이승욱 공익위원 간사(이화여대), 박수근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위원장(한양대), 김인재 공익위원 간사(인하대). ⓒ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합의점 찾지 못하는 노동계와 경영계
공익위원 “타협 가능한 범위 내 우선적 합의” 제언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위원장 박수근, 이하 위원회)는 지난해 7월 20일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기본권 관련 제도 개선안을 논의해왔다.

위원회는 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단결권 제도 개선사항을 먼저 논의했으나, 노동계와 경영계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현재는 공익위원 합의안만 도출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20일 공익위원 전원은 단결권 관련 제도 개선사항을 우선적으로 정리한 공익위원 합의안을 발표했으며, 지난해 12월 18일 위원회는 단결권과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제도 개선사항을 함께 묶어 포괄적인 사회적 합의를 재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위원회는 남은 노동기본권 쟁점인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관련 제도 개선사항 논의를 이어갔으나, 이 역시 단결권과 마찬가지로 노사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노사 요구사항

<노동계>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개선 ▲산별교섭 활성화 ▲단체교섭·쟁의행위 대상 및 목적 확대 ▲노조활동 및 쟁의행위 관련 민사책임 형사처벌 개선 ▲필수공익사업·필수유지업무 제도 개선

<경영계>

▲사업장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파업 시 대체근로 인정 ▲부당노동행위제도 폐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명확화

노동계는 경영계 요구사항을 두고 헌법에 명시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파업 시 대체근로 인정, 부당노동행위제도 폐지 등 요구사항이 노동조합 활동을 침해하고, ILO 기본협약에 위반된다는 점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지난 11월 20일 발표된 공익위원 합의안이 단결권 확대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관련 제도 개선사항 논의에는 경영계 요구사항이 반영되어야 노사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기본권 관련 제도 개선사항 중 어느 것 하나도 노사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공익위원들이 나섰다. 박수근 위원장과 이승욱 공익위원 간사, 김인재 공익위원 간사는 1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그간의 경과를 발표하면서, 노사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 ILO 기본협약 비준에 따른 법 개정 논의와 관련한 최종적인 사회적 합의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노사 양측이 제시한 다섯 가지 제도 개선사항 중 현실적으로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과제를 우선적으로 집중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노사 간에 타협 가능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우선적 사회적 합의를 하고, 합의되지 않은 제도 개선안 과제는 이후 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또한, 늦어도 이달 말까지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경총, “공익위원 제언, 수용할 수 없어”

공익위원들이 노사정 합의 기한을 이달 말까지로 잡은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유럽연합(EU)이 오는 4월 9일까지 ILO 기본협약 비준에 관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FTA 공식분쟁해결절차 최종단계인 전문가패널에 회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章)’에 따르면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노동조항이 있다. 현재 EU는 우리나라가 이 조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식적인 FTA 분쟁해결절차를 개시한 상황이다.

이승욱 공익위원 간사는 “FTA 공식분쟁해결절차 최종단계인 전문가패널로 넘어가면 위반국가에 대한 권고가 담긴 시정권고보고서가 작성되는데, 우리나라는 FTA 노동조항을 위반한 최초의 국가이기 때문에 보고서에 담길 구체적인 내용은 전례가 없어 알 수 없다”며 “만약 올해 EU 의회 선거를 앞둔 EU에서 이 문제를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면 시정권고보고서에는 강경한 대응이 담겨 노사는 물론 국민경제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익위원들은 늦어도 이달 말까지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져야 EU가 요구하는 4월 9일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공익위원들의 이 같은 제안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총은 입장문을 내고 “경영계는 공익위원 구성의 편중과 논의의 차별적 진행, 경영계 제기사항에 대한 의도적인 축소·무력화 등을 볼 때 위원회가 객관적·중립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서 “공익위원의 제언은 ILO 기본협약 비준의 시급성만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면서 경영계 요구사항은 노동계 반발이 약한 사항만 우선 고려하고 핵심 요구사항은 뒤로 미루자는 것”이라며 “이는 위원회가 주로 노동계 의견에 경도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경영계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계인 한국노총은 이 같은 경총의 입장문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오늘 기자간담회는 공익위원이 지금까지의 교섭 경과를 보고하고, 노사가 서로의 요구에 대한 접점을 찾아보라고 촉구한 것인데 이를 두고 차별적 진행이라고 한 경총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한국노총은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논의를 이어가자는 공익위원의 제언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